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인의 자캠 여행기
자전거에 모든 것이 맞춰져 있는 사람을 속칭 자덕이라고 한다. 이 자덕에게 겨울은 자전거를 탈 수 없으니 심히 고통스러운 계절이다. 그런데 그 겨울농사를 잘 짓지 못하면 봄이 되어 더 괴롭다. 긴 겨울 지나고 봄에 안장에 앉으면 타이어가 바닥에 쩍쩍 달라붙은 듯 나가지를 않고 다리가 무겁고 숨이 가빠 앞사람 따라가기가 힘들어진다. 몸에 이상이 있나? 의심하고 급기야는 자전거를 더 상급으로 바꿔야 하나 싶기도 해서 식구 몰래 최신모델 검색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그지경까지 안가기 위해 아카데미에 등록하거나 실내 롤러위에 자전거를 올려놓고 돌리며 게으름을 이겨보려고들 한다.
나는 일찌감치 따뜻한 나라 대만행 비행기표를 끊어 놓았다. 연말 9일간의 휴가를 전지훈련으로 사용할 것이다.
이번 여행에는 동호회 후배인 윤희가 동행을 했다. 외국에 나가서 자전거를 타는게 처음인지라 잔뜩 기대하고 흥분하며 내가 알려주는 장비목록을 철저히 준비하는 열성을 보였다. 많은 자전거여행자들이 배낭 사용하는 것을 꺼리지만 수차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여행으로 계획할 경우에는 이동, 포장의 간편성과 신속함을 위해 배낭과 간단한 짐받이만으로 구성한다. 하루종일 배낭을 메고 자전거를 타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하지만 내 몸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좋은 배낭을 제대로 갖추면 무게분산이 잘 되기 때문에 그리 힘들지 않다.
대만 자전거여행의 코스는 두가지로 나뉜다. 고구마모양의 섬나라 대만을 한바퀴 돌것인지, 중앙산맥의 타이루거 협곡과 우링을 주 목표로 할것인지이다.
3,275미터인 우링, 일월담, 아리산등을 넘어보고 싶고 동쪽의 도시, 해안도 달려보고 싶다. 나름 야무지게 계획을 세워 타이베이 공항에 도착했다.
2025년 6월까지 대만관광청의 이벤트로 공항에 도착하는 여행객들에게 추첨을 해서 20만원 상당의 선불카드를 준다. 놀랍게도 내가 당첨이 됬다. 꽝이 나와도 실망하지 말자고 마음의 준비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시작부터 두둑한 용돈을 받고보니 대만의 하늘이 더 청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대만의 2륜차 전용도로이다. 스쿠터가 많은 나라여서 차선 하나가 통째로 2륜차에게 주어져 있다. 한국의 도로에서 갖은 눈치, 구박 받으며 위험하게 자전거를 타다가 자동차와 분리되어 편안히 라이딩을 하니 처음에는 영 거북하고 조심스러워 자꾸 길가쪽으로 붙어서 달렸다. 그러다 익숙해지니까 차선 하나와 갓길까지 널찍하게 사용하며 옆으로 탱크롤리가 지나가도 의젓하게 페달을 밟는다.
타이베이에 도착한 후 곧바로 남동쪽 도시인 타이동으로 기차를 타고 이동해 하룻밤 잔 후 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화롄쯤에서 중앙산맥의 타이루거로 진입할 계획이다. 대만의 겨울은 북동풍, 우리에게 맞바람이다. 그래도 3200미터 산악도로를 오를 때 뒷바람으로 가겠다는 전략으로 평지의 맞바람을 기꺼이 맞으며 달린다.
츠상이라는 지역은 쌀이 유명하다고 한다. 츠상 기차역 앞에서 그 쌀로 지은 밥에 반찬을 얹어 나무도시락에 담아 판다. 맛은 둘째로 하고 얇게 켠 나무도시락이 반가웠다. 어린시절 외가에 갈 때 기차에서 먹던, 소풍갈 때 김밥을 담았던 그 도시락을 대만에서 만났다. 들판에 볏짚구조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수백명의 사람들이 몰려있어 멈춰서 보니 지역 축제가 열리고 있다. 날도 저물기 시작하고 첫날이라 몸도 삐걱거리니 여기서 밴드 공연좀 보다가 텐트를 치기로 했다.
