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토리노 체크인

야간버스로 도시점프

by 탱탱볼에세이

로마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토리노로 넘어왔다.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바로 그 토리노다. 산에 둘러싸여 자연이 예쁘고 기존에 머물렀던 바리, 로마랑 또 다른 느낌이다.

아침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카페에 들렀다. 아빠, 엄마, 아들 가족끼리 운영하는 곳이었다. 가족끼리 운영해서 그런지 유난히 밝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단골손님들도 많은 듯했다. 아들이 먼저 다가와 영어로 물어봐준다. 크로와상 하나 주문하니 먼저 카푸치노라고 물어본다. 카푸치노를 보통 크로와상에 먹나 보다. 카푸치노 받고 에스프레소도 주문했다. 계산할 때 보니 이탈리아에서는 크로와상을 브리오슈로 부르더라.

토리노에서 먹어본 브리오슈가 제일 맛있었다. 버터가 달랐기 때문일까. 유난히 겉은 바스락거리고 속은 부드러워 버터의 풍미가 대단했다. 거기에 카푸치노의 부드러운 거품이 잘 어울렸다. 순식간에 브리오슈와 카푸치노를 흡입했다. 이탈리아 에스프레소는 쓰지가 않다. 적당히 원두의 풍미가 느껴지는 맛이다. 반은 원조 에스프레소 맛으로 먹고 반은 설탕을 넣어 섞어 마신다. 바닥에 남은 설탕마저 스푼으로 떠서 긁어먹는다. 작은 에스프레소에서 3가지 맛을 즐길 수 있다.


배가 부르니 토리노가 더 좋아 보인다. 이틀 내내 야간버스에서 잠들어서 조금 지쳤는데 이탈리아 커피로 에너지를 회복했다. 걷다가 가로수가 초록초록하게 펼쳐진 공원을 만났다. 엄마아빠한테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는 아침이면 전화를 건다. 두 분 다 바쁘신지 연결이 안 된다.

어제 로마에서 역사유적지는 하나도 안 보고 도서관만 갔다가 와서 다들 논란이 있었을 거 같다. 로마에 간 것이 아니라 잠시 들리는 정도로 있는 체류시간이 짧았고, 어차피 5월에 친구 만나러 또 로마에 가기 때문에 가방이 무거워서 버스 터미널 근처 30분 반경에서만 놀았다. 날씨도 추워서 뭔가 괜히 바깥에서 고생하면 로마에 첫인상만 안 좋아지니까 나로서는 따뜻하고 안락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공원에 앉아 가만히 토리노의 사람들을 지켜본다. 개 산책 시키시는 분들이 꽤 있더라. 도심 속에 공원이 많은 느낌이라 좋았다. 공원에는 꼭 벤치가 있어서 잠시 시간을 멈춘 것처럼 가만히 앉아 상념에 잠길 수 있다. 엄마와 통화가 힘겹게 연결된다. 이미 로마에 다녀온 엄마가 또 한 소리한다. 그래 아마도 로마 가서 국립도서관만 있다 오는 한국인관광객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의 여행계획을 엄마한테만 공개했다. 엄마는 소매치기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난 유럽에서 1년도 살아봤는데 그 정도는 마스터했다고 허세를 부려본다.

다시 짐을 챙겨 거리를 나선다. 여기도 레고스토어가 있길래 레고손목시계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다시 가봤다. 저번 바리 매장보다 조금 큰 규모였다. 레고 옷도 팔고 가방, 캐리어까지 팔길래 희망을 가져보았지만 시계는 역시 없더라. 근데 레고여권을 공짜로 준다고 그래서 한번 달라고 해봤다. 유치하게 도장이 몇 개 찍혀있는데 표지가 금박이라 레고여권 귀엽더라. 어차피 앞으로 레고매장이 보이면 계속 가볼 생각이라 레고여권에 도장 찍어봐야지.

조만간 스페인 순례길을 걸을 예정이라 스포츠용품계의 이케아인 데카트론으로 향했다. 데카트론은 저렴하지만 필요한 기능을 다 갖춘 스포츠용품들로 즐비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 송도에도 들어와 있는데 가본 적은 없다. 지난 순례길에서 순례자들이 데카트론 제품을 많이 사용해서 궁금했었다. 배낭 하나를 10유로에 살 수 있다니.

나는 스틱이 필요했다. 옛날에 순례길 걸을 땐 아무것도 모르고 패기로워서 학교에서 들고 다니던 가방에 구멍 난 뉴발란스운동화에 천 원짜리 양말을 신고 무작정 걸었다. 물집도 많이 나고 무거우면 물건을 버려가면서 나무막대기가 있으면 그냥 주워서 짚고 다니며 견뎠다. 하지만 이번엔 가방무게가 더 무겁고 순례길을 더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저렴한 스틱을 골랐다. 1개에 5유로 꼴이다.

긴 바지도 필요했다. 저번에 한벌 사고, 계속 빨래해서 입고 있는데 언제까지 단벌바지로 살아갈 순 없었다. 데카트론 바지는 등산용 스타일이라 주머니도 많고 반바지로 분리되도록 만들어졌더라. 오래 다녀야 되니까 가장 저렴한 20유로 대 손빨래하기 편한 재질의 바지를 담았다. 다행히 입어보니까 나에게도 딱 맞았다.

데카트론을 보다 보면 충동구매가 일어난다. 왜냐면 색깔도 예쁘고 기능도 좋은데 가격도 합리적이라 하나씩 담게 된다. 길을 지나다 보면 물을 마실 수 있는 식수대가 꽤 있다. 물 먹는 하마인 나는 물병을 담는다. 양말이 바닥 부분이 도톰한 것이 2개에 6유로라 또 솔깃했다. 물집을 조금이라도 방지하고 싶은 마음에 양말을 담아본다. 얼마 전 관심이 생겼던 태양광충전기패널을 팔고 있어서 가격은 모르지만 일단 담았다. 깔창을 보니까 오래 걸으려면 운동화이니 깔창이라도 있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10유로짜리 푹신한 깔창도 카트에 담았다.

