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냐노 아마레 당일치기 기차여행
에어비엔비 하우스 메이트 친구들이랑 이탈리아 기차를 타고 폴리냐노 아마레로 향했다.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린다는 이곳. 바리에서 폴리냐노 아마레로 가는 기차는 30분~1시간 간격으로 자주 있다. 이동시간은 30분이 소요된다. 동네가 작아서 하루면 대부분 구경 가능하다. 레미는 바리는 관광할 게 없는데, 바리 주변으로 작은 도시들이 예쁜 곳이 많아서 바리에 숙소를 잡았다고 했다.
레미는 바다에서 수영하고 싶다고, 수영복을 입었다. 혼자 수영하면 좀 그러니까 나도 따라 입었다. 막상 바다에 도착하니 엄청 춥더라. 4월의 유럽은 아직 겨울인지, 우리에게 춥다(푸리오, 무쵸 푸리오)는 말을 달고 살게 만들었다. 짧은 동굴이 보였다. 동굴 너머의 세상이 궁금했다. 그래서 양말과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은 후 동굴 같은 곳에 걸어 들어갔다.
발을 물에 담그자마자 얼 것 같은 차가움이 에워쌌다. 짧은 터널을 나오니 멋진 풍경이 파도치고 있었다. 보물 같은 풍경에 발 담그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감탄하면서 사진을 남기는데 갑자기 파도가 들이쳤다. 다가오는 무서운 파도에 소리를 꺅 지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여기 왔다고 사진은 찍고 싶었으니까. 바지가 흠뻑 젖었다. 노르마도 뒤늦게 합류해서 같이 파도맛을 제대로 봤는데, 추위를 이 아름다움을 함께할 수 있어 기뻤다.
날씨가 춥고 차가운 물에 젖어서 그런지 배가 더 극심하게 고팠다. 레미가 미리 찾아본 레스토랑에서 문어버거를 먹었다. 풍미 가득한 맛에 따로 자릿세를 안 받아서 더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자릿세를 받는 이탈리아지만, 예외의 경우도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원한 것은 없으며, 언제든 상황이 바뀔 수 있으니 뭐든 단언할 수 없음을 또 깨닫는다.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리듯.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어떤 일이든 필요함을 배운다.
오래된 작은 마을이 아기자기해서, 조금만 걸으면 계속 포토존이 펼쳐졌다. 바다뷰도 예쁘고, 길거리에 여기저기 유명인들의 명언을 적어놔서 따라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첫날에 레미가 크로스백이 고장 났다고, 가방 보면 사야 되니까 말해달라고 했다. 노르마도 이탈리아 의류를 좋아해서 사고 싶었는데 로마에서 마땅한 것을 못 찾았다고 했다. 그래서 가방이나 이탈리아 옷가게를 만나면 우린 들어갔다. 난 특별히 살 것은 없는데, 어딜 가나 사진을 찍어서 노르마가 신기해했다.
그러다가 레미가 마음에 드는 가죽가방을 발견했다. 레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블랙이다. 검정을 좋아하는데 진짜 멋진 디자인에 검정가방을 보더니, 이런저런 고민을 하더라. 이럴 때 나는 옆에서 구매에 확신을 주는 멘트를 잘 던진다.
가방이 69유로라서, 이거 69년 쓸 거니까 1년에 1유로 투자하는 거야. 그냥 사. 평소에는 영어단어가 잘 생각이 안 나는데, 물건 사라고 부치길 때는 영어가 술술 나오는 게 웃겼다. 레미는 진짜 마음에 들었는지, 원래 크로스 백을 사려고 했는데 백팩인데도 샀다. 그러면서 나보고 참 마케터라고 진짜 잘 판다고 하더라. 마음에 드는 건 지금 당장 사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없을지도 모르니까.
처음에 바리 왔을 때 레고 공식매장이 있더라. 오래된 레고시계를 새것으로 구매할 생각으로 신나서 찾아갔다. 근데 8년 전에 팔던 레고손목시계가 인기가 없는 품목인지, 바리 레고 매장에는 없었다. 사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갔는데 없어서 슬펐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게 눈앞에 있다면, 그냥 지금 사서 누려도 괜찮다. 물건도 시간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으니 말이다.