6시 넘으니까 축제도 파하고 벌판 한가운데 로컬제품 판매장도 문을 닫아 건물을 둘러싼 나무데크가 우리 캠핑장이 되어준다. 벽과 바람가림막과 은은한 조명이 아늑하다.
해가 일찍 지는 겨울이니까 새벽 6시 전에 일어나 준비하고 달려야 한다. 아침식사는 가다가 만나는 마을에서 한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등 중국의 생활양식 영향이 큰 나라들은 아침식사를 밖에서 하거나 사 가서 먹는 경우가 많던데 대만도 역시 그러해서 아침 먹기가 매우 편리하다. 2~3천원의 저렴한 가격에 간단한 요리 한접시와 차 한잔으로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다. 둘째날, 율리의 어느 편의점 앞에서 세명의 바이커를 만났다. 아무리 내가 계획을 잘 세워 왔어도 현지 바이커에게 점검을 받는게 좋겠다 싶어 내가 생각한 코스를 말하며 합리적인지, 어디에서 방향을 꺽는게 최상인지 물어보았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제 우링산에 눈이 왔다고 한다. 한겨울도 우리나라 가을날씨 정도인 대만에 눈이라니... 응달쪽에는 그 눈이 얼어있을거라고 한다. 한국의 겨울을 피해서 남쪽나라로 왔는데 눈산, 얼음길을 갈 이유가 없다. 게다가 우리 미니벨로는 오르막은 유리하지만 내리막은 취약한데 빙판길은 더군다나 위험하다. 즉시 길바닥회의가 열렸다. 내 목표가 사라졌으니 이제 굳이 맞바람을 견디며 북쪽으로 갈 이유도 없고, 옆에 산을 하나 넘어 동해안으로 가서 남쪽으로 달려 대만의 땅끝을 찍고 절반환도를 하겠다고 하니 매우 좋은 계획이라며 찬성한다. 거리와 날짜, 우리의 하루 진행 거리를 계산해서 지도에 중요 포인트 표시를 해 주었다. 아침 라이딩을 포기하고 우리를 도와준뒤 자전거를 다시 차에 싣고 돌아가는 그들에게서 국적을 넘은 바이커들의 진한 동지애를 선물로 받았다. 언젠가 그사람들이 한국에 왔을때도 이런 환대와 따뜻함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타이완 KOM 첼린지(자전거활동 공유 어플에서 오르막 기록으로 순위를 정하는 게임, KOM=King of Mountain)코스는 다음으로 미루고 동쪽 내륙에서 산을 넘어 해안으로 나간다. 강원도사람인 우리 둘에게 500미터도 안되는 산은 언덕에 불과하다. 가뿐히 넘어 해안길에 내려선 후부터는 뒷바람의 동력으로 자동 페달링이다.
해안을 따라 공원을 잘 꾸며 놓았지만 우리는 그저 먹고 달리고 먹고 달릴 뿐이다. 그야말로 주마간산(走馬看山)이다.
북동풍이 강하기 때문에 해안의 파도를 바람이 쓸어 올려 부수어서 자잘한 물 입자가 내륙으로 올라가며 안개 낀듯한 날씨를 만든다. 하루에 80키로 이상을 달릴 목표이기 때문에 적당한 습도와 온도, 뒷바람은 무거운 여행짐의 자전거를 바람처럼 달리게 만들어 준다. 산길까지 포함해서도 100키로를 넘겨 달린 날도 있다.
