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어젯밤 포르투에서 버스를 타고 스페인 산세바스티안에 내렸다. 순례길에서 만난 친구 이타를 만났다. 아침 7시 반에 도착하는데도 이른 아침 일어나 직접 마중을 와주다니 참 고맙더라. 숙소가 부족해서 성당 바닥에서 같이 하루를 보낸 특별한 인연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침 일찍 집에서 나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순례길 친구 의리가 역시 최고다.
산세바스티안은 북쪽길 초반에 걸어서 도착했던 동네다. 그래도 한번 와봤다고 익숙한 골목들이 있더라. 그때는 아는 사람 아무도 없었는데 순례길에서 이타를 만나서 이곳을 다시 또 올 수 있었다. 몰랐던 동네에서 아는 친구 한 명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구글맵을 안 켜고 로컬만 열심히 따라다녀도 되어 편안했다.
같이 아침을 먹었다. 마지막 스페인이라 우리나라 계란말이 느낌의 또르띠야를 선택했다. 계란, 감자, 양파 세 가지로 든든하고 감질맛 나는 식사는 또르띠야가 최고가 아닐까. 오랜만에 먹으니 더 맛있었다. 이 맛을 기억해 두었다가 한국에 가서 스페인 또르띠야를 구현해 봐야지.
후식으로 젤라토를 먹었다. 서로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했다. 난 유튜브 구독자 천명과 첫 책 출판을 할 거라고 말했다. 이타는 9월부터 프로그래밍을 배워 자기만의 게임을 만들 거라고 했다. 2시간 만에 나는 프랑스 가는 버스를 이타는 바에 출근해야 해서 헤어졌다. 각자 서로를 응원하며 나중에 또 만나자고 했다.
두 번째 버스에 오른 지 삼십 분쯤 지났을까. 프랑스로 풍경이 바뀌었다. 검문소 따로 없이도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것이 참 부럽더라. 혹시 몰라 여권을 품고 있었는데 다행히 아무런 절차가 없어서 한시름 놓았다. 그렇게 여섯 시간을 내리 달려 뚤루즈에 도착했다. 거의 다 올 때쯤 차가 많아서 막히더라.
터미널 근처 스타벅스에 가서 친구가 퇴근하길 기다렸다. 아이스아메리카노 톨 사이즈가 3.45유로다. 2.3유로이던 포르투갈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확실히 프랑스가 포르투갈보다 물가가 비싸다. 다만 똑같은 점은 스터디카페처럼 학생들로 북적인다는 것이다.
끌로가 퇴근하면서 알려준 지하철역을 향해 열차를 탔다. 마지막 정거장이라 편하게 앉아서 왔다. 내가 유학한 도시엔 지하철이 없었는데 여긴 있어서 신기했다. 지하철에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끌로가 나온다. 즐거운 얼굴을 보고 포옹을 했다. 서로 5년 넘게 만인가 보다. 너무 반갑더라.
어느새 끌로는 뚤루즈에서 자리 잡고 자차도 있고 자가도 있고 멋진 직장도 있는 멋진 사회인이 되었다. 처음에 한국 왔을 때 내가 공항마중하고 우리 집에 재워줬던 게 새록새록했다. 끌로는 그때 처음 언어도 안 통하는 타지에 와서 힘들었는데 내가 냉장고에 아이스크림 많으니까 달달한 거 먹으면서 힘내라고 했다고 한다. 난 기억에 없지만 그걸 기억하는 끌로가 귀여웠다. 그때를 기억하머 지금 집에도 아이스크림을 둔다고 한다.
옛날이야기로 서로 추억할 거리가 많아서 대화하는 게 시간 가는 줄 몰았다. 이번 주말엔 프랑스 아버지의 날이라 가족들이랑 식사자리에 따라간다. 끌로랑 최대한 좋은 시간 많이 만들어야지. 국경을 2개나 넘어왔더니 피곤하고 졸리다. 오타도 많이 나고 눈이 감긴다. 그래도 지나칠 수도 있는 곳에서 친구가 살아서 의지할 수 있다니 감사한 일이다. 얼른 푹 자고 쌩쌩해져서 돌아다녀봐야겠다.
[끌로에가 그리워한 한국음식들]
1. 닭백숙
2. 김치전
3. 보쌈
4. 인절미
5. 칼국수
6. 수제비
그녀는 집에 이미 고추장, 된장이 다 있는 참 한국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