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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화 Jan 14. 2022

어쩌다 유령작가

대필작가를 대필하다

이제와 고백하건데 내 첫 작품집은 소설집이 아니다.

나는 한때 유령작가, 다시 말해 대필작가였다. 아니지, 엄밀히 말하면 대필작가를 대필한 꼴이었다.      


신춘문예당선을 목표로 머리 싸매고 소설을 쓰던 시절이었다.

두 해 거푸 낙선을 하고 실의에 빠져있을 때쯤 아는 선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요즘 바빠? 혹시 자서전 대필 함 해볼래?”

“대필이요? 누구 껀데요?”

“뭐, 그리 유명하진 않아. 내년에 시의원 나갈 거라는데 자서전을 낼 건가봐.”

때마침 일자리사업으로 나가던 숲길안내원 일이 끝나 겨울동안 시간이 남던 차였다. 선배가 알려준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더니 걸걸한 목소리의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그녀와 약속을 정하고 인근 갈비탕집에서 만났다.

“실은 저도 대필작가예요.”

“네에? 근데 왜?”

“자서전을 의뢰받았는데 사정이 생겨서요. 완성해줄 작가를 찾고 있어요.”

그 말을 듣는데 찜찜했다. 자기가 쓰던 글을 넘긴다는 것 자체가 석연치 않았다.

이런 내 마음을 읽은 건지 그녀는 내가 알고 싶지도 않은 가슴 아픈 가정사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글은 이미 60퍼센트 정도 완성해놔서 뒷부분만 마무리하면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일도 아니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다음 달까지 완성하면 백에서 3백 정도 드릴게요.”

백이면 백이고 삼백이면 삼백이지, 그녀가 금액을 제시하는 투가 석연치 않았다. 하지만 초면에 돈을 밝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알겠다고 했다. 글쓰기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던 터라 삼백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자만했 것이다.     


집에 돌아와 그녀가 보낸 메일을 열어봤다. 이럴 수가!! 분명 60퍼센트 정도 완성했다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아니었다. 완성된 글은 겨우 예닐곱 편이고 그마저 새로 다 고쳐야했다. 나머지 글들은 제목만 적어놓거나 낙서 같은 끼적임뿐이었다. 나는 대필녀에게 전화해서 자료가 이것뿐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것도 겨우겨우 쓴 거라며 는 소리를 했고 자료는 더 받아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때 그만두었어야 했다.     


그날부터 나는 대필녀가 보내주는 단어와 짧은 문장들을 조합해서 수필 한 편씩을 완성했다. 앙상한 가지에 잎을 붙이고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매달아주는 작업이었다. 내 존재를 의뢰인이 절대 알아서는 안 되었다. 글을 쓰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대필녀에게 물어야했다. 그렇게 두 달여를 방안에 틀어박혀 글만 썼다. 이윽고 50여 편의 글이 완성되었다. 황무지에서 꽃을 피운 것처럼 흐뭇했다. 지금껏 글을 써오면서 내 자신이 그때처럼 기특한 적은 또 없었다.       


몇 차례 수정작업을 거쳐 최종원고를 보내고 원고료가 송금되기를 기다렸다. 삼백만원을 받으면 며칠 후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근사하게 보내겠다고 가슴 부풀어있었다. 하지만 연말이 다 지나도록 원고료는 들어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대필녀에게 연락을 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차례 문자를 보내도 답을 주지 않았다.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선배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자기가 수소문해보겠다고 했다.

이윽고 대필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첫마디가 그동안 아팠다는 거였다. 자기도 아직 원고료를 받지 못했다며 의뢰인에게 차마 옮길 수 없는 욕설을 했다. 의뢰인이 내가 쓴 원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도 했단다. 그 말에 참았던 울분이 폭발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제가 쓴 글 모조리 돌려주세요!”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에 문자가 왔다. ‘어떻게든 원고료 받아서 보내줄게요.’     


그러고도 원고료는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대필녀에게 최종통보를 했다. 의뢰인에게 모든 사실을 밝히고 자서전 출간을 막을 거라고. 지금까지 내가 쓴 글 돌려달라는 내용증명도 보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바로 백만원이 송금되었다. 돈을 더 받는 대로 보내주겠다는 짧은 문자와 함께.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결국 책이 출간되었다. 224페이지 분량의 번듯한 자서전이었다. 제목은 밝힐 수가 없지만 지금도 검색하면 책표지와 관련기사가 버젓이 뜬다. 긴긴 겨울밤, 난롯불 앞에서 잠 설쳐가며 쓴 글이 얼굴 한번 못 본 의뢰인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나는 이후로 대필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속은 쓰리지만 그녀도 돈을 떼였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만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고 몇 달이 지났을까.

무심코 내가 쓴 자서전 제목을 검색했더니 뉴스란에 북콘서트를 열었다는 기사가 떴다. 큼지막한 사진도 함께였다. 행사장 단상 한 가운데 의뢰인이 활짝 웃으며 책을 들고 있었다. 축하객으로 보이는 이들 속에 대필녀도 보였다. 의뢰인의 자서전이 나오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이라는 소개글귀도 보였다. 그걸 보는데 참 씁쓸했다. 살면서 다시는 겪고 싶지 않는 일이었다. 그만 다 잊기로 했다.     

 

대필작가를 서양에서는 유령작가라고 한단다. 그렇다면 대필작가를 대필한 나는 무엇이었을까. 유령의 그림자 정도 됐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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