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은 생각보다 늦게 시작했다.
뉴스에서 4월부터 11월까지 엄청 더울 거라고 겁을 줬는데, 4월에도 코트를 꺼내 입었다. 생각보다 5월도, 6월도 기분 좋게 선선했다. 여름이 본격적인 더위를 뽐내던 7월부터 시작된 몇 주 동안의 무더위는 본때를 보여주듯 상상을 뛰어넘었다. 나는 계란 프라이를 만들 때 깨끗하게 익도록 약한 불에서 천천히 한쪽 면만 익히는데, 이번 여름 외출했을 때, 내가 프라이팬 위의 계란이 된 기분이었다. 과장을 좀 하자면 피부가 익는 느낌이 들었달까? 아무튼 이 시기에 다른 사람과 밖에서 만나게 되면 대화가 이것뿐이었다. ‘진짜 덥다! 어디 들어가자!‘
미친 듯이 더운 여름도 장점이 없지는 않았다. 바로 하늘! 하늘이 참 예뻤다. 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구름은 유난히 하얗게 빛났다. 마치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일본 애니메이션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런 하늘 아래에선 누구든 청춘이 된 것만 같고, 어떤 과감한 행동도 청춘이라는 이름하에 허락될 것 같았다. 그래서 여름엔 호들갑스럽게 하늘에 카메라를 가져다 대었다. 매일 같은 출근길, 점심 먹으러 가는 길, 퇴근길에 펼쳐진 하늘의 구름 모양 중에서 같은 건 없었다. 신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 같았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명확하게 나눠지는 깨끗한 하늘에 지는 노을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맑은 하늘에 노을의 노랑, 주황, 빨강, 보랏빛이 제대로 물들었다. ’와일드’라는 영화에서 ‘일출과 일몰은 매일 존재하니, 마음만 먹으면 누릴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스스로를 아름다움의 길에 들여놓을 수 있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정말로 신이 해가 질 때, 그 하루를 잘 버텨온 인간에게 ‘자, 이제 불을 끌 거야. 오늘 하루 버티느라 수고했어’하고 아름다운 노을을 선물하는 것 같다. 이 말을 떠올리면서 그래도 이번 여름 나는 꽤나 그 선물을 음미했다.
여름이 유난히 더워서인지 여름을 지나는 순간, 떨어지는 온도와 같이 마음 한켠도 서늘해진다. 남아있는 9, 10, 11, 12월이 무안할 정도로 여름이 지나면 그냥 한 해가 가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남은 시간 동안에도 예상치 못한 좋고 나쁜 일들이 가득한 재미난 인생이 펼쳐질 텐데, 여름이 지나면 한 해를 보냈다는 생각이 앞선다. 너무 높은 온도의 정점을 찍고 이제 내리막만 남았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기 때문일까. 9월부터는, 어떤 일이든 나에게 일어났을 때, 제대로 음미하고 보낼 수 있도록 마음 한켠에 ‘여유’라는 빈 공간을 남겨두고 싶다. 가을이 준비한 알록달록한 단풍과 선선한 계절의 높은 하늘을 마음에 담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