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마음에 반짝임이 스미다
엄마의 나지막한 한숨조차, 어린 내게는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사랑하는 이의 짧은 침묵, 친구들의 장난 섞인 농담, 어른들의 가벼운 꾸지람,
그리고 나 자신의 사소한 실수에도 마음은 너무나도 쉽사리, 와르르 무너졌다.
여린 마음에 고운 말만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얄궂게도 너무 발달한 청각 탓에 미운 말까지 십 리 밖에서부터 바람결에 실려와 귓가를 어지럽혔다.
어린 나에게 세상은 춥고, 아리고, 떫고, 추한 것들투성이였다.
원래 세상이 그런가, 그런가 했다.
신께서 그렇게 예민한 감각을 선물하실 거라면, 그만큼 넉넉한 마음도 함께 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찻잔처럼 조그만 내 마음에, 무수한 자극들이 콸콸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내가 산산이 부서질까 두려워 이불 속으로 몸을 감싸고 숨어들곤 했다.
나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결국 몸까지 바꿔버렸던 걸까.
스물세 살, 두려움을 안고 바깥 세상으로 다시 한 걸음씩 나와보려는 나에게 원인 모를 통증과 이상감각이 찾아왔다.
돌더미 밑에 깔려 있는 듯한 묵직한 통증과 함께 하루를 맞이하고, 하는 일도 없이 기진맥진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온몸의 감각들이 곤두서는 밤이 찾아왔다.
혈관이 쿵쿵 울려대는 통에, 이불의 바스락 소리가 시끄러워서, 집 앞 골목에서 담배피는 사람의 발소리에 놀라 잠을 설쳤다고, 그래서 몸이 더 아파졌다고 말하면 누가 믿겠는가.
주변 사람들은 꾀병이라 했고, 어떤 점집에서는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수년간 병원과 한의원을 전전한 끝에 ‘섬유근육통’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특별한 치료법도 없다는 말과 함께.
하루를 평범한 사람처럼 기분을 내면 사흘을 앓았다.
아, 나는 망가져버리고 말았구나.
결국 나는 또다시 작은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말았다.
갇힌 사람이라 해서 하고픈 말이 없으랴.
부서진 감정의 조각들을 고이 모아, 언젠가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온전하진 않지만 자세히 보면 참 작고 예쁘지 않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방 안에 펼쳐놓은 그것들을 과연 누가 들여다봐줄까.
아니, 사실은—
날것 그대로의 그것들을 보여줄 용기가 없었다.
혹시라도 내 날카로운 모서리에 누군가 다치게 될까 봐.
가엾고 아까운 마음의 조각들을 버리지 못해, 나는 그것들을 글로 엮었다.
그러자 부서졌던 마음이, 예전보다 더 예쁘게 모아졌다.
작은 소동이 일면 이내 다시 깨지곤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타고나길 여린 마음, 어떻게 돌처럼 단단해질 수 있으랴.
그러나 깨져버려도 괜찮다.
나의 소중한 마음의 조각만 잃어버리지 않으면 된다.
내가 다시 모아, 다시 완성하면 되니까.
나는 이것을 용기라고 부른다.
그렇게, 나의 세상은 조금씩 넓어지고 있는 중이다.
나의 필명은 킨츠키 —
금으로 깨진 자리를 이어붙이는 사람.
나는 나를 수선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