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에 가볍게 적어보는 2021년에 본 영화

21.12.07 기준. 온갖 ※스포 있음

by 땅콩빵

올해는 워낙 영화를 적게 보기도 했고 6월 전까지 따로 기록을 안했다. 기록을 안 해놔도 좋은 영화는 기억 속에 남을 줄 알았는데, 충격적으로 좋지 않은 이상 애매하게 흐릿해져 흩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다시 열심히 기록해두고 있다.


할 말 있는 영화

<이다>

엔딩 직전까지 별 생각 없이 봤다. 카메라 구도는 마음에 드는데 나한테는 조금 심드렁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이다가 울면서 걸어가는 롱테이크 장면이 너무 마음에 들어왔다. 그때서야 아! 하고 앞에 미적지근했던 영화가 몰려오는 느낌.


<워터멜론 우먼>

좋았다. 정말 재밌었다. 건강하고 신선한 영화의 표본.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조스 웨던이 만든 거 건너 뛰고 봄. 각 히어로의 단편 영화를 투박하게 붙여둔 것 같은데 나쁘지 않았다. 특히 플래시 캐릭터가 너무 너무 너무 좋았음. 플래시 이야기 시작 장면도 되게 좋았고. 그리고 슈퍼맨이란 어떤 존재인지 너무 잘 보여준 것 같다. 절대적인 신.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진 이런 캐릭터에 매력을 못 느낄 거라 생각했는데 (진부하다고 생각해서) 아니었다. 엄청나게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ㅠㅠ


<소공녀>

누가봐도 내 취향이었는데 왜인지 손이 안 가서 안 보고 버티던 영화. 그러다 프리즘 오브 책 나왔길래 한 번 보게 됨. 이건 미소에게 감정이입 하느냐 마지막 친구에게 감정이입 하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음. 나 내 스스로가 미소와 가깝다고 생각해서 서글픈 영화였다. 그런 한편, 이 영화 볼 당시 영화를 한창 못 보고 있던 때라 내 정체성이 흐려지는 기분이 들어서 내 자신에 대한 고찰을 한 번 더 하게 되구... 아무튼 나는 그 누구도 미소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미소처럼 될 순 있어도 완벽한 미소는 될 수 없어. 그래서 미소가 더 소중한 것 같다. 상징 그 자체라서. 내 마음 속에 미소를 품을 수 있느냐 없느냐 이런 문제.

남자친구는 떠나고 담배 가격과 위스키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 술집 밖 눈을 바라보는 미소의 표정이 좋았다.


<심판>

박찬욱 감독의 초기작. 인디그라운드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에서 봤다. 봉준호 감독 작품도 있었는데, 감독은 첫 작품으로 모든 이야기를 한다더니. 정말이었다. 두 감독 다 초기 작품에서 색이 정말 뚜렷하게 보였음.


<중경삼림>

금성무 이야기는 일본 단편 만화 같아서 영상에서 보는 매력을 덜 느꼈다. 페이 이야기는 오히려 만화로 그려졌으면 거부감이 있었을 것 같다. 배우가 깜찍한 범죄를 무해하게 느껴지게 잘 연기한 것 같다. 양조위도 그렇고 두 배우가 이 말도 안되는 우당탕탕 이야기를 현실로 믿겠끔 잘 녹여낸 것 같음. 그리고 중경삼림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양조위 등장씬인데, 극장에서 보는데 진짜 심장이 떨렸다. 가장 유명한 배경음악이 흐르면서 양조위가 나와서 점점 다가오는데 왜 사람들이 이 장면을 그렇게 좋아했는지 너무 알게 됐다. 노래를 크게 틀어놓는 페이도 너무 사랑스럽고. 마지막에 돌아온 페이를 보는 양조위 표정은 진짜 미친 거 아니냐고 속으로 백번 말함 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장면 너무 너무 너무 좋다. 자신 앞에 나타난 사람이 진짜가 맞는지 믿지 못하는 듯 하면서 그토록 기다려온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 기쁜 듯한 표정.. 미쳣어...


<참견은 노 사랑은 오예>

올레 티비 뒤적이면 80~90년대 영화가 많다. 그래서 올레 티비 있는 곳에 가면 한 편씩 보곤 한다. 이번에 본 영화는 이 영화. 제목이 너무 힙해서 아무 생각 없이 틀었다. 내용은 딱 중학생 교과서에 나올 법한 청소년 성장 드라마. 짜임새 있고 이야기가 탄탄해서 (물론 그 시대 빻은 건 어쩔 수 없음) 감독상을 받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하는 거 보면 초등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이어야 맞는데, 그랬으면 너무 진지한 톤이었을 것 같다. 초등학생이라 통통 튀고 발랄했던 것 같음. 여기 삽입된 노래가 엄청 중독성 있다. 내가 한참 영업했음.


