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본 건 먹물이었고, 나는 진심을 잃었다

사랑을 잘 몰랐던 시절의 기록

by 킨츠키

오징어는 위험에 처했을 때, 본능적으로 뱃속에서 먹물을 내뿜어 자신을 보호한다고 한다.


내가 방어기제로 인해 내뱉었던 말들이 그들에게는 까만 먹물이었을까.





그들은 나를 떠올리면 “금방 불타올랐던 사람”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막 알아가던 중이었고, 나는 강렬하게, 거의 본능처럼 이끌렸다.


그들의 마음이 살짝 멈칫하는 순간이 느껴지면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답장이 늦어질 때, 주말에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약속을 잡을 때, 내가 아픔을 털어놨을 때 순간 스쳐 가던 복잡한 표정 하나에 나는 곧장 질문이 아니라 선언을 던졌다.


“너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이럴 거면 그만 연락하자.”


나는 사실, 그 말에 대한 반박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야, 내가 얼마나 널 좋아하는데.”

“미안해, 내가 더 잘할게.”

그런 말을 듣고 싶어서, 사랑을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확인받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그 어두운 말에, 그들은 대부분 조용히 물러났다.

“네가 헤어지자며.”

“넌 마음의 속도가 너무 빨라.”

“우리는 그냥 달랐던 거야.”

그들의 반응에 나는 원망했다.

그들을, 그리고 혼자 남겨진 나 자신을.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본 건 내 마음이 아니라 내가 급하게 쏘아버린 먹물이었을 것이다.

그 검고 진한 말들이 내 진심을 가리고 그들의 시야를 흐렸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깊고, 크고, 진심 어린 감정을.

하지만 내가 내뱉은 몇 방울의 먹물 탓에, 그들은 칠흑같은 어둠밖에 보지 못했다.


나는 그때 사랑을 0 아니면 100으로 나눴다.

조금의 망설임도, 늦은 반응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증거’로 읽었다.

지금 사랑받지 못하는 건 앞으로도 영영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사랑을 라면처럼 센 불에 단숨에 끓였고, 그 마음이 진국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진심은 천천히 오래 끓여야 우러나온다는 걸 그땐 몰랐다.




나는 그들을 겁주려던 게 아니다.

나는 단지, 겁이 너무 많았던 사람이었다.


다음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나는 그의 느림에 조급해하지 않고 확신 없는 표정에도 섣불리 물러서지 않으며, 내가 느끼는 두려움을 먹물이 아닌 진솔한 언어로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이 언제나 불타오르는 속도로 시작되지는 않음을, 천천히 다가오는 마음도 진짜일 수 있음을, 이제는 나도 조금씩 배우고 있으니까.


이제 나는 나의 바다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줄 사람을 막연히 기다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물살에 숨이 막히지 않도록 내 바다를 조심스럽게, 천천히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그리고 누군가의 바다 또한 바라봐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지금, 조금씩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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