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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스트이십일 Jun 18. 2021

히틀러는 어떻게 독일의 독재자가 되었나

[포스트21 뉴스=김민진 기자] 인간은 언제나 잘못을 반복하고 자신의 판단에 의문을 가지길 두려워한다.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성체임을 자처하지만 의외로 굉장히 감정적이고 나약하다. 인간 본성의 이러한 나약함을 절묘하게 파고들어 전 세계를 전쟁의 포화 속으로 밀어넣었던 이가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독재자, 바로 아돌프 히틀러다. 이번 기사에서는 히틀러가 어떻게 독일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그가 저지른 만행은 무엇이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평범했던 괴짜가 최악의 독재자가 되기까지


역대 최악의 독재자지만, 그의 일생은 히틀러가 직접 작성한 <나의 투쟁>이라는 책에 자세히 나와 있다. 어린 시절에는 평범하게 자랐다고 한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강압적인 가정교육을 받았다고 회술하고 있지만, 아버지는 히틀러가 어린 시절에 돌아가셨고, 그는 평범한 학생으로 성장했다. 특이한 점은 미술을 좋아해 종종 그림을 그렸다는 것. 그러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히틀러는 자진입대하여 군인으로 이력을 쌓아간다. 군대 내에서도 괴짜이긴 했지만, 너무나 평범하게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는 사병이었다고. 

독재자 히틀러

당시 함께 복무했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때부터 국가의 나아갈 길을 고민하며 민족주의적 색채를 띄게 되었다고 한다. 1차 대전 종전 이후, 히틀러는 나치에 입당했고, 여기서 자신의 탁월한 연설능력과 정치력을 십분 발휘해 요직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롤 모델로 삼아 쿠데타도 일으키려 했으나 실패해 감옥에 수감되기도 한다. 출소 이후, 히틀러는 노선을 바꿔 정치력으로 집권할 것을 결심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대공황과 막대한 전쟁배상금으로 지쳐있는 독일 국민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건드리며 1933년, 정권을 합법적으로 얻어내기에 이른다. 이후 히틀러는 과감하고 잔인하게 권력을 잡기 위한 시도를 이어나갔고, 마침내 세계에서 유래없는 독재자가 탄생하게 되었다. 


히틀러 최악의 만행. 홀로코스트


히틀러는 독재자로 군림한 이후 자신이 평생 생각만 하던 정책을 실행에 옮겼다. 그 중 대표적인 만행이 바로 홀로코스트다. 히틀러는 독일인은 우월한 민족이라는 자신의 사상을 증명하기 위해 독일인이 아닌 거의 모든 인종을 학살했다. 그중 가장 많은 피해를 받은 민족은 히틀러에 의해 열등한 인종으로 규정된 유대인들이었다. 1933년 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 인구는 약 900만 명 이상. 히틀러는 이들을 멸절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신념 아래 수많은 학살을 자행했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아예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만들었으며 이곳에서 아무 이유 없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희생당한 사람만 100만 명에 이른다. 여기에 러시아인, 동유럽인까지 합치면 300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우슈비츠에서는 강제 노동이 일상이었고, 가스실과 소각을 통해 하루에도 1,000~2,000여 명의 인간이 죽어 나갔다. 히틀러는 집시나 장애인들 역시 살 가치가 없다고 여겨 유대인과 비슷한 방식으로 학살해 나갔다. 


거기다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어 수많은 민족과 나라를 멸망시켰고, 수많은 민간인들을 죽게 만들었다. 지금에 와서는 역대 최악의 독재자이자 악인으로 인식되고 있는 히틀러지만 그의 집권과정을 보면 완벽히 합법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럽의 그 어느 나라보다도 이성적이라는 평을 받는 독일인들은 대체 왜 히틀러를 지지했던 것일까? 


시대의 흐름에 편승한 히틀러


사실 히틀러는 여러모로 부족한 게 많은 인물이었다. 그가 사상이라고 내세운 것들도 면면을 살펴보면 금방 밑천이 드러날 만큼 이론적 구조를 지니지 못하고 있으며 본인도 그리 학식이 뛰어나지 않았다. 지나치게 폐쇄적이라 사교성도 떨어지고, 번뜩이는 재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히틀러는 대체 어떻게 독일을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일까? 먼저 당시 시대가 히틀러 같은 극단주의자가 활동하기 좋은 시기였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면서 엄청난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에 세계 대공황이 겹쳐 독일에서는 어마어마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쳐났고, 아무리 일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 절망만이 가득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독일 국민들은 이 모든 사태를 일거에 해결해줄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원했다. 애초에 연설능력이 뛰어나고 사람의 심리를 꿰뚫는 능력이 있었던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의 이 같은 마음을 읽어내 그들의 입맛에 맞는 연설로 전 국민적인 지지를 얻었던 것이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게다가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히틀러의 모습과 반대로 실제 히틀러를 만나본 사람들은 모두 그를 이성적이고 결의가 굳은 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만큼 타인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을 포장하는 데 익숙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히틀러는 개인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 역사상 최악의 지도자이자 독재자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그 같은 독재자를 탄생시킨 데 대한 통렬한 반성을 이어갔고, 마침내 오늘날, 유럽의 맹주로서의 위치를 다시금 되찾을 수 있었다. 


역사 속 인물이지만, 역사는 언제나 되풀이되고, 현재가 되는 법. 히틀러의 생애를 분석하고 되돌아보며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언제 또 그와 같은 독재자가 재탄생할지 모른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고 전범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포스트21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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