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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화 Jan 07. 2022

겨울 목포 여행 -1

소설집 『1989 목포』를  출간하고 떠난 목포여행

-목포, 첫 만남과 떠남

사방이 바다인 섬, 잿빛 먹먹한 바다만 보고 자란 섬 아이들은 뭍을 향한 막연한 동경을 품었던 것 같다. 누군가 뭍에 나가 기차와 버스, 쭉쭉 벋은 고가도로를 보았다고 자랑하면 동네아이들의 온갖 부러움을 샀으니까. 

내가 목포에 처음 나온 때가 열다섯 여름이었다. 어머니는 고장 난 전기프라이팬을 내 손에 들려서 하루에 한 번 오가는 정기여객선에 태웠다. 친지 상을 당해 하루 일찍 목포에 가신 아버지를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다면서 말이다. 뭍으로의 나들이가 처음이던 그땐, 세 시간의 뱃길이 설렘보다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선실밑창에 고인 담배연기를 피해서 갑판 위에 쭈그리고 앉아있을 때였다.

“유달산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 거대한 바위산이 무뚝뚝하게 섰고 그 아래 목포항이 희부윰한 안개를 감은 채로 맞았다. 하지만 항구에서 기다리신다던 아버지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세찬 빗줄기가 쏟아졌다. 내 주머니에는 동전 몇 푼이 들어있을 뿐. 나는 전기프라이팬을 싼 보자기를 꽉 쥔 채 공중전화부스 안에서 비를 피했다. 버림받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가슴께 차오르자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목포와 첫 만남은 그렇게 축축하게 각인되었다.     

열일곱에 고등학교 진학으로 다시 목포에 왔다. 어린나이에 자취를 하면서 학교에 다니는 일은 무척이나 외롭고 힘겨웠다. 고향집이 그립고 부모형제가 그립고 함께 뛰놀던 동무들이 그리워서 향수병에 시달렸다. 평생 가난했던 부모는 자식들이 못 배우면 자신처럼 가난할 거라고 아득바득 벌어서 쌀과 학비를 배편에 실려 보내왔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마치고 목포를 떠났다.  

        


-30여년 후, 다시 찾은 목포

소설집 한 권을 탈고하면 여행을 떠난다. 오랜 시간 수고한 나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인 셈이다. 두 번째 소설집 『700년 전 약속』을 출간하고는 딸과 함께 일본 동복사엘 다녀왔다. 이번에 세 번째 소설을 내면서 목포에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표제가 『1989 목포』이기도 했고, 두 번째 장편집을 냈을 때 지키지 못한 약속이 걸리기도 해서였다. 목포 <좋은집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700년 전 약속』을 읽고 손편지로 정성스런 소감을 적어주셨을 때, 그 답례로 꼭 방문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막상 여행날짜를 잡아놓았는데 코로나19 확진자가 수천 명대로 늘면서 상황이 안 좋아졌다. 이런 시국에 집을 나서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다 홀로 조용히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친구나 지인들과 만남을 잡지 않았고 정해진 일정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돌아보기로 했다. 

목포로 향하던 첫날은 겨울비가 얌전히 내리고 포근했다. 이대로 봄이 올 것만 같았다. 88고속도로를 타고 광주까지 한 시간 반 걸렸고, 광주에서 목포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렸다. 30여년 전 내 기억 속 목포는 손바닥처럼 눈에 훤한데 정작 눈앞에 펼쳐진 도로와 건물은 너무나 낯설었다. 십 년이면 변한다는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셈이니 그럴 수밖에. 목포에 들어서기 전 넘치던 자심감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내내 두리번거리며 차를 몰아 도심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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