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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비 Oct 01. 2023

[상담회기] 15회차

어떤 대상에 의지하는 마음을 인지하는 일


휴대폰을 잃어버렸던 이야기로 상담을 시작했다. 친구랑 이야기하면서 폰을 들고 있었는데 덜컥 폰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들을 신나서 이야기했다. 이제는 에피소드처럼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휴대폰을 잃어버리자마자 생각이 났던 건 휴대폰에 이런저런 이유로 담아뒀던 녹음파일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순간의 말과 글들과 시간들이 소중해지고 있는 요즘인지라, 덜컥 왜 그것부터 떠오르게 되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는 역시 기록하기를 좋아하고, 기록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폰은 잃어버렸고, 안에 담긴 사진과 시간들, 연동되지 않은 자료들에 대한 두려움을 지속적으로 떠올렸고, 국내에서 아이폰의 활용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백업조차 안 해둔지라, 자료를 살릴 수 있는 여유 따위 없겠구나 하며, 무조건 폰을 찾아야겠다며 누가 가져간 게 아니라면 왜 폰이 이동을 했으며, 이것은 필시 도둑이다 여겼다. 휴대폰 위치 추적으로 가까스로 폰의 위치를 알았지만, 정확한 위치는 파악이 어려웠고, 갤럭시라면 가능했던 것들이 아이폰이라서 안 되는 일이 많았다. 이를테면 아이패드와 연동된 아이폰의 위치 추적이 개개인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당연히 될 줄 알았던 아이폰과 아이패드와의 호환성으로 찾는 내 폰 위치 찾기가 안될 때는 정말 멘붕이었다. 다행히 통신사에서 가능해서, 통신사에서 1시간에 1번씩 위치를 받았으나 정작 필요한 기능이 개인정보 보호법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알았을 때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상담 선생님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폰을 잃어버렸을 때의 당혹감과 기계가 사람에게 이렇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외에 내가 어떤 정신 착란이 드는 느낌을 생생히 설명하고 싶었다. 말하면서 문득문득 나는 기계에게 지나치게 의존 중인 사람이었나 생각했다. 나 스스로가 나한테 바라기는 아날로그성을 최대한 가지고 있으면서 감성을 잃지 말자 생각했는데, 휴대폰 하나가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커서 놀라웠다. 사실 따지고 보면 너무 당연하기도 하다. 사람들과의 교류라던가 일상을 기록하는 일등등 대부분의 활동을 온라인상에서 활발하게 하고 있으면서, 휴대폰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다만, 내가 의지하기보다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면서,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가지고 더 늙거나 더 변하지 않길 바랐는데, 아마 시대가 점점 더 변할수록 나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 지겠구나 하는 불안감도 엄습해 왔다. 살다 보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변화와 혁신이 당연한 삶이겠지만, 조금 천천히 바뀌고 변하면 안 되겠냐며 어딘가에 늘 말해보고 싶어 진다.


휴대폰 이야기를 뒤로 하고 지난주에 이야기할까 말까 고민하던 이야기를 선생님께 말했다. 어렵지만 여려 차례 거절하던 연애를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바쁘고 시간이 없으니까, 이 연애를 잘할 를 할까 말까 고민했던 건데, 바쁘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이 연애가 잘 될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래서 수차례 거절했다. 내 스타일이 아니야. 못생겼어(?). 나는 이 연애하기엔 좀 많이 바빠.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라 걱정된다. 그래서 시작하기가 두렵다. 어렵다.라고 말하면서 거절을 했는데, 계속적인 확신에 찬 대답에 일단 승낙을 하게 되었고, 결국 연애를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을 하다 보니, 사실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 말을 믿지 못하고 의심을 하다 보니 상대에게 너의 마음을 자꾸 확인받고 싶어 하더라. 그래서 내가 좋아한다고 말을 하면, 당신은 나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나를 얕잡아보고 막대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남자의 사랑한다는 말을 믿지 않고, 남자의 관심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곁눈질로 바라보기만 한다. 남자라는 사람의 말에 믿음을 두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사람이 내 주변에 있고, 나를 여자친구라고 두는 이유는 나에게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었고, 연애란 건 서로에게 필요성이 보였기 때문이고, 서로의 필요충분조건이 성립되면 지속적인 연애가 가능하지만, 필요만 있거나 충분만 있다면 서로의 관계가 일방적이게 되고, 그땐 마음도 종료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했다. 이럴 땐 나도 내 마음들을 내려놓고 종료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되려 상담선생님께 물어보게 된다.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런 내 마음이 이상한 게 아니라 괜찮다는 다독거림이 필요했던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연애들의 시작의 절반이상은 내가 먼저 좋아하고 내가 고백해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한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입증해야만 할 것 같았다. 좋아한 마음을 물질로든 말로든 표현했고, 상대방에게 은연중에 그 표현을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좋아. 내 마음으로 인해 당신이 헷갈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명확하게 말할 수 있어.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 연락도 더 잘하려 애쓸 테니까. 당신의 그 모든 불안을 잠재우리라는 마음으로 연애를 했다. 애초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사랑이건만, 나는 그 사랑을 눈에 확실히 보이는 애정들로 치환하고 싶어 했다. 실존하지만 형태가 없는 게 사랑이라서, 잔상이 아니라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명확함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 너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당연하지 않은 과정들이었다. 연애가 아니더라도,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내가 너를 애틋하게 생각하고, 소중한 친구라고 여기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좋아해, 애정하고, 너를 만나서 참 좋은 것 같다는 생각들을 거침없이 입 밖으로 냈다. 그런데 그런 마음들을 내비치는 것에 대해 상대방들이 반대로 내게 하면 어떨 것 같냐는 선생님의 질문을 받으니 마음에 덜컥 부담이 들었다.


