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화 Feb 07. 2022

내 아버지는 염부였다

고향의 물레방아는 오늘도 돌아가는데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번 보고 / 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보며 / 서울로 떠나간 사람'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 첫 소절이다. 

생전의 내 아버지 최애 곡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내 고향 외딴섬에서 태어나 그 섬에서 살다가 돌아가셨다. 한때 아버지는 섬을 나가려고 하셨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당신의 삶이 섬을 나가면 좀 나아질까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끝내 섬을 나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평생 염부였다.

‘염부’라는 두 글자에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염전도 소작이라 소금 값이 폭락한 해는 소작료 내기도 힘들었다.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해도 질긴 가난의 굴레는 아버지의 생을 옭아매고 놓아주질 않았다. 바닷물이 햇볕에 말라 소금결정체로 되는 동안 아버지 얼굴과 팔다리는 검게 그을리고 껍질이 벗겨졌다. 검정장화 속 아버지의 발은 늘 소금물에 허옇게 불어있었다.

     

십리나 떨어진 중학교에 가려면 염전을 지나야했다. 

한창 사춘기였을 때라 그랬을까. 염전 수차 위에서 손 흔들며 내 이름을 부르는 아버지를 모른 척하고 지나쳤다. 어려서 천연두를 앓은 아버지 얼굴은 성한 구석이 없게 온통 곰보자국이었다. 철없던 나는 박박 얽고 새까만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햇볕에 그을려 이빨만 하얀 아버지를 친구들이 ‘아프리카 깜둥이’라고 놀리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 


‘천리타향 멀리 가더니 / 새봄이 오기 전에 잊어버렸나’

저물도록 염전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마중 나가곤 했다. 칠흑 같은 어둠 저편에서 술에 절고 피곤에 절은 노랫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아버지 노랫소리는 잠잠한 마을어귀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노래가 아니라 푸념이고 한탄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뒤따라가며 뜻도 모르는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느해 봄날, 못자리에 물 보러 나간 아버지가 논둑에 쓰러지셨다. 

뇌졸중이었다. 두 번의 큰수술과 수개월 간 중환자실에서 벌인 사투는 처참했다. 반신마비로 고향에 다시 돌아온 아버지는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셨다. 고생 끝에 낙이 있을 거라 믿으며 평생 소금물에 발 담그고 살아왔던 당신의 삶이 어이없이 지고 말았다. 아버지가 쓰러지던 그때는 자식 넷이 다들 먹고 사느라 허덕이던 시절이었다. 아무도 돌보지 못한 아버지 마지막 길이 얼마나 쓸쓸하셨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는 안타깝고 쓸쓸한 삶들이 어이없게 스러지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아프지 않는 삶이 얼마나 될까마는, 아버지 삶을 떠올리면 내 몸 한 곳에서 통증이 인다. 당신의 못다 이룬 꿈과 못다 부른 노래가 자꾸만 아픈 그곳을 후빈다. 가만가만 그 노래를 불러본다.

'고향의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가는데...'

 


작가의 이전글 수 놓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