셀프 계산대에 물건을 한꺼번에 올렸다. 바코드를 찍지 않아도 알아서 가격이 찍힌다. 80유로 넘는 돈이 나왔다. 순례길 대비 제대로 했다고 생각하지만 예산 범위를 초과해서 깔창을 선택하고 양말을 내려놓았다. 태양광에너지 패널도 30유로가 넘길래 과소비다 싶어서 뺐다. 40유로 초반대로 금액이 조정됐다. 이렇게 데카트론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홀린듯이 구경했다.

쇼핑을 다 하니 짐이 또 늘어났다. 숙소 체크인 시간이 2시간 반 정도 남았더라. 근처 맥도널드로 향했다. 기차역에 있는 맥도널드라 사람이 많았다. 맥도널드는 좋은 게 인터넷와이파이도 되고 충전도 가능하다. 자리도 편하다. 가방 2개를 벗어던지고 주문 키오스크에 줄을 섰다. 줄이 길어서 계속 가방 벗어둔 내 자리에 누가 눈독을 들이나 감시했다. 혼자 여행 다니면 안 좋은 게 가방을 봐줄 사람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키오스크를 보니 가격이 다 비쌌다. 콜라 한 잔 가격도 3천 원이 넘었다. 어쨌든 2시간 정도는 있어야 되니까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메뉴 단품만 주문하면 결제하자마자 거의 바로 음식을 받을 수 있다. 음식을 받아서 자리로 향한다. 아빠한테 전화가 와서 통화를 했다. 해외에 여행 오니 부모님이랑 전화가 늘었다. 아무래도 거리가 멀어질수록 마음은 가까이하게 되나 보다.

맥도널드 와이파이가 연결하려면 sns계정을 들어가야 되는데 웬일인지 접속이 보안 때문에 원활하지 않았다. 와이파이 연결을 포기하고 내 유심 데이터를 사용했다. 아직 3분의 1 정도 기간밖에 안 됐는데 데이터를 벌써 80% 이상을 썼다고 통신사에서 경고 문자를 줬더라. 며칠간 와이파이 안 되는 숙소나 상황을 맞이하다 보니 당연한 결과다.


가방을 내려놓아 내 자리를 잡고 충전이 되는 환경이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마음이 편안하면 시간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흐른다. 어느새 체크인 시간이 가까워져서 짐을 챙겨 거리로 나왔다.

걷다 보니, 메인광장을 마주했다. 여기도 나름 도시규모가 있어서 성당이 컸다. 이집트박물관이 큰 게 하나가 있는데 전 세계 2번째 규모라고 한다. 왕립도서관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을 소장해서 유명하더라. 짐이 무거워서 어딜 방문하기보다는 얼른 숙소로 가고 싶어 졌다.

체크인 시간에 맞춰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 건물이 공사 중이라 여기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건물 전체가 철제구조물이 쳐져있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이곳이 저렴해서 1박을 구매했어서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얼른 짐을 풀고 샤워를 했다. 이틀 동안 숙소 없이 길거리에 찌들어있다가 씻으니 세상 개운했다. 이제는 이틀 내내는 야간버스를 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에게 땀에 찌든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씻고 짐을 정리했다. 가방을 하나로 만들고 싶은데 짐이 많아서 우선순위를 정해 본다. 지금 못 입는 여름옷은 깔끔히 버려본다. 챙겨야 할 짐의 가짓수가 많아질수록 스트레스가 크다. 어쩌다 잃어버리는 것보다 먼저 덜 필요한 걸 버리는 게 차라리 낫다.


새로 산 깔창을 바꿔본다. 기존 운동화깔창이 닳고 냄새로 가득했는데, 상대적으로 기능성깔창을 까니 새 신발이 된 느낌이다. 길에서 있는 시간이 길수록 신발은 참 중요하다. 무거운 나의 무게를 든든히 받쳐주는 건 신발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깔창 사길 잘했다.


씻고 짐을 재정비하니 미뤄둔 잠이 쏟아진다. 이틀간 버스에서 쪽잠을 잤더니 금방 곯아떨어졌다. 일어나 보니 밤 11시 30분이다. 오후 4시쯤 잠들었는데 잠으로 시간이 순간삭제되었다. 내가 자는 침대는 이 층침대인데 난 2층에 산다. 1층도 깨어날 때 보니 입주했더라.


어두워서 특별히 뭘 할 순 없고 핸드폰을 켜고 오늘 일들을 적었다. 유럽을 오긴 왔는데 비싼 유로 때문인지 무거운 짐 때문인지 추운 날씨 때문인지 역사유적에 은근히 관심이 없기 때문인지 유럽의 도시는 좋지만 적응이 안 된다. 그래서 순례길을 빨리 시작하기로 했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결국 짐도 잡념도 다 버리게 된다. 왜냐면 세상 무겁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무조건 가벼워져야 한다. 그럼 소중히 품었던 것들을 하나씩 버려야 된다. 그렇게 걷다가 조그만 사람 사는 마을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성당이 항상 마을 중심에 자리해 있어서 마을을 지켜주는 느낌이 든다.


옛날에 좋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던 순례길을 또 걷는 게 나에게 이번엔 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기대가 된다. 뭐든 지금 가진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훌훌 버릴 수 있기를. 그렇게 조금씩 매일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기를. 그렇게 내게 주어진 풍경들을 넓고 깊게 품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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