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쿠쿨쿠쿠쿨, 빙팟!

괴짜들이 세상을 구한다.

by 땅콩빵


브루클린 나인-나인은 99서를 배경으로 한 미국 시트콤이다. 브루클린 나인-나인 (이하 브나나)는 경찰서를 배경으로 한 묵직한 범죄 이야기를 다루는 기존 미국 드라마와는 거리가 멀다.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사건도 20분가량의 한 에피소드 안에 해결되는 게 다반사고 범죄 트릭도 그리 어렵지 않다. 경찰서와 경찰이란 설정은 그냥 빌려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럼 우린 브나나에 어떤 걸 기대해야 할까. 바로 편안함이다. 브나나는 밥 먹을 때 보기 좋은 시트콤으로 뽑힌다. 나 또한 밥 먹을 때 적적해 브나나를 보게 됐다. 밥 먹을 때 보는 영상물의 기준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한 끼 먹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기에 너무 긴 시간이면 안 되고 보다 체하면 안 되니 무겁거나 징그럽거나 너무 슬퍼서도 안 된다. 정말 물 흘러가듯 볼 수 있는 영상물. 반찬을 집느라 잠깐 화면을 놓치고 잠깐 물을 마시러 간 사이를 못 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영상물. 그게 바로 밥 먹을 때 보기 좋은 영상물이고 이 중 최고는 브나나다.

이렇게 가벼운 이야기 흐름과 더불어 편안함을 주는 특징이 하나 더 있다. 브나나는 서로의 본모습을 인정한다는 거다. 시트콤 속 인물들은 각자 도드라지는 개성을 하나씩 갖고 있다. 이 개성은 시트콤이란 특징으로 인해 더 부각되어 나타난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는 거슬리는 ‘고칠 점’이 된다. 이 개성이자 고칠 점은 보는 사람에 따라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고치고 싶어 한다. 어쨌든 고칠 점이란 딱지가 붙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상물이 어떤 계기로 교훈을 얻어 자중하게 되거나 마지막에 결국 다시 돌아가게 되어 웃음 포인트를 만든다. 하지만 브나나는 그렇지 않다. 함부로 서로의 개성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스컬리와 히치콕에게도.) 오히려 그 개성이 빛을 발하는 에피소드를 만들어 눈 밖에 났던 캐릭터들조차 마음 가게 한다. 내가 평소 좋아하던 캐릭터와 다른, 다양한 인물들을 좋아하게 만든다. 또한 누군가에겐 무수히 ‘고칠 점’으로 범벅되어 있을 나에게 너 자신으로도 충분하다는 응원을 해준다. 내가 좋아하는 내 개성, 내가 고치고 싶지 않은 성격은 굳이 바꾸지 않아도 돼 라고 말해준다. 이건 꽤나 큰 위로가 된다. 내 고칠 점을 굳이 고쳐서 발전해 나간다는 그동안의 이야기와는 다르기에.


프렌즈와 오피스를 병행해서 본 직후 브나나를 봐서인지 둘을 섞은 느낌이 들었다. (근데 오피스 제작한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니 오피스 느낌 나는 건 얼추 맞는 듯) 오피스처럼 한정되고 동료라는 큰 배경에 프렌즈의 관계성과 캐릭터를 넣은 느낌이다. 심지어 극 중 제이크는 "저는 챈들러도 되고 모니카도 되고 피비 같은 친구도 돼요."라고 말한다. 프렌즈가 워낙 시트콤의 정석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브나나 캐릭터들은 프렌즈의 캐릭터에 괴짜스러움을 추가한 듯하다. 특히 피비에서 양심을 빼고 자신감을 대신 채운 캐릭터가 지나인 것 같고 승부욕을 줄인 모니카가 에이미 같다. 챈들러의 농담과 능글맞음은 제이크가 가져가고 챈들러의 ‘고칠 점’이었던 건 찰스에게 간 느낌. 너무 확대해석일지도 모르겠지만.


