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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비 Aug 24. 2023

[상담회기] 14회차

몸이 안 좋아서 목소리가 거의 안 났다. 회기 녹음본을 다시 들으면서 내 목소리가 안 좋아서 선생님이 상담을 하기가 어려우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무리하는 일들이 많았다. 방에 피아노를 두기 위해 방을 치워야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새벽시간을 활용했다. 일주일을 매일같이 2-3시간 정도가량 자다 보니 이 사달이 났다. 책을 치우며 먼지를 많이 먹었다. 결국 얻은 건 후두염. 속상하게도 체력이 예전 같지 않더라. 그럼에도 이래저래 뭔가 자꾸 하려고 하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이 지난 회기때 했던 검사지를 다시 한번 보셨다고 했다. 나는 자극을 추구하는 성향이 높으면서 MMPI척도에서 위험회피 성향도 높은 양상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성격으로 고스란히 드러나서 놀라웠다. 그렇구나. 나는 그런 사람이었구나. 스스로의 장점이자 단점을 인정하고 나니 어쩐지 마음이 평안했다. 


생일주간이어서 유독 바쁘게 지냈고, 생일은 적당히 잘 보냈다. 하루종일 감사인사를 하느냐고 끊임없이 카톡을 했다. 매 생일엔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일이 정말 좋은데, 이번 생일엔 별건 아니라 해도 부모님과 같이 밥 먹고 같이 이야기하는 시간이 정말 좋았다. 아버지가 몇십 년 만에 생일케이크를 사 오셨다. 잘 안 먹는다, 괜찮다, 하셔도 본인이 꼭 사셔야겠다는 말을 하시며 더위를 무릅쓰고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 오셨다. 아침엔 엄마가 해준 미역국을, 저녁엔 아빠가 사준 케이크로 생일을 시작하고 마무리했다. 별도의 시간을 들여야만 간신히 부모님과의 식사가 가능한 요즘인지라 그저 생일날의 시간이 무척 감사할 따름이었다.


선생님과 이야기하면서, 누군가의 퇴사가능성이 정말 즐거웠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 사람의 퇴사를 바라고 있다. 아직 나간 것은 아니지만, 왠지 회사에서 그럴 조짐이 보였기 때문이다. 회사는 앞뒤로 뒤숭숭하다. 회사에 여러 팀이 존재하는데 한 팀 전체가 거의 다 퇴사를 했다. 회사에서 메인인 팀인데 불구하고, 팀장님이 퇴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원들이 우르르 나갔다. 15년을 다니던 회사를 떠난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싶다. 회사도 나도 한 달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유독 더 '이 회사에서 붙어있어야 하나'를 고민한다. 더 얻을 것이 있는 곳인가. 물경력이 되지 않으려면 탈주를 해야 할까. 사람을 기계처럼 대하시는 대표님이라 사람들이 퇴사하는 것일까. 오래 다니고 싶은 회사라고 생각했는데, 1년도 채 되지 않고 퇴사를 고민하는 내가 아쉽다. 다만, 오래 다니신 분이 퇴사하신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고, 그럼 나도 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돌려야 하나 생각한다. 어쨌거나 당장은 아니다. 나는 일을 수임하시고나서, 분배해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인지라, 연봉협상에서도 별다르게 외칠 것이 없다. 그러나 1년 정도 되면 이력서의 갱신은 필요하다. 어딘가 자리가 나왔을 때, 한 번쯤 시도해 보려면 수시로 이력서의 업데이트는 확실히 필요했다. 얼마 전 모집공고가 떴던 가고 싶던 회사에 이력서를 넣지 못했다. 지금은 내 자리를 명확하게 하는 것. 그래서 다음사람이 오더라도 내 자리의 입지를 그대로 이어받기를 원한다. 많이 배우고 싶다. 지금은 그것뿐이다. 사회생활을 10여 년 해오는 바로서는, 같은 나이인데 누군가는 참 일을 잘하는 반면, 나는 어디에 서있는가를 고민한다. 어릴 적엔 무능력한 부장님 차장님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너무나도 이해된다. 사무실에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경력을 흐리게 만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매 순간 각자의 분야에서 역량에 맞게 최선을 다한 사람들은 티가 난다. 혹은 수완이 좋은 자들도 티가 난다. 멘땅에 헤딩을 지금에서라도 해서 다행이다. 나는 안주하고 싶지 않다. 


요즘의 마음들은 평온하고 안온하다. 별다를 게 없고, 회사에서도 나름 이 포지션을 유지하는 것이 익숙해졌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어째,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약 3주 만에 마주하는 선생님이라, 선생님과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저번에 2주 정도 못 뵈었을 때, 한주를 걸러 만나면 마음을 쏟아내는 과정이 다시 리셋되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고 안내를 해주셨었는데, 지금 내가 그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야기를 할까 말까 고민했던 것들이 존재했다. 물론 삶에 큰 이슈 없이 무탈하게 지나가긴 했지만, 어쩐지 그 사소한 이야기들을 선생님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에 대한 고민을 하긴 했다.

