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 보세요? 저는 시트콤 봐요.
최근 일이 많아지면서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 시청하며 뇌를 쓰는 일'이 부담스러워졌다. 이런 이유로 보고싶었던 무거운 영화는 당연히 못 봤고 가벼운 액션물조차도 손이 안 갔다. 그 짧은 1시간 30분~2시간을 집중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영상물을 사랑하기에 밥 먹을 때나 일에 지쳐 집에 왔을 때 기분전환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시트콤을 보기 시작했다.
내 시트콤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아주 어릴 적, 언니들 때문에 강제로 봤던 순풍 산부인과나 똑바로 살아라를 제외하고 내 스스로 시트콤을 찾아서 본 건 몇 개 되지 않는다. 내 학창시절에 이름 날렸던 거침없이 하이킥도 보지 않았다. 웃음 코드가 안 맞아 중도 하차한 몇가지의 시트콤을 빼면 프렌즈가 첫 시트콤이라 할 수 있다. 사실 프렌즈는 어릴 적 언니가 영어 공부 대신해 보던 시트콤이었기에 '공부'란 딱지가 붙어서 그닥 재밌어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왜 프렌즈를 선택하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냥 유명하니까.
프렌즈는 작년 9월쯤에 보기 시작했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했기에 긴 호흡이면 안됐다. 짧은 시간 안에 뇌를 쓰지 않는 동시에 그냥 흘러들으면서도 웃을 수 있는 게 필요했다. 그 때 눈에 띈 게 프렌즈였다. 그냥 물 흐르듯이 틀어둘 수 있었던 프렌즈는 작년 겨울, 내 마음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프렌즈를 다 본 건 몇 주 전이었다. 플롯이 반복되는 시트콤 성격상 (거기에 프렌즈는 시즌도 많으니) 오랜 시간 이어보면 질리는 탓에 공백기를 가졌다가 생각나면 다시보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1년 3개월이 지나서야 무려 10개의 전 시즌을 완주하게 되었다.
프렌즈의 마지막 텅 빈 모니카의 집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헛헛했다. 간만에 이야기가 끝나고 바로 현실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그들의 아지트였던 센트럴 파크에 가서 친구들은 무슨 이야기를 할 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챈들러는 이런 대사를 하고 모니카가 이런 반응을 하겠지. 그럼 조이가 이런 반응을 할거고 하는 모습들 말이다. 이렇게 프렌즈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시트콤의 매력을 알게 됐다.
시트콤은 찰리 채플린의 명언인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르가 아닐까 생각한다. 시트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말도 안되고 웃기고 황당하지만, 그 문제들을 현실로 끌어왔을 땐 대부분 무거운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시트콤을 보면 나에게도 어떠한 막막한 일이 생겼을 때 이게 시트콤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정말 웃긴 에피소드가 되겠구나, 라며 웃을 수 있다. 그냥 한 번 웃고 별 거 아냐 하고 넘어갈 수 있는 힘을 준다. 또한 시트콤 주인공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항상 엔딩에는 웃으며 마무리된다. 이런 이야기 구조는 생각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희망을 심어준다. 시트콤은 웃음이 있고 희망이 있고 사랑이 있다. 어떠한 슬픈 이야기, 울적한 이야기도 시트콤에서는 해결할 수 있고 웃을 수 있다. 그런 말도 안되는 낙천적인 성질이 퍽퍽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잠시나마 숨통을 트이게 해준다.
최근 보기 시작한 브루클린 나인-나인도 어느덧 시즌3까지 오게 됐다. 밥은 물론이고 틀어놓고 딴짓하기도 너무 좋고 집중해서 보면 더 재밌다. 더이상 나오지 않는 시리즈물을 보는 건 막힌 결말에 대한 안전함도 있지만 더이상 끝을 달려간다는 슬픔도 있다. 아껴보고 싶지만 너무 재밌어서 멈출 수 없는 그런 거. 아마 올해 연말 안에 호로록 다 볼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아무튼 이래서 나는 요즘 시트콤을 본다. 프렌즈를 떠나보내고 정착한게 브나나라 다음 시트콤은 무엇일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요새 시트콤 제작도 잘 하고 흑흑.. 어쨋든 지금은 브나나를 재밌게 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