브나나는 다른 영상물에서 보기 힘든 특징을 갖고 있다. 과거 회상을 마음대로 삽입한다는 특징이다. 누가 봐도 웃길 게 뻔한 ‘전에 그랬잖아.’ 대사를 짧게 보여준다는 건, 그 장면을 못 봐서 아쉬운 시청자들과 이 대사로 매 에피를 다시 만들자니 애매한 제작진 모두에게 만족을 주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이 설정을 누가 생각해 낸 건진 몰라도 진짜 천재가 아닐까. 짧은 과거 회상이 나올 때마다 무전기 소리가 나는 것도 드라마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똑똑한 방식이다.


브나나를 좋아하는 특징 한 가지가 더 있다. (사실 무수히 많다.) 클리셰를 비트는 포인트들이다. 그중 로사 캐릭터에 대해 말하고 싶다. 로사는 다른 영상물에서 익숙히 봐왔던 밷애쓰 캐릭터다. 밷애쓰는 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설정인데, 못됐지만 쿨하고 멋진 인물을 말하는 것 같다. 이 밷애쓰 캐릭터는 보통 남자에게 주는 경우가 많아 여성 캐릭터는 보기 힘들다. 그래서 로사라는 캐릭터가 정말 소중하고 너무 좋다. 로사는 폭력적이고 감정과 속마음을 감춘다. 칼을 휘두르고 자신이 그어둔 선을 넘는 걸 참지 못한다. 이런 유쾌한 여성 캐릭터가 몇이나 될까. 이와 반대되는 선상엔 찰스가 있다. 찰스는 먹는 걸 좋아하고 요식업을 사랑하며 섬세하고 감성적이다. 이런 극과 극인 성격 탓인지 (※이 뒷문장은 스포일러가 있다.) 시즌1에서 찰스가 로사를 좋아해 따라다니는 모습이 나온다. 보통 이야기에선 이 둘을 억지로 엮어 쿨한 로사에게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찰스에게 듬직한 모습을 보여주며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뽑아낸다. 이 얼마나 진저리 나는 클리셰란 말인가. 하지만 브나나는 다르다. 보통 이런 관계인 남녀 캐릭터는 여자가 남자를 진저리 내기 마련인데. (친구로는 괜찮은데 데이트는 싫어 느낌. 그러면서 점차 남자에게 끌리는 클리셰가 나온다.) 로사는 찰스를 싫어하지 않는다. 데이트 신청하는 찰스의 권유를 내치지 않는다. 이 장면부터 흥미로웠는데, 가장 마음에 쏙 들었던 건 초반 몇 개 에피소드가 지나면 둘에게 연애 기류는커녕 좋은 친구로 묘사된다는 거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연애 기류가 0%라는 점이다. 브나나는 둘에게 담백한 친구 관계를 준다. 심지어 로사의 처녀 파티 때는 찰스도 함께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런 비틀기로 인해 매 화 어떤 이야기가 튀어나올지 몰라 기대된다. 이런 통통 튀는 이야기들 덕분에 개성 강한 인물들을 소재로 써먹은 적이 별로 없어 앞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한 것 같다. (※이 뒷문장은 스포일러가 있다.) 아무래도 제이크가 주축이기 때문에 다들 강한 관계성이 있어서 제이크랑 엮인 이야기만 해도 시즌1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지나랑은 동창회로 하나 풀렸는데 둘이 케미가 너무 좋아서 (심지어 실제 배우들도 동창이라고 하니) 백만 개 더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로사랑 같은 아카데미였다고 하니까 그 이야기도 너무 궁금하고, 제이크 좋아하는 데 다들 시간이 걸렸다고 했는데 로사는 2주 걸렸다고 하니 그것도 궁금하다. 에이미로 넘어가면, 형제 이야기가 몇 번 언급 됐는데 이건 제작진도 벼르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로사의 숨겨진 이야기는 나왔음 하는데 또 안 나오면 좋겠다.


브나나는 현재 시즌7까지 나왔고 시즌8 제작이 확정된 상태다. 한국 넷플릭스에는 시즌5까지 업데이트된 상태이나 바로 다음 달인 내년 1월에 드디어 시즌6이 업데이트된다고 한다. 시즌7도 어서어서 데려오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가 시트콤을 사랑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