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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기 Oct 13. 2020

코로나 위기 속 IMF 연례회의

'돈 풀기' 언제까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연례회의가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개막됐다. IMF 웹사이트


“밀턴 프리드먼은 더 이상 주역이 아니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지난 4월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의 시장 개입을 극도로 혐오했던 경제학자 프리드먼을 거론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 정부가 국민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이른바 ‘헬리콥터 드롭’ 방식의 경기부양책을 쓴 것을 비롯해, 코로나19 위기를 맞은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돈 풀기에 들어간 것을 지지한 발언이었다. 


전례 없는 글로벌 전염병 위기를 맞아 각국 정부가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적극적인 개입에 나서면서 1970년대 이후 반세기만에 재정정책이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정부가 기업들의 임금을 보조하고 가계에 현금을 내주고 기업 대출 보증을 해준다. 2008~2010년 미국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때에도 금리를 낮추고 시장에 돈을 푸는 금융조치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위기의 심각성과 정부 대응의 양상·규모가 다르다. 


재정건전성에 집착해온 독일조차 금고를 열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7월 특별정상회의에서 7500억유로 규모의 경제회복기금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 기금에서는 과거 EU가 회원국을 도울 때 내걸었던 긴축이라는 전제조건을 없앴다. EU 재정 통합의 디딤돌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코로나19의 경제적 파괴력이 유럽중앙은행(ECB)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정부 부채의 한도를 정해놓지 않겠다고 했다. 


블룸버그통신


각국에서 기록적인 재정적자가 예고되지만 재정의 고삐를 죄는 게 일이었던 국제통화기금(IMF)조차 “정부들은 위기에 맞서 모든 수단을 쓰라”고 권고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수십년 간 경제정책의 중심에 있던 중앙은행장들이 뒷줄로 빠지는 레짐체인지(정권교체)가 진행되고 있다”고 평했다. 


관건은 ‘언제까지 돈을 풀 것이냐’다. 정부가 돈을 푸는 게 당연하다 해도 정치적으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위기 대응이라는 명분이 앞섰지만, 재정적자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 수 있다. 18일(현지시간)까지 워싱턴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그룹 연례 총회가 그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재정·금융정책을 쥐고 흔드는 두 ‘워싱턴 기구’의 이번 합동 화상회의에서는 확대재정을 계속할 것인지, 차츰 허리띠를 졸라맬 것인지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질 전망이다. 


유럽 정책결정자들은 IMF·세계은행 회의를 주시하고 있다.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추가 경기부양책을 놓고 줄다리기 협상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는 금리인상 여부를 이번주 내 결정한다. 한국은행도 14일 기준금리를 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연다. 연휴가 끝난 중국에서는 15일 물가상승률 등의 경제지표가 나온다. 영국은 곧 발표될 고용지표가 부정적일 경우 추가 부양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각국의 재정 고민이 시작되는 시점이지만 현재로선 당분간 경기부양을 계속한다는 쪽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  로이터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최근 런던정경대(LSE) 화상강연에서 “세계 경제가 죽음의 위기로부터 살아나고 있지만 그 과정은 길고, 고르지 않고, 불확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제상황은 유럽보다는 낫지만 코로나19 통제에 실패했다. 유로존은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디플레 우려가 현실이 됐다. 중국은 경기회복세가 두드러진 거의 유일한 나라이지만 1980년대 개혁·개방이 시작된 이래 올해 성장률이 최저를 기록할 것이 확실하다. 


그나마 신속히 돈을 풀지 않았다면 세계 경제는 더 큰 파국으로 치달았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에스워 프라사드는 “회복이 더디긴 하지만 세계는 적극적인 재정정책 덕에 훨씬 더 큰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하지만 재정적자를 공격하는 정치논리는 언제라도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10여년 전 금융위기 때 너무 일찍 긴축으로 선회해 성장을 막았고, 이번에도 그런 일이 되풀이될 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티그룹 수석경제학자 캐서린만은 블룸버그에 “코로나19 대응이 그런 틀을 뒤바꿀 수 있으려면 정부가 경제 침체에서 벗어난다는 단기적 목적뿐 아니라 불평등과 탄소배출량 감축 같은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재정을 운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긍정적인 신호들도 눈에 띈다. 유럽은 경제회복기금의 30%를 기후변화 대응에 쓰기로 했다. 미 민주당은 2조달러 규모의 ‘에너지부문 개편’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IMF의 올해 총회 주제도 ‘지속가능한 회복’이다. 게오르기에바 사무총장은 12일 “각국이 코로나19의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에 녹색 투자를 포함시키면 앞으로 15년의 회복기간 동안 세계 총생산을 0.7%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코스트리카 수도 산호세의 대통령궁 앞에서 시위대가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이 진행 중인 구제금융 협상이 긴축과 고통을 불러올 것이라며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EPA


여력이 있는 나라는 당분간 더 돈을 풀 수 있지만 빚더미에 앉은 빈국들은 부채 위기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주요20개국(G20) 국가들은 지난 4월 빈국들의 부채 상환을 올해 말까지는 유예해주기로 했다. IMF와 세계은행은 이번 회의에서 이 조치를 내년까지 연장하라고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이 타깃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비드 맬퍼스 세계은행 총재는 최근 성명에서 “중국이 주요 채권국으로 부상했음에도 빈국의 부채 상환일정을 조율해주는 국제적인 흐름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경기부양을 할 여유가 없는 빈국들을 위해, IMF가 금을 팔아 부채를 줄여줘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11일 가디언에 따르면 빈국의 빚 탕감 운동을 벌여온 주빌리캠페인(JDC)은 연례회의 앞둔 IMF에 “쌓아둔 금을 팔아 내년까지 최빈국들 빚을 없애달라”고 촉구했다. IMF가 보유한 금은 총 2814톤, 1750억달러 어치다. 올들어 금값이 올라 IMF의 금 자산 가치는 380억달러가 늘었다. JDC는 “그중 7%만 팔아도 120억달러 세계 73개 빈국이 내년 말까지 갚아야 할 돈을 대신 내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구호기구 옥스팜은 IMF가 코로나19 대응을 촉구하면서도 각국과 맺은 구제금융 협상에서는 여전히 긴축을 강요, 빈곤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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