바리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이 좀 남아서, 기차역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책이 한편에 많이 꽂혀있고, 나오는 음악이 몸을 둠칫둠칫하게 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에스프레소 1잔을 주문했는데, 1유로더라. 여기도 자릿세를 안 받아서 이 동네는 자릿세가 없는가 싶기도 했다. 왓츠앱에 서로를 추가했다. 전화번호로 친구 등록하는 게 불편하더라.
노르마가 공책을 꺼내서 이름을 적어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고마웠다. 레미 성이 feng이길래 이건 아빠 성을 딴 거냐고 묻는다. 맞다고 중국인인 아빠 성을 따왔다고 한다. 노르마도 vernandes라고 자기의 성을 소개하며, 레미처럼 본인도 혼혈이라고 말한다. 아빠가 스페인인이고, 엄마가 이탈리아인이라고 하더라. 국적이 다른 남녀끼리 결혼해서 제3의 지역에서 태어난 둘은 대단한 인연이라 느꼈다. 에어비엔비에 머무는 기간도 일주일 이상으로 비슷했다. 거기다 노르마는 푸드 엔지니어, 레미는 컴퓨터 엔지니어라서 직업도 엔지니어로 같다는 점을 발견했다. 완전 운명적인 만남이 아닌가.
집에 돌아왔다. 난 체크인했지만, 레미의 배려 덕분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 새벽에 야간버스를 타고 도시를 이동한다. 글을 쓰는 지금도 레미방에서 덕분에 버스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다. 동갑내기 레미는 이야기할수록 비슷한 고민을 하고 통하는 부분이 많은 걸 알게 됐다. 집에서 일하니 너무 히키코모리가 되고, 집 밖을 안 나가서 우리 둘 다 세계로 여행을 떠나온 것. 그리고 둘 다 디지털노마드고, 태국을 좋아하는 것도!
미국이 물가가 가장 비싸서, 레미는 여행하면서 소비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동남아에서 3달 동안 있다가 와서, 살인적인 물가가 피부에 와닿는다고 말했다. 원래 먹는 것 좋아하는데, 유럽 오니까 하루에 한 끼 먹어도 그냥 배가 부르더라. 돈을 쓸 때마다 잔고가 동남아보다 더 크게 빠져나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혼자 집에서 일할 때는,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늦은 밤에 배달음식 시켜 먹고 바로 잠들어서 살이 쪘다. 일하는 것은 너무 재밌고, 즐거운 일이지만 악순환의 반복인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 퇴사했다고 했다. 레미는 척하면 척, 내가 조금만 말해도 바로 무슨 말하는지 이해해서 대화가 잘돼서 시간이 금방 흘렀다.
레미가 한국을 너무 좋아한다. 한국 사는 내가 부럽단다. 삼겹살도, 미스터보쌈도, 부대찌개도, 방탈출카페도 좋다고 했다. 그래 다음엔 한국에서 재밌게 놀자. 부산, 제주는 안 가봤다고 한다. 바다랑 수영을 좋아해서 마음에 들어 할 거라고 한국 오면 꼭 연락 달라고 당부했다.
노르마가 잠들기 전에, 레미 방에 와서 작별인사를 해줬다. 짧은 만남이고, 서로 모국어가 달라서 대화하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마음으로 통했다. 노르마가 사는 아르헨티나에 일 년 안에 다 같이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에어비앤비 해달라고 농담을 했는데, 진담으로 집은 작은데 침대 있다고 괜찮겠냐고 묻는다. 바닥에서도 잘 수 있다고, 수도에 살지 않아도 노르마를 위해 가는 거라 뭐든 좋다고 답했다. 그렇게 우린 찐한 볼뽀뽀 인사를 하며 뜨거운 안녕을 했다.
레미와 나는 노르마가 70살인 걸 믿을 수 없다며 우리보다 걸음이 빠르고 건강하신데 여행 다녀서 대단하다고 동의했다. 레미는 우리 또래 친구들은 다 결혼하고, 집 사고 성취하는데 이렇게 여행 다니고 프리랜서로 살면 노르마 나이쯤 되면 돈 없고, 주변에 친구도 가족도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가끔 고민한다고 했다. 나도 똑같은 상황이라고 했다. 우린 노말 한 게 아니니까, 우리의 시간을 기다리며 멈추지 않고 꾸준히 가는 것이다. 다소 외롭지만 새로운 경험을 우리가 직접 스스로 선택했으니 말이다. 우린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어제보다 오늘 더 친해졌다. 다음 만남까지 기약하는 사이가 됐다. 덕분에 평소보다 재밌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