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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툰자 Dec 19. 2022

동백 아저씨, 동백 아가씨

 《어쩌다 문구점 아저씨》



"방학 동안 잘 지냈어?"

오랜만에 카페에서 만난 지인에게 안부를 물었는데 소녀처럼 수줍은 얼굴이 되었다. BTS 노래를 들으며 행복했다고. 호기심도 많고 다양한 덕후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 나는 놀라지 않았는데 그녀는 쑥스러워했다. 중학생 딸이 좋아하던 아이돌을 지금은 자신이 더 많이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멜로디뿐만 아니라 가사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빛이 난다. 대상에 대한 열정 덕분에 생동감이 느껴지고 실제로 무언가 행동하고 있다. 커피를 마주하고 앉아 있던 두 시간 동안 사랑에 빠져있는 그녀가 몹시 부러웠다.


주말 오후, 폐관 시간이 한 시간도 안 남은 상황이라 부랴부랴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내가 찾는 책은 없었다. 허탈해서 돌아서는데  북 큐레이션으로 출구 앞 테이블에 놓인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다 문구점 아저씨>그렇게 어쩌다 만났다. 표지'동백 문구'라는  입간판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오가와 이토소설 <츠바키 문구점>이 떠올랐다. 가마쿠라의 동백(츠바키) 문구 아가씨는 대필 편지를 쓰는데 망월동 동백 문구 아저씨는 뭘 할까 궁금했다.


동백  문구 아저씨는 어린 시절  엄마 화장대 위에 놓인 아이브로우 펜슬이 어른들의 필기도구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머니의 연필은 부드럽고 진하고 쫀득했다'라고 회상한다. 특별한 연필 경험을 시작으로 새로운 연필, 샤프, 볼펜, 만년필까지 펜 덕후가 되고 펜 특징에 맞는 좋은 종이를 찾게 된다. 그렇게 문구 덕후가 된 그는 덕후 활동을 직업으로 발전시켰다. 훌륭한 펜과 그에 어울리는 잉크와 노트를 직접 제작해서  문구점에 진열한다.


종이와 펜, 작은 우표 하나도 신중하게 골라 편지를 쓰는 츠바키 문구점의  포포처럼  망월동 아저씨도  발품을 팔아 고르고 고른 종이로 만든 노트 위에 정성스럽게 글씨를 쓴다. 무언가를 좋아하다가도 내 열정은 양은 냄비처럼 금방 식어버린다. 내가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하는 활동이 독서와 필사다. 에세이를 읽는 내내 망월동 동백 문구로 달려가고 싶었다. 스샥스샥 만년필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와 보드라운 종이의 촉감을 느껴보고 싶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분도 있다. 등산을 사랑하는 지인은  발달 장애를 가진 분들과 함께 히말라야 등반도 다녀오고 미술 수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함께 활동한 분들이 전시회를 열었는데  작품을 표지로 한 수첩과 엽서도 제작했다고 해서  구입했다. 모지스 할머니 그림처럼 예쁘고 따뜻하다. 작가들의 순수한 열정이 느껴진다. 이 작고 예쁜 수첩 안에 시를  필사하고 있다. 맘에 드는 시를 골라 엽서에 써서  크리스마스 카드 대신 전해야겠다.


나보다 네 살 많은 대학 선배는 여행 덕후다. 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나라는 물론  사막과 아이슬란드까지 자신의 버킷리스트에 있는 곳은 모두 다녀왔단다. 얼마 전에 서울에서 만났는데  대학로에서도, 북촌에서도, 창덕궁에서도 선배는 가볍게 날아다녔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절로 신이 나는 것이다. 쫓아다니느라 나는 죽는 줄 알았다.


생각해 보니  지속적으로 좋아하는 게 하나 있다. 혼자 타는 자동차에서 줄기차게 듣는 음반. YB의  15주년 기념 콘서트 실황 앨범이다. 팬들의 함성이 고스란히 들어있어 매일 들어도 콘서트 현장에 있는 느낌이다. 무대는 창밖의 풍경, 나는 핸들이 있는 객석에 앉아 신나게 즐기면 된다. 눈치 볼 것도 없다. 정지 신호에 걸리면 둠칫둠칫 어깨도 흔들고 돌고래 소리도 질러본다. 이 앨범에서 새롭게 발견한 노래는 '동백 아가씨'다. 이미자 님의 동백 아가씨는 우리 엄마 옛날 애창곡인느려서  지루했다. YB의 강하고 빠른 록 버전은 완전 매력적이다. 윤도현 오빠(나보다 어리지만 멋있으니까)의 허스키한  보이스와 빠른 드럼 연주가 가슴을 마구 두드린다. 후렴 부분은 팬들과 떼창으로 부르는데 나도 빠질 수가 없다. 소리 질러!!!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코로나가 정점을 찍었던 지난 3월, 콘서트 가기 몇 시간 전까지  고민하다가 안 가면 두고두고 후회할까 봐 23주년 YB 콘서트에 다녀왔다. 물론 마스크도 벗지 못하고  떼창도 부를 수 없었지만 행복했다. 좋아하는 노래와 가수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들끼리도 에너지를 받고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도 좋다. 33주년 콘서트 열리기 바란다. 60대의  뮤지션들과 들이 신명 나게 즐기는 모습. 두근두근 벌렁벌렁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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