큰 마을 하나를 만나 물을 사고, 앞으로 한시간쯤 더 달리고 나서 잠잘곳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윤희가 많이 힘든 기색이다. 최근 체중이 5키로 넘게 늘었다고 하더니 그 댓가를 치르는 중이다. 이곳에서 숙소를 찾으면 어떻겠느냐고 지친 얼굴로 묻는다. 여관이 있을까 하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바로 내 머리 뒤에 트래블버그 호스텔이라는, 어제 그 바이커들이 딱 한곳 저렴하고 글로벌한 숙소로 소개해준 도미토리 간판이 보인다. 친절한 도로와 멋진 풍광과 뒷바람을 서비스 해 주는 타이완인데 타이밍과 장소까지 기가 막히게 맞춰서 잠자리까지 제공해 준다. 여행 와서 잠시 눌러앉은듯한 벨기에 아가씨가 한국 어느 도시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서울 외에 다른 도시도 알아요? 물었더니 청주에서 지낸적이 있다고 한다. 첫날 지하철 역에서 만난 친철한 소녀도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며 자기 발음이 어떻냐고 물었었다. 우리가 일상으로 보는 한국의 풍경과 음식과 문화, 우리가 외국에 나와 신기하고 즐거워 하듯 그들에게도 동경하는 코리아인가보다.
대만의 땅끝으로 가는 길은 해안만 따라 가면 된다. 가파른 절벽을 확 깍아서 6차선으로 만든 길이 하루 종일 질리도록 이어진다. 로드사이클 기종이라면 자신의 최고속도와 거리, 획득고도를 만들 수 있는 멋진 길이다. 그러나 이틀 연속 바다만 봤더니 파도며 바위며 물도 구름도 질리고 야자수 낭만길도 시큰둥 하다. 우링은 못갔지만 뭔가 좀 넘었다 싶은 산악도로 라이딩을 해 봐야겠다. 중간중간 사람들에게 물어봤던 길과 스마트폰의 지도를 확대해서 예상한 길을 종합해 멋진 산길을 발견했다. 중간에 관공서라고 표기되어 있으니 마을도 있을것이기에 오늘 야영은 그 마을에서 할 요량으로 들어섰다. 그래도 혹시 몰라 저녁과 아침 먹을꺼리를 넉넉히 사서 넣었다.
산악도로도 잘 되어 있고 왕래하는 차량도 심심치 않게 있고 마주 넘어오는 바이커도 두엇 만났다. 그런데 산이 크고 깊다. 정상에서 바로 내려가지를 않고 능선을 달리는 듯 계속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그러는동안 날은 어두워지고 차량 왕래도 거의 끊어진다. 관공서라고 표시되어 있던곳은 문이 잠긴 산림관리 사무소, 마을처럼 보이던 건물 역시 문닫은 수련원이다.
웅장하게 펼쳐진 산맥을 감상하라는 전망대 데크엔 방향이 어지러운 바람이 강해서 텐트도 칠 수 없고 안부쪽이라 해도 짐승들이 나올 것 같고 이 큰 산군속에서 연약한 우리 둘이 야영하기엔 좀 무섭다. 그저 끝까지 달리는 수밖에 없겠다.
최대한 맨눈으로 식별할 수 있을 때 까지 라이트를 켜지 않고 달린다. 라이트를 켠 순간부터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에 속도가 줄어들고 멈칫거려지고 팔에 힘이 실려 핸들 조향이 부자연스러워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산악도로의 포장상태가 워낙 훌륭해서 도로 경계선의 흰색만 따라가도 된다. 결국 헤드랜턴까지 켜고 달리는데 다행히도 내리막이 이어진다. 말 한마디 없이 안전간격을 유지하고 40여분 다운을 하고 나니 마을 가까이 내려왔음을 알리는 축대, 빈집, 문닫은 식당등을 지나 넓직한 마을 광장에 내려섰다. 공공건물인듯한 모양의 건물 간판을 보니 동사무소겸 주민체력단련실이다. 옆 공유자전거 주차장에 지붕과 벽과 넓직한 자리도 있어 텐트를 치고 그 산을 빠져나온 안도감에 코까지 골면서 잤다.