학기를 채워가는 중에 수강신청계절학기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대평가라서 더더 그런 것 같다. 생각보다 학점을 잘 받기가 어려웠다. 졸업학점이 좀 아니다 싶을 때 재수강을 다시 해봐야 할 듯싶다. 어차피 내가 내는 학비니까, 한 학기 더 다니지 뭐 하는 마음도 있다. 아, 이번학기에 장학금도 나왔다. 70만 원 정도였는데 이게 얼마나 나에게 큰지 너무 감사하다. 지난 학기의 일정과 사람들 관계에서 유독 자신감을 얻게 된 부분도 있었다. 돌아보니 모든 것이 은혜였지만, 이 학업을 잘 마치려면 학기가 2년 반 남았다. 회사에서 교육비 명목으로 지원을 받는 것이 있으므로 계절학기를 듣는 게 괜찮은데, 또 어떨지 모르겠다. 여기서 너무 물경력이 될까 걱정이 되지만 버틸 때까지는 버텨볼까 하는 중이다. 


본의 아니게 내게 열심히 자신의 상황을 말하시던 분들(?)의 근황도 말했다. C의 상황이 이해는 가지만 불편해져서 훈수를 뒀었다. C가 상대방과 잘돼라 응원도 했다가 잘되지 말라고 했는데, 그 모든 상황에서 그 선택은 너의 말 때문이었다며 내 탓이라고 하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이야 잘 정리했다고 고맙다고 하시지만, 불현듯 마음 한편에는 내가 한 말들이 되려 그분께 상처가 되거나 안 좋은 영향을 미쳤던 게 아닐까는 생각을 많이 했다. 유독 C가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이어서 그렇다. C도 나만큼이나 생각이 많은 사람이니까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를 외쳤을 때, 선생님은 "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생각이며, 일반적인 현상이라며 크게 생각하거나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것을 드러내는 것과 드러내지 않음의 차이는 있어도, 한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으로 생각하는 게 지나치지 않다면, 너무 나 스스로를 비하할 필요는 없다는 말을 해주셨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상대방 역시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른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정도면 충분하므로, 과도하게 생각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해 주셨다.


나중에 다시 태어나 내 나이가 어리다면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보자 했을 때, 주저 없이 음악 미술을 잘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지금은 재즈보컬을 공부하고, 악기를 다루고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피아노를 방에 들여둔 것이니까. 그 마음으로 한 행동이었다. 공부를 더 잘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잘한다기보다,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 그러니까 공부하는 방법들을 알고 싶었다. 지금은 배우는 일이 맨땅에 헤딩하며 배우는 것 외에는 알 길이 없다. 그러면서 다 배우는 거라고 하지만, 똑똑한 사람들은 배움에 있어서도 구체적인 계획과 틀을 가지고 차근차근 해내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도 그런 모습들을 갖고 싶다고 했다. 평생 배우기를 끊임없이 하고 싶으니까. 하고 싶은 걸 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고, 그에 상응하는 자격을 유지하고 싶은데, 그러면 또 배우고 배워야 한다. 자유롭게 살기 역시 쉽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그에 따른 책임과 직무가 반드시 필요하니까.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삶이고 싶은데, 어쩐지 끊이지 않고 배우려는 습성은 타인보다 낫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해야 인정받았으니까. 언니보다 더 나은 자식이고 싶었던 어린 날의 모습들이 존재하기 때문이겠다. 그러면서도,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다 보니, 친구들을 만나는 일도 게으르고 싶지 않아 지고, 그럼 또 시간이 없고, 연애를 하는 것 역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일 앞에서 우선순위를 명확히 정하지 못하겠다. 지난 소개팅의 실패는 역시 시간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의 시간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도 점점 없애는 중이다. 이럴 거면 나만 잘 살자. 오늘만 살더라도 될 대로 돼라 하는 마음으로 삶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제주도 다녀오고 나서는 대체로 평안했던 날들이었다. 일도 많고 단톡방에 대답할 것들도 많아서 여유롭지만 여유롭지 않은 날들이었다. 이 행복이, 이 안온함이 언제 또 사라질까 겁이 난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저렇게 쏟아낸 말들 중에 생각해 볼 부분이 아무래도 많은 상담이었다. 거리를 두지 않으려 애쓰지만 거리를 두는 모습이 그저 신기하다. 나 스스로가 가진 모습들이 무척 신기했다. 언제쯤 괜찮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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