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아니라, 존중이 필요한 시절
유치원기 내면아이에 대한 책을 읽었다.
이 시기의 상처를 점검하는 질문들이 있었는데, 읽는 내내 놀랐다.
예전 같았으면 ‘예’라고 답했을 문장들이, 지금은 ‘아니오’였다.
참거나 외면하던 시절에서,
이제는 바라보고 표현하며 조절할 수 있는 나로 옮겨온 것이다.
그래서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오래도록 이 내면아이를 품고 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명상 파트의 한 문장에서 많은 순간을 느꼈다.
“어른인 당신이, 아이인 당신에게 ‘원한다면 와서 내 무릎에 앉아도 좋아요’라고 말하는 걸 들어보세요.”
그 구절을 따라가자,
아이인 나는 다가오지 못했다.
‘내가 귀찮게 굴면 싫어하지 않을까? 나를 귀찮게 여기지 않을까?’
그렇게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어른인 내가 사랑스럽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부끄러워 눈을 오래 마주치지는 못하면서도 조금씩 재잘거리며 이야기를 풀어냈다.
자연스럽게 내 무릎 위에 앉았고, 그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말할 때, 내 첫 반응은 단순하다.
“그랬구나.”
그 말을 하면서 아이를 계속 보며,
나는 네게 집중하고 있다는 시선을 보낸다.
그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건 거창한 게 아니다.
함께 재잘거려 주는 것,
나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가볍게 넘기지 않고 내 말을 존중해주는 어른이 되어주는 것.
그게 필요했다. 그땐.
문득 떠오른 장면이 있다.
유치원에서의 크리스마스 선물 증정식.
언니도 나도 인형을 받았다.
(당시 언니는 유치원생은 아니었고, 부모님을 따라왔을 뿐이다.)
언니의 인형은 고급스럽고 예뻤다.
화장도 되어 있었고, 키도 컸고, 머리는 큰 웨이브였다.
나는 너무 ‘아이 같은’ 인형을 받았다.
그때 나는 저 인형이 더 예쁘다고 말했을 것이다.
자세한 장면은 흐리지만, 거부당한 기분만은 또렷하다.
그동안 누적되어 온 무시당했다는 느낌.
[아,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구나.
언제든 버려질 수도 있겠구나.
저 사람들 사이에 내 자리가 없을 것만 같은 느낌.]
어렸을 때 이런 류의 기분을 본능처럼 자주 느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참 슬프다.
그때 내가 듣고 싶었던 건
‘이것도 예쁘다’는 위로나
‘그럼 다음에 바꿔줄게’라는 약속이 아니었다.
정말 듣고 싶었던 건 이 한마디였다.
“아, 너는 저 인형이 더 마음에 드는구나. 엄마가 몰랐어. 미안해."
차라리 나에게 선택지를 줬다면,
마음은 여전히 조금 상했을지라도 스스로 풀기로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저 인형은 언니 인형이니까
너의 인형을 다른 걸로 바꿔줄까?”
혹은
“지금은 그 인형으로 바꾸긴 어렵지만,
속상한 마음을 달래고 싶다면
네가 원하는 걸 하나 골라보자.
간식이어도 좋아.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나의 생각과 기분을 물어봐 줬다면..
그날은 무시당한 기억보다
존중받았다는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 아이가 정말 원했던 건 인형이 아니라
(실제로는 인형도 중요했겠지만)
내 마음을 함께 고민해주는 태도였다.
지금의 ‘어른인 내’가
그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다.
“엄마 아빠가 너를 잘 몰라서 그래.
너는 생각보다 주체적이고,
스스로 원하는 걸 충분히 말할 수 있는 아이야.
그걸 받아들이는 과정을 어른들은 잘 몰랐을 뿐이야.
이제는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들을게.
네 생각을 들어줄 거야. 너는 틀리지 않았어.
너는 이기적인 게 아니야. 나쁜 아이도 아니야.
소중하지 않은 건 더더욱 아니야.
어른들은 가끔 아이의 말을 중요하게 듣지 않을 때가 있어.
그건 네가 나빠서가 아니야.
그저 몰라서 그래.
이젠 내가 해줄게. 걱정하지 마.”
그 아이는 그때
포기와 두려움, 억울함, 이름조차 몰랐던 분노를 눌렀을 것이다.
아마 가장 컸던 건
그들에 속해있지 않다는 막연한 두려움.
(그렇다고 내가 학대를 받으며 자랐던 건 아니다.
그 시절의 부모님은 단지 잘 몰랐던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아이인 나에게 ‘자신을 존중하는 어른’이 되어주려 한다.
그 아이는 내 무릎에 앉아 재잘거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래, 계속 이야기해도 괜찮아.
나는 지금 너를 듣고 있어.”
혹시 지금의 여러분 안에도
여전히 말을 걸어오고 있는 작은 나의 목소리가 있나요?
그 목소리를, 오늘은 잠시 들어보면 어떨까요.
감정치유 전문가 / Bach Flower BFRP & 예비 BFTP 따블: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