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아이의 늦은 고백
밥상머리에서 도리질만 하던 나에게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었다.
그렇다. 나는 '금쪽이'에나 나올 법한 극심한 편식쟁이였다.
맛과 향, 식감에 예민한 나에게 음식은 ‘익숙한 것’과 ‘수상한 것’으로 나뉘었고,
일단 수상하다고 판단되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지 않았다.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몇 숟갈 입에 넣고 나면, 포만감이 체기처럼 느껴져 더는 먹을 수 없었다.
어린 나는 내가 예민하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세상은 원래 맛없는 음식들로 가득하고
다들 나보다 어른이라 그런 것쯤은 억지로 꼭꼭 씹어 삼키는 줄만 알았다.
정성껏 차려낸 밥상을 번번이 물리는 딸을 보며
엄마는 얼마나 야속함을 느끼셨을까.
내가 밥을 먹지 않은 건 엄마가 만든 음식이라서가 아니었지만, 엄마는 꼭 마음을 거절당한 듯이 속상하셨겠지.
나의 예민한 기질은 음식뿐 아니라
타인의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에도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게 했다.
엄마도 사람인지라 까탈스러운 나를 키우며 화도 나고, 짜증도 나셨을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잠깐 스쳤다가 이내 사라졌을 그 감정들이 나를 향한 마음의 본질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의 감정을 고양이의 동체 시력처럼 재빠르게 포착해서는 굳이 작고 여린 마음속에 오래도 품어두었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엄마는 날 미워해. 엄마에게 나 같은 딸은 필요 없어.’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절당하는 건 너무 아프다는 걸.
그래서 나는 오히려 내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으려 했던 것 같다.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했을 때 “그래, 나도 사랑한단다.”라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까 봐.
“됐어.”
“엄마는 왜 나한테만 그래.”
그 말들이 사실은 너무 사랑받고 싶다는 뜻이었다는 걸, 엄마도, 나도 몰랐고…
그렇게 나는 차가운 딸이 되어버렸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라는 옛 노래 가사가 있다.
나는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 용기가 없었고, 그래서 스스로에게 무지했다.
그런 나를, 엄마가 이해해주길 바라는 건 어쩌면 참 이기적인 일이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은 탓에, 나는 봄 날씨처럼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마음 중 어떤 감정이 진짜인지조차 몰랐다.
사랑인지, 원망인지, 미움인지, 그도 아니면 그냥 무관심인지.
그 혼란 속에서 나는 마치 랜덤 뽑기처럼 떠오르는 마음을 하나 툭 던져놓고, 엄마가 애정어린 반응을 해주길 기대했다.
내가 나를 조금 더 빨리 이해했더라면, 엄마에게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사랑을 주고받고 싶은지 이야기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다행히 지금의 나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나는 엄마의 사랑을 거부한 게 아니라, 그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나 자신을 미워하고 있었던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