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시 집에 왔다.
어제 새벽 5시 55분 기차를 타고 아침 9시가 너머 전주역에 도착했다. 동생이 영등포역에 살아서 가능한 일. 집에 그만큼 얼른 오고 싶었다.
엄마가 마중을 나와서 다행히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한 시름 놓았다. 전주역이 공사 중이라 후면주차장까지 십분 넘게 짐덩이를 끌고 이동해야 했지만. 내 빨간 모닝을 발견하고 나니 진짜 집에 왔구나 싶더라.
우리 가족의 단골집인 88 전주콩나물국밥집에서 첫 식사를 했다. 계란 반숙 안에 콩나물국밥의 칼칼한 국물과 아삭한 콩나물을 기본으