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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스트이십일 Nov 02. 2024

안전한 건축 위한 제도개선, 행정예고의 의미와 필요성

[칼럼] ㈜정안구조기술사사무소 정재천 대표

㈜정안구조기술사사무소 정재천 대표

구조도면 작성 책임···. 건축구조기술사에게 맡겨야 할 이유


[포스트21 뉴스=편집부] 최근 발생한 건축물 붕괴사고들이 건축 구조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토부는 건축구조기술사에게 구조도면 작성 책임을 부여하는 행정예고를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만큼은 이 변화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구조도면 작성 주체가 건축사가 아닌, 구조 전문가에게로 이양될 때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붕괴사고의 그림자, 건축물 안전성 제고 위한 제도적 변화


최근 들어 붕괴사고가 참 많이 발생하고 있다. 2020년 서울 잠원동 해체공사중 붕괴, 2021년 광주 학산빌딩 해체 공사중 붕괴, 2022년 광주 화정아파트 공사중 붕괴. 2023년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등 연이은 붕괴사고로 건축물의 구조안전성을 위한 제도개선이 논의되고 있다. 그 중 하나로 지난 9월 20일, 국토부에서 구조분야의 도서(구조도면 등)를 건축구조기술사의 책임하에 작성하도록 하는 건축물의 설계도서 작성기준에 대한 행정예고가 공고됐다.(관련 기사 https://www.molit.go.kr/USR/law/m_46/dtl.jsp?r_id=9085) 

여기서 구조도면은 보 및 기둥, 슬래브 등의 정보가 담긴 평면도, 각 부재들의 크기, 배근정보, 접합상세 등을 표현하고 있는 도면으로, 건축물의 구조안전에 가장 직접적인 정보들을 담고 있는 도면이다. 구조도서는 건축구조 분야의 전문가인 건축구조 분야에서 작성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인데 왜 이런 행정예고가 뜬 것인가? 놀랍게도 한국으로 한정하면 그렇지 않다. 통상의 경우, 건축도면을 넘겨받은 건축구조기술사가 구조설계를 하면서 구조도를 작성하는데, 이는 세부 치수가 다 안맞거나, 치수가 다 표기되어 있지 않은 정밀하지 않은 구조도이다. 필자는 최종구조도면과 구분짓기 위해 구조도 초안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구조도 초안을 손으로 그려서 주기도 했겠지만, 2024년에 그럴 리 있겠는가? 당연히 캐드파일로 작성해서 보내주게 되고, 이 구조도 초안을 건축사가 수정해서 최종 구조도면으로 제출하게 된다. 타 분야에 종사하거나, 해외에서 건축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이 행정예고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이때까지 그렇지 않았다는 것에 놀라워 할 것이다. 실제 필자 주변에서 토목구조 분야의 한 분이 당연한 행정예고가 왜 이렇게 많은 반대 댓글이 달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건축 설계와 구조 안전의 갈림길, 해외 사례와 비교


대부분의 해외사례를 보면 구조도면의 작성주체는 우리나라의 건축구조기술사와 유사한 자격을 가진 자에게 작성하도록 되어 있다. 올해 4월 25일, 대한건축학회에서 주관한 해외 각국의 건축구조와 관련된 사례조사를 발표했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일본, 미국, 영국, 독일,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폴 중 구조도면의 작성주체가 건축구조엔지니어가 아닌 사례는 한국이 유일했다. 사실 해외사례까지 볼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국내 사례만 보더라도, 토목분야의 도서는 토목에서, 설비분야의 도서는 설비에서, 조경분야의 도서는 조경에서, 전기분야의 도서는 전기에서, 소방분야의 도서는 소방에서 작성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건축구조 분야의 도서만 건축설계분야에서 작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실제로 자주 발생하는 사례인데, 구조계산서 상의 구조도와 최종납품된 구조도면이 불일치 할 가능성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일정 규모 이상인 건축물이라면 건축구조기술사의 참여가 의무이므로, 구조계산서는 건축구조기술사가 작성하게 된다. 이때 구조계산서상에 구조기술사가 작성한 구조도가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구조기술사가 작성한 구조도를 토대로 건축사가 작성한 구조도면이 최종납품된 구조도면이 될 것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별문제가 없는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 과정에서 구조도면이 불일치되는 사례가 꽤 자주 있다. 


구조설계 비용 증가 우려와 건축물 안전의 딜레마


보통의 경우라면, 약간의 도면불일치 정도로 실질적인 문제는 발생하지 않겠지만, 간혹 건축구조에 치명적인 방향으로 변경되는 경우가 있어 아찔했던 사례가 필자에게도 몇 번 있다. 아니 어쩌면 뒤늦게라도 그 치명적인 차이를 발견해서 수정할 시간이라도 있었던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감리 또한 건축사일 것이므로, 구조도면부터 오류가 있었다면 이 오류를 발견할 기회는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건축 설계분야에서 반대하는 것에 전혀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건축사는 토목, 조경, 설비, 소방, 기계 등 모든 분야와 협업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변경사항이 발생한다면, 건축구조 분야와도 추가로 협업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구조도면을 건축사가 그리게 되면, 본인의 판단하에 사소한 변경은 추가협업 없이 직접 변경해서 나가면 되지만 구조도면 작성주체 자체가 바뀌게 되면 사소한 변경 하나하나까지 다 협업해야 하게 되므로 일하기가 매우 불편해 질 것이다. 건축구조기술사 또한, 이 행정 예고안이 달갑기만 할 수 없다. 업무량이 증가하게 될 것이고, 구조도면을 높은 퀄리티로 작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통상 공사비의 0,1%에 불과했던 구조설계비용으로 이 업무를 감당할 수 있을 리 없고, 구조도면 작성 비용을 추가한다고 몇푼이나 더 받을 수 있을지 걱정 될 것이며, 실질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구조도면 작성자로서 책임만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불편함은 건축물의 안전을 위해서 감당해야 할 불편함인데 그동안 감당하지 않았던 것 뿐이다. 건축구조 분야에 충분한 지식이 없는 건축사가 본인의 판단 하에 사소한 변경을 하다가 사소하지 않은 변경사항이 건축구조 분야의 확인 없이 최종도면으로 제출되게 되고 결국 시공까지 하게 된다면? 또 다시 붕괴사고가 발생하게 될 수 있다. 건축물의 안전을 위해서 구조도면 작성주체가 이제라도 행정예고대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포스트21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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