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토 2018

극장에서 본 영화

by 땅콩빵

레토는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자원활동 중이라 아쉽게 보진 못했고 나중에 개봉 후에서야 아슬아슬하게 볼 수 있었다.

흔히 접해 볼 수 없던 러시아 영화였다. 러시아어는 듣기 좋다. 독일어랑 프랑스어랑 섞인 느낌. 독일어를 프랑스어처럼 부드럽게 말하는 느낌다. 그래서 낯선 언어인데도 OST 진입장벽이 낮았던 것 같다. OST 정말 너무 좋았다. 원곡 리메이크 버전들도 너무 좋았다. 그중 사이코 킬러 너어어어어무 좋다. 이 노래가 삽입된 시퀀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다. 갑갑하게 묶여있던 감정들이 펑하고 터진 장면이었다. 이 전에 락앤롤 클럽에서 가만히 앉아있던 걸 보던 답답한 내 마음도 뻥 뚫렸다. 사이코 킬러 외에 패신저스도 너무 아기자기하고 로맨틱해서 좋다. 롱 테이크를 좋아하는지라 더 좋았다. 그다음으로 좋았던 건 레토. 처음 영화를 접했을 때 레토가 밴드 이름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러시아어로 여름이란 뜻을 가진 단어였다. 레토를 들으면 처음에 바닷가에서 노는 장면들이 그려져서 좋다. 내가 좋아하는 서늘한 여름을 잘 표현해줬다. 시원한 바닷가, 가벼운 옷차림, 기분 좋은 날씨. 이 장면부터 홀리듯이 빠져들어갔다.

가장 좋았던 건 회의주의자라고 표현되어 있는 장치. 안경 쓴 남자가 현실과 망상을 이어주고 끊어주는 매개체로 등장하는데 처음엔 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이내 익숙해지고 이 사람이 등장하면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 사람이 다음에 언제 나올까 기다려지기도 한다. 사회에 갇힌 인물들의 속마음이나 욕구를 볼 수 있는 장면이라 흥미로웠고 이런 장치로 "없었던 일인 거임 아무튼 없었던 일인 거임"하고 빠져나가는 게 영리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후반부에 힘을 잃었다는 거. 조금 늘어지는 감이 있었다. 그리고 조금 불친절했다. 마지막에 인물들 옆에 연도가 뜨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했었다. 이름이라도 넣어줬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인물들 감정들도 조금 더 알려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잘 따라가다가 마지막에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사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밴드를 다룬 영화라는 점이다. 밴드, 청춘, 여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세 가지 키워드를 몽땅 합한 이 영화를 내가 싫어하려 해도 싫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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