이제 얌전하게 좋은길로 가야겠다. 그래도 지도를 확대 해 보니 숲속 오솔길처럼 지름길이 있다. 새벽 일찍 챙겨 나서서 중간에 커피를 끓여 고구마로 아침식사를 했다. 날씨도 여행중 최고의 맑음이다. 이런 날이면 산맥도 달릴 수 있겠으니 10키로쯤 되는 산길이야 산보삼아 달린다.
지금까지의 해안도로가 바다를 멀찌감치 두고 고속도로처럼 달렸다면 오늘부터 해안도로는 바다 바로 옆을 모래 밟을 듯 달린다. 지나가던 군인들의 차가 멈춰서 코스 점검까지 해 주고(이길로 계속 가면 심한 오르막이 있다고) 길 옆 산에서는 원숭이들이 시끄럽다.
당연히 편의점 하나 없는 길을 가다가 어촌마을의 유일한 식당에서 대만 여행중 가장 맛있는 점심식사를 했다. 밥 위에 고기, 호박, 가지, 버섯과 이름 모를 채소를 볶아 계란프라이와 함께 얹어주는데 외국음식이라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들 정도로 입과 마음에 착 감긴다.
남쪽 끝 컨딩이라는 휴양도시는 또 다른 느낌이다. 상가, 야시장등의 생활구역을 벗어나면 국립공원이 있고 해변에서는 써핑을 하고 작은 요트를 즐긴다. 건물들도 바닷가 도시의 전형인 희고 푸른색이 많아서 따뜻한 남쪽 햇살과 함께 쉬고 싶은 느낌을 준다.
가장 남단의 캠핑장을 찾아 가려는데 로드사이클을 타는 한무리가 지나간다. 캠핑장을 물어보며 슬쩍 그 뒤로 붙어 함께 달렸다. 나나 윤희나 우리동네에서 로드사이클로 그리 밀리지 않는 실력이기에 그 팀의 초보인듯한 두명이 우리 뒤로 쳐졌다. 나라 불문 상황 불문 자덕의 자존심인 경쟁구도는 언제나 존재한다.
코리아라는 소개만으로도 화제 만발이다. 봄에 부산에 갈거라는 아가씨는 한국드라마가 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특히 태양의 후예. 남주 여주가 결혼했다가 이혼한 사실까지 알고 있다.
저기가 캠핑장이라고 가리키는데 조금 놀랬다. [노영구]라는 한자 간판만 서 있고 공터 한쪽으로 벽과 지붕만 있는 가건물이니 우리가 찾으면서 갔더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헤멜뻔 했는데 그 동호회 친구들 덕분에 수월해졌다.
우리가 상상했던 남쪽나라 낭만적 경치의 캠핑장은 아니지만 따뜻한물 나오는 샤워장 있고 주인이 제공하는 은박매트 여러겹을 깔고 벽을 의지해서 지붕 아래에 텐트를 치니까 아늑하고 편해서 한사람당 15,000원 지불할 가치는 있었다. 텐트에서 자는게 이번 여행이 처음인 윤희는 장비가 부실해 텐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힘들어 했었다. (떠나기 전에 집 옥상에서 예행연습좀 하라고 했건만) 첫날 캠핑에서 종이박스를 밑에 깔으라고 알려 주었더니 그 후로 박스에 대해 간절한 집착을 보인다. “언니, 나 박스 가지고 다니고 싶다.” 맨바닥에서 잤을 때 어지간히도 추웠나보다.
새벽에 땅끝 표시 구조물이 있는 지점 갔다가 서쪽으로 돌아 타이베이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대만은 도시와 인구, 산업 대부분이 서쪽에 몰려있다. 그래서 길도 넓고 차량 왕래도 많고 따라서 공기도 좋지 않다. 그러나 변함없이 고마운건 더 넓은 2륜차전용도로이다.
대만을 한바퀴 도는데 자전거로 9일 정도를 잡는다. 우리는 7일의 라이딩 시간을 갖고있기 때문에 공항을 향해 가다가 적당한 지점에서 기차로 점프를 해야 한다.