좋았던 영화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예술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고찰하게 해준 영화. 뱅크시가 나오는 줄도 몰랐고 미술관에 대한 다큐멘터리겠거니 했다. 뱅크시가 나왔을 땐 뱅크시 다큐멘터리인 줄 알았음. 그런데 아니었음. 정말 골 때리는 사람의 이야기다. 마지막에 다리를 다쳐 깁스한 채로 잔디에 옆으로 누워 인터뷰하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웃김.


<청춘 스케치>

다른 것보다 마지막에 에단 호크를 선택한 엔딩이 너무 마음에 들었음. 영화 중반에 에단 호크가 뭐라고 했더라, 주인공에게 "난 너 자신이야." 라는 대사가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우린 서로가 필요하고 나는 너고 너는 나야. 이런 뉘앙스였던 것 같음. 한참 방황하고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 모르는 혼돈의 시기에 저런 말로 안 넘어갈 사람이 어딨겠어. 그리고 말 그대로 청춘이니까 저런 사람에게 끌리고 함께 낭비할 시간이 있는 거지. 이미 그 시기를 넘은 사람은 진작에 벤 스틸러한테 갔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벤 스틸러는 영화도 잘 찍는다. 대단한 사람.


<긴 밤>

단편 영화. 나는 정말 호달달하게 무서웠다. 거의 배우 빼고 감독님이 다 하셨던데 대단해. 서늘함으로 가득찬 단편이다.


<우리도 사랑일까>

여자 배우 이런 영화에 많이 나오는데 또 잘 어울려. 블루 발렌타인과 비슷한 결인 영화. 난 사랑보다 권태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느꼈다. 마지막에 혼자 놀이기구를 타는 주인공의 표정이 기억에 남음. 궁금한 건 왜 캐릭터의 직업을 인력거꾼으로 했을까.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보고싶었는데 왓챠가 데려와서 압도적 감사를 느꼈던 영화. 왓챠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이렇게 작품 가져오면 또 고맙다고요. 넷플릭스에서 내린 <호신술에 대한 모든 것>도 좀 부탁드립니다. 제발... 아무튼 밈으로 소비되는 페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이 영화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다른 것도 다른 건데 마지막에 지구 반대편 홍콩에서는 희망의 상징으로 쓰인다는 게, 인생은 아이러니라고 생각했음.


<캐리>

공포 영화. 원작으로 봤음. 피가 난무하는 하이틴 아주 매력적이더군요. 청소년기의 불안함, 불안정함을 공포로 표현한 게 정말 좋았다. 마지막 파티 장면에서 서스펜스가 장난 아니었음.


<화양연화>

영화관에서 몇 번이나 숨이 멎었던 영화임. 손에 땀을 쥐고 봤다. 재개봉 작품이긴 하지만 나에겐 올해의 영화다. 나에겐 오랜만에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 영화.


<앨리스의 하늘 아래>

중간에 조는 바람에 몇 십분 날려서 너무 슬픈 영화 ㅠㅠ 정말 사랑스러운 연출이었다. 웨스 앤더슨이 생각나는 미술이었다. 암흑 같은 시대 이야기를 하면서 파스텔톤 색감과 깜찍한 연출 덕분에 더 부각 되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해서 더 몰입해서 봤다. 마지막엔 너무 눈물나고 아름다워서 ㅠㅠ 영화 나온 후 감독 인스타 뒤적이면서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요ㅠㅠ 를 외쳤다. 다행히 일부분만 따온 것 같아서 과몰입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도 너무 눈물난다 이거예요 ㅠㅠ

대립할 때 사람들이 썼던 가면들이 감독의 연출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는 사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베네데타>

바로 그제 본 따끈따끈한 영화. 부국제 화제작이라 안 좋아하는 시대극인데도 보러 갔다. 중반까지는 심드렁하게 봤다. 가끔 나오는 장면에 이게 센텀에 울려퍼졌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ㅋㅋㅋㅋㅋ 그러다 마지막 유리조각을 보자마자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주인공은 정말 오진 여성 캐릭터였다. 유리조각이 이 영화의 키포인트이자 감독의 탁월한 연출이라고 생각함. 중반까지 이게 주인공의 의도인지 주님의 뜻인지 (물론 주인공은 계속 자신의 의도가 곧 주님이 시켜서 한 일이니 곧 주님의 의도다. 라고 하지만.) 알 수 없게 나오는데, 마지막 장면으로 모든 게 주인공의 의도였다는 게 밝혀지면서 짜릿해진다. 위에서 말한대로 주인공은 그게 주님의 뜻이라고 말하는데, 그건 그거대로 정말 재밌다. 오랜만에 신선한 캐릭터를 봐서 재밌었다.


아직 볼 영화들이 남았지만, 현재까진 대략 50편 되는 작품들 중에선 이 영화들이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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