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몰락 앞에서 자식으로 선다는 것
삶은 굽이굽이 산길입니다.
오솔길도 있고, 험준한 고바위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 길이 끝난 줄 알았는데도,
다시 또 시작되곤 합니다.
인생의 고초를 꽤 지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처럼 많은 고난이 한꺼번에 닥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나는 의연하게 서 있으려 애씁니다.
분명 나는 평안하다고 느끼던 날이었는데,
문득,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친 눈물이
나를 삼키는 순간들이 종종 찾아옵니다.
그리고 저는, ‘자녀’라는 이유로
위로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백억대의 자산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
이토록 생생하게 그 장면을 보는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해보면
평안함이 우리에게 주어진 적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모님도 그리 알차게 살아오셨던가 싶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늘 들었습니다.
“딸은 출가외인이다.”
그래서 누려야 할 것도, 쓸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고요.
공부를 더 하고 싶어 울던 날에도,
“안 돼!”라는 말로 가로막히곤 했습니다.
장학금으로 버티며 살아야 했던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딸이라는 이유로,
‘쓰는 자격’은 주어지지 않던 시절이었지요.
“그래야 나중에 큰 사람이 되는 거야.”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고,
그 말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렇게 지켜오신 부모님의 삶이
이제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스르르,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건물들이, 돈이, 체면이…
모두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수습해보려고 여기저기 발을 들여놓지만
주변에는 하나같이 좋지 않은 사람들뿐입니다.
진심으로 돕고자 하는 이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게 더 가슴 아픕니다.
화가 납니다.
왜 이 지경이 되도록 침묵하셨을까요?
왜, 좀 더 일찍 말씀하지 않으셨던 걸까요?
그리고...
왜, 일이 터질 때마다
자식에게만 모든 짐을 내맡기시는 걸까요?
길을 걷다 지치고, 고민하다
지혜가 나오지 않아,
어쩌면 될까 싶어
우리 손에 쥔 돈을 헤아려 봅니다.
부모님이 누구보다 힘드실 걸 압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만,
서러움이 폭발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서는 관대하고 베풀며
많은 것을 흩어 주셨던 부모님.
그런데 왜 정작 우리에게는
작은 여유조차 남겨두지 않으셨던 걸까요?
그랬다면 지금쯤,
두 분을 조금 더 편하게 모실 수 있는
우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요.
지혜를 구합니다.
지금의 이 일들이,
무엇이 되었든,
‘뭔들 어떠하리’라는 마음으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할 뿐입니다.
광야 같은 삶의 길 위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순간들마다
주님께 기도했던 날들을 기억합니다.
그때마다 건지시고 인도해주셨던
그 주님을, 오늘도 의지합니다.
할 수 있는 힘을,
돕고 돕는 선한 사람들을,
간절함 속에 드러날 지혜를,
부모님의 낮아진 마음 위에
친히 찾아오실 주님을…
나는 오늘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