가오슝이라는 대도시에 붙은 치진이라는 작은 섬이 눈에 들어온다.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기 때문에 캠핑장이 있을 것이고 해산물 식당이 밀집해 있다는 정보가 보인다.
서쪽 해안과 산업도로를 얼기설기 이어 달리며 대만의 산업이 어렴풋이나마 보인다. 거대한 공장지대와 바다에 연한 양식장들의 규모로 우리나라 수퍼마켓의 메이드 인 타이완 제품과 식품의 고향을 목격한다. 아침 일찍 지나는 소도시 대로변 도시락 파는 가게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수많은 스쿠터의 이동. 그리고 대만사람들의 호흡처럼 함께하는 종교의식과 작은 개인제단들로 이나라 사람들이 사는 것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새해를 하루 앞둔 오늘, 바오슝이라는 고장을 지나는데 4키로 정도로 이어지는 행렬을 만났다. 3~40명 단위로 특색이 있어서 사자탈놀음, 용춤 분장, 말을 탄 무사의 행렬, 경통을 돌리는 승려와 꽃마차, 빗자루로 길을 쓰는 의식....내가 알고있는 종교와 민족신앙들을 다 볼 수 있을만큼 다양하고 흥미로운 퍼포먼스 행렬로 짐작컨데 마을들이 모여 축제를 하는 것 같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게 좀 안됐다.
큰길보다 작은길로 코스를 잡아 마을들을 지나며 보니 날긋날긋한 건물이 많다. 대만이 새거였을 때가 언제였을까 궁금해졌다. 간판도 오래된 것이 많은데 한자의 아름다움을 작품처럼 감상한다. 주인이 손수 만든 간판의, 수려하지 않지만 담백하게 쓴 한자도 예쁘고 좋다.
단순히 하룻밤 자고 저녁을 먹기 위해 페리를 타고 들어온 치진섬. 요금 1,600원에 5분이면 들어온다. 그림처럼 예쁘게 꾸며놓았지만 워낙 작은 해수욕장 정도라서 관광객들은 이 섬에 머물지 않고 저녁이면 모두 섬 밖으로 나간다. 해수욕장 운영사무실 처마 아래 텐트를 치니 잘 꾸며진 낙조의 바다공원이 우리집 거실로 변한다. 제대로 된 요리좀 먹어보자고 식당에 들어갔지만 입 짧고 양 적은 우리는 4접시로 만족, 옆 테이블 가족을 보니 여섯명이 15가지 정도의 요리를 먹는다.
무거운 짐자전거와 등짐으로도 지치지 않고 마음껏 겨울훈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대만의 친절한 도로와 적당한 거리에 나타나주는 편의점과 훌륭한 음식 덕분이다. 지도를 보면서 무언가를 물어볼 때 기꺼이 함께 고민해주는 대만 사람들이 참 고맙다. 오토바이로 우리를 데리고 캠핑장소를 함께 찾아준 해양경찰의 미소도 좋았다. 심지어 대만의 길거리 개들도 온순하다. 따라오지도 않고 짖지도 않는다. (너무 순하고 경계심 없이 길에 누워 있다가 부상 당한 개, 고양이를 많이 봤다.)
타이난에서 우리 라이딩은 끝났다. 기차와 전철로 곧바로 공항으로 간다. 대만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자전거를 반드시 포장해야 한다. 기차시간 10분 전에 자전거를 접고 포장하고 짐을 챙겨 뛰고, 내려서 펴고 이동하고 또 접고 포장하고...배낭과 자전거와 내가 한몸이 되어 지낸 9일 동안 배는 쏙 들어가고 팔다리는 단단해졌다.
귀국 후 윤희는 매일 실내 롤러 라이딩을 1시간 이상씩 하고 주말엔 그 위에서 100키로를 탄다. 쾌적한 여행을 위해 몸을 어떻게 만들어 놓아야 하는지 이 여행에서 절실히 느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