여자 친구들과는 부담 없이 서로 애정의 척도를 표현한다. 마음이 가는 곳에 물질이 가니까, 때때로 오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사 온다거나 한다. 그런데 같은 행동을 남자 (사람) 친구들이 한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게 될듯하다. 얘 나한테 관심 있는 건가라던가, 뭐지 이거 그린라이트인가, 등등의 생각들을 할 것 같았다. 그저 친구들인데도, 이상하게 그랬다. 단체로 보내는 선물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잠깐 만나는 동안 네 생각이 나서 사 왔어하고 쿠키를 건넨다거나 하는 행동이 불편할 수도 있겠구나 했다. 역지사지는 이래서 중요하다.


남자친구랑 연애를 하게 된 것도, 여러 차례 나에게 연애를 시작해 보자고 하는 마음이 좋아서였다. 그렇게까지 하기까지 얼마나 용기를 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을 갈구하던 행동들과 비슷하게 내게 표현해주고 있어서, 그 마음들을 모르는 게 아니니까, 이 사람의 마음이라면 한 번쯤 믿어보고 싶었다. 반면에, 문득 곡해해서 생각하기도 했다. 그저 춤추는 여자 친구가 필요했던 것이면 어떻게 하지, 여자 친구이라는 타이틀만 필요한 것은 아닐지, 이 사람에게 내가 채워줄 수 있는 필요는 무엇일까. 나는 인풋이 없어서 아웃풋도 녹록지 않은 사람인데, 아웃풋을 요구하면 어쩌나 싶었다. 이런 걱정들이 들어서 연애를 선뜻 시작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고 선생님께 말했더니, 상대는 순수한 마음이었을 텐데, 상대방의 입장에서 진심을 말했는데 오해를 받아서 속상했을 것 같기도 하다는 선생님의 말에 아차 싶었다.


키도 작고, 어리고,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남자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 연애를 시작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왜 그랬나 생각해 보면, 이 친구가 내게 하는 행동들이 꼭 나와 같은 모습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있었고, 적어도 이 사람의 말이나 행동들은 신뢰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지금은 이 연애를 시작한 것을 후회하거나 고민하지는 않지만, 상담을 받을 땐 겨우 고작 1주일 정도 지난 상태였던지라, 이 친구의 마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더랬다. 지난주에 이야기하지 못했던 건, 혹시라도 이 연애가 금방 끝이 나고 그저 있던 이야기나 해프닝 정도로 마무리될 줄 알고 선생님한테 이야기하지 못했다. 지난 몇 개월간 썸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썸에서 종료해야 했던 것들 때문도 있다. 상담을 받을 때만 해도 남자친구는 너무 동생 같다는 느낌이 짙은 상태였다. 그 시기의 남자 친구는 애교가 많은 친구처럼 보이기도 했다. 평소 사용하는 언어나 단어들이 어린 느낌은 아니지만, 하는 말투나 행동들이 조금 어려서 오히려 이 친구의 행동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원래 내가 하던 행동들을 이 사람이 하고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시작할 때만큼은 시간이 없어서를 매주 이야기 안 해도 돼서 다행이다 싶기는 하다. 다만 학기가 시작되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가 조금 두렵다. 종교가 안 맞아서 결혼까지 생각할 수 있을까를 염려한다. 부모님은 불교라고 하는데, 나는 교회를 같이 가주기를 원한다. 다만, 개인의 가치관의 문제라서 강요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모든 게 만족스러운데, 다만 이걸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가 조금 두렵다.

