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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톡톡부부 Jun 29. 2020

47. 톡깨비

퀘벡, 캐나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잘 알려진 캐나다 퀘벡은 꼭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 중 하나였다. 세계 여행 중에 유일하게 챙겨봤던 드라마이기도 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도깨비 드라마 속 대사는 다시 되새김질해봐도 내 마음을 찌릿하게 울릴 정도로 깊은 여운을 준다.

호주 워홀을 끝내고 미국을 거쳐 캐나다로 향했다. 단풍이 피는 시기가 지났음에도 캐나다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엄청 신이 났다. 티비 속에서 봤던 아름다운 그곳을 두발로 걸으며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토론토, 몬트리올을 거쳐 드디어 꿈에 그리던 캐나다 퀘벡에 도착했다. 도깨비의 기분이 안 좋았던 걸까? 버스에서 내리니 먹구름 낀 하늘에는 이슬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퀘벡 구시가지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어서 언덕과 계단을 오르고 올라야 했다. 18KG 무거운 가방을 메고 비 오는 언덕길을 오르는 과정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숙소 문을 열자마자 따뜻하게 감싸는 온기와 친절한 직원 덕에 피로가 사르르 풀렸다.


캐나다 퀘벡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시간은 단 하루다. 2박 3일의 일정이지만 퀘벡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지기 시작했고 마지막 날은 일찍 다른 도시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맥주 한잔을 하며 남편과 고민에 빠졌다. 일단 도깨비 드라마로 인해 이 곳까지 오게 되었으니 드라마 장면에 나왔던 포인트를 가보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했다. 남편은 좋은 아이디어라며 유튜브를 통해 드라마 촬영 포인트를 잽싸게 찾았다. 영상 속에 나오는 곳을 구글 지도에 하나 둘 표시해보니 거리가 있는 한 두 곳을 제외하고는 걸어서 움직일 수 있는 거리였다. 세계여행 루트를 짜듯 드라마 촬영 포인트의 동선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로써 내일 일정 계획이 세워졌다. 식사는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식당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설레는 마음을 부여잡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여전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방 안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뭐야 하면서 실망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구글 지도에 찍어둔 경로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비는 금세 그쳤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아브라함 평원. 공유(김신 역)가 세운 묘비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김고은과 난간에 걸터앉아 샌드위치를 먹는 장면을 찍은 포인트에 서서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포즈를 취했다. 다양한 포즈 중에 유독 드라마에서 나온 모습과 비슷하게 연출한 게 만족스러웠다. 그 뒤 우리는 정말 드라마 프레임 안에 들어온 것처럼 구도를 잡고 동일한 포즈를 취했다. 아브라함 평원에 묘비가 세워진 cg작업을 할 수 없으니 남편은 평원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초라한 모습으로 찍히기도 했지만 상상 속의 우리는 드라마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었다.


쌰토 프롱트낙 호텔, 쁘띠 샹플렝 거리 등 포인트를 바로 찾을 수 있는 곳도 있었지만 길을 막고 있거나 공사 중인 곳도 있었다. 하지만 실망하긴 일렀다. 꼭 그곳이 아니더라도 구경할 수 있는 곳은 너무나 많았기에 다른 곳을 둘러보면 되었다. 하지만 드라마의 촬영 화각을 따라잡기에는 쉽지 않았다. 광각으로 한 장면을 넓게 담아낼 때도 있고 망원으로 한 곳을 집중적으로 찍을 때도 있었다. 렌즈를 수시로 번갈아 사용하면서 삼각대로 중심을 맞춘 채 사진을 찍었다. 촬영감독, 배우, 스탭 역할을 둘이서 충실히 해냈다. 무슨 촬영을 하는지 현지인이 몰려드는 순간도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한국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을 했고, 우리는 촬영 포인트를 따라 사진을 찍는 중이다 하면서 친절히 설명해줬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도깨비 촬영지 따라잡기’ 투어는 끝이 났다. 수많은 계단과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신기하게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오늘 함께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씻고 사진을 정리해보았다. 꽤 괜찮은 결과물들이 만들어졌다. 드라마 속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며 다녀서 일까. 사진 속에서도 그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평소에 우리 사진만 피드에 연달아 올렸던 것과는 달리 드라마 속 장면을 비교해서 위아래로 사진을 붙여 업로드했다. 일명 ‘톡깨비’. 반응은 뜨거웠다. 시청률 20%에 달하는 도깨비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우리의 사진을 보며 웃기도 하고 동경하기도 했다.


우리가 여행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직접 현장에서 느끼고 체험한 것들을 항상 SNS에 공유한다. 관종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게 우리가 여행하는 방법이다. 나만 즐겨야지 하며 꽁꽁 숨기기보다는 많은 이들이 가본 곳을 직접 가보고 여행하다가 알게 된 새로운 여행지를 다녀보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이 자신의 여행을 계획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우리도 남들이 다가는 여행지를 마냥 부러워만 했다. 루트는 어떻게 짜며, 경비는 어떻게 관리하고, 말이 안 통하면 어떡하지?? 사소하고 작은 고민들로 방구석에서 걱정만 하다가 시간이 가버렸다. 막상 떠나보니 걱정했던 일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다 해결되고 어느새 계획대로 움직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겪었던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원하는 걸 하루라도 먼저 실행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와주고픈 마음이 크다. 여행을 하다 보니 이 좋은 걸 그동안 왜 못 누리고 살았는지, 내가 보는 세상이 왜 전부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여행을 부추기기보다는 고민만 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한 번뿐인 내 인생, 도전하는 인생을 살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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