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1989 목포』 출간하고 떠난 목포여행
첫째 날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북항이었다.
구 조선내화공장 우뚝 선 굴뚝과 그 너머로 북항 바다가 찰방찰방 물결을 내며 반겼다. 눈을 들어보니 해상케이블카가 바다를 가로질러 떠다녔다. 고소공포증이 심한 나는 케이블카가 그리 반갑지가 않다. 언젠가 통영 케이블카에 멋모르고 올랐다가 몹시 떨었던 공포가 아직도 남아있기에. 고하도가 마주 보이는 창 넓은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북항 근처에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으로 유명한 서산동 바보마당(바다가 보이는 마당)이 있다. 산비탈에 붙은 집들이 소설 「1989 목포」의 배경과도 흡사해서 가슴 두근거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다닥다닥한 집들과 가파른 골목길이 일부러 보존된 건 아닐 테고, 도시개발의 바람이 비켜간 흔적 같아서 한편으로 마음이 아렸다. 이 골목 어딘가에는 내 소설 속 주인공과 <희주>가 아웅다웅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다음에 찾은 곳은 근대역사박물관이다. 일본영사관이던 건물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목포의 시작부터 근대사까지의 자료를 전시해놓은 역사적 공간이다. 과거 식민지 수탈의 아픔과 민족의 저항 역사를 기억하고자 일제강점기 때의 자료들을 보존해놓았다. 목포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생생한 자료가 많았다.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온 느낌이랄까. 박물관을 나서는데 가이드가 뒤편 방공호도 보고가라고 했다. 조심스레 건물 뒤쪽으로 향했다. 태평양전쟁시기 공중폭격에 대비해서 피난 장소로 만든 인공동굴이었다. 한국인을 강제 동원하여 혹독하게 노동시키는 모습을 재현해놓아 마음이 아팠다.
둘째 날, 눈을 떠보니 눈이 내렸다.
밤새 바람소리가 심상찮더니 눈바람이었다. 여행길에 눈을 만나다니,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일찍 유달산에 오르려던 계획은 접어야했다. 대신 차를 타고 유달산 아래 일주도로와 눈 내리는 목포 시가지를 천천히 달렸다. 내가 다녔던 목포여고와 낙원교회, 오래 전 자취방이던 골목을 찾아다녔다. 길은 서툴고 눈바람은 점점 세찼다.
한 시간 남짓 돌다가 차를 돌려 목포문화재거리로 왔다. 한산한 식당에 들어가 뜨끈한 닭개장으로 점심을 먹고 구도심 주변을 둘러봤다.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낡고 빛바랜 건물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모 국회의원의 투기의혹으로 시끌시끌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런 곳이 투기지역이라니! 믿거나 말거나이겠지만 솔직한 느낌은 폐허로 잊힌 낡고 구석진 모습이었다. 손닿으면 허물어질 것 같은 허술한 벽체와 주저앉을 듯한 지붕, 텅 빈 가게들, 인적 드문 도로에 눈발까지 날려 스산한 풍경을 연출했다. 아직도 이런저런 많은 말들이 떠돌지만 어쨌거나 이곳 구도심 주민들이 다 같이 잘 사는 모양으로 변화되길 바랐다.
추위에 떨다가 우연히 <밀물카페>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과거 목포예술가들의 공간이 <밀물다방>이었는데 이를 재해석하여 만든 카페라고 한다. 어쩐지 카페입구부터 분위기에 끌린다 했다. 목포를 소개한 책 한 권 펼쳐놓고 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였다. 저녁이 되면서 눈발은 자꾸만 굵어졌다. 게스트하우스 창밖으로 날리는 눈을 보며 폭설에 며칠 발이 묶이는 상상도 해보았다. 그렇게 나의 2박3일 목포 여행은 펄펄 날리는 눈발에 소리도 없이 묻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