내가 사람 마음을 잘 못 믿는 건, 결국 언젠가 너도 떠날 거잖아 로 귀결되는 모습들 때문이었다. 과거 이야기를 하자면 5년 사귀었던 친구랑 결혼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 영향으로 은연중에 나에게 열과 성을 다한 사람이라고 해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이성을 믿지 못하게 되면서도 연애를 하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돌아보면,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컸기 때문이다. 인정받고 싶고, 상대방에게 조금 기대고 의지하고, 나를 이끌어주세요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없이 나를 인정해 달라는 마음이었다. 당신만큼은 나에게 무한한 애정을 주길 바랐다. 그런데 그것은 어쩐지 신만큼의 인정과 사랑을 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남자친구가 신만큼 나를 사랑할리는 평생을 두어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신이든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테니, 신만큼 사랑하는 건 인간으로서 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늘 기대치가 높았다가 실망하기를 반복했다. 그것을 알아차리고나서부터는 연애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도 안 됐다. 내가 불안정한데, 어떤 연애를 예쁘고 정갈하게 해낼 수 있겠는가.


헤어지는 게 두렵기도 하고 소비되는 에너지들이 힘들어서 안 하려고 했던 연애를 시작한 지 일주일째다. 이 친구가 자기 가정사를 말하면서까지 내게 말하는 모습에, 더 이상의 거절을 할 수 없어서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헤어지면 다 힘든 건데, 헤어지는 느낌이 싫다는 이유로 내가 거절을 했던 것이다. 이기적이라면 무척 이기적일 수 있다. 상대가 헤어지자고 하는 것 자체가 버거웠고, 헤어짐 이후에 서로에 대한 신경을 줄이고, 의식적으로 끊어내야 하는 시간에 들이는 에너지가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어짐을 말할 땐 늘 내가 먼저였다. 헤어지기까지 마음정리를 천천히 해내고, 이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타이밍에, 내가 먼저 도망치듯 헤어짐을 말해왔다. 서로의 사랑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상처받았던 시간들을 주기적으로 상대방에게 어필했지만, 서로의 접점이 생기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그 사랑에서 도망쳤다. 원하는 방향성의 사랑을 받고 싶었으니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어쩌면 이기적인 부분일 수도 있겠다. 내 위주의 연애방식을 고수하고, 그에 맞는 사람을 찾아다녔구나 하기도 했다. 연인으로서 최소한의 값을 설정해 두고, 스케줄은 내가 이러하니 너는 맞추거라라는 식의 태도가 얼마나 이기적이었는가. 상대방에게 실망하는 나도 있겠지만, 나에게 실망하는 상대방은 왜 생각하지 못했나, 배려하지 못했나. 내가 부족했던 면들이 지나치게 많았다는 것을 이번 연애를 시작하면서 알았다.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었구나. 어리숙하고 어린 모습에 머물러 있으려 애썼구나. 그럼 난 아직 결혼은커녕 연애를 하기에도 부족한 사람이구나 했다. 연애가 결혼이 되고 싶지 않아서, 이별을 결심하고, 상대에게 실망한 모습에 나는 마음을 닫게 되는 일들이 이 친구와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 순간 연애의 시작에서는 이번 연애가 마지막이길 바라고 또 바란다. 상황적으로 맞지 않은 상황이 아니길 바란다. 그래서 조건을 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상대가 이해할 수 없는 환경을 내가 가지고 있을 수 도 있으니까.


이번 상담은 유독,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그리고 연애에 대해 내가 생각이 많아서 그랬는지도 몰라도,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차분해지고 분류를 하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사랑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이라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내 부족함을 거울처럼 들여다보는 느낌이어서 굉장히 좋고 따뜻한 시간이었다. 선생님, 저는 여전히 이 연애가 잘될지 안될지 잘 모르겠어요. 저보다 어른스러운 친구지만, 자신이 없더라고요. 제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연애는 늘 자신 있는 것들 중 하나였으니까. 신기하고 이상하지만, 생각이 맑아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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