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그림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미술대학 4학년 무렵, 어떤 교수님께서 작품평을 하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희는 스물 몇 살밖에 안 된 애들인데,
벌써부터 무슨 상처를 그리도 많이 받았다고 작품 주제가 온통 고통, 상처뿐이니?
아픈 건 어른들이 더 아파.
일어나서부터 잠들 때까지 아프다니까.
젊은 애들은 좀 희망찬 얘기를 해야지.”
그때 나는, 사실 조금 부끄러웠다.
인생의 쓴맛을 아직 다 보지 못한 애송이들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듯, 각자의 보잘 것 없는 상처를 꺼내 전시한 건 아닐까 싶어서.
작가로 활동하면서 만났던 어떤 갤러리 관장님은 내게 이렇게 조언하기도 했다.
“츠키야, 밝은 그림을 그려봐.
네 작품성도 좋지만, 사람들은 단순하고 예쁜 그림, 행복한 그림을 좋아해.
그리고 사실, 누군가에게 행복감을 주는 일이 더 값진 일이기도 하잖니.”
그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행복을 그리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그릴 수 없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HSP(Highly Sensitive Person), 즉 고도로 민감한 기질을 타고났다고 한다.
나 역시 그렇다.
아픔을 겪은 시간이 짧더라도, 민감한 사람은 그 감정을 더 진하게, 더 짙게 느낀다.
그리고 그 기억은 쉽게 희미해지지 않는다.
젊은 작가들이 상처를 표현하는 건 일부러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게 아니다.
조용히 앉아 작업노트나 캔버스 앞에서 숨을 고르면, 그 감정이 스스로 분출되어 나올 뿐이다.
반대로, 아직 온전히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 그리는 건 너무 막연하고, 너무 공허한 일이다.
여리고 구멍난 마음 위에 얹은 행복 이야기가 과연 무너지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나는 믿는다.
젊은 작가들이 '지금이기에' 더더욱 상처를 말해야 한다고.
감정이 무뎌지기 전의 생생한 상처를, 그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스스로 꺼내어 보고, 직면하고, 꿰매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자기 감정을 용기 있게 들여다본 사람만이 비로소 진짜 따뜻한 언어로 다른 누군가를 감싸 안을 수 있다.
'행복한 나'를 과시하는 것이 아닌, 서로의 연약함을 끌어안고 위로해주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나는 믿는다.
어린 작가들에게 무책임한 희망과 열정을 요구하기 보다는, 작업세계에 무한한 행복을 담을 수 있는 튼튼한 마음의 토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어른들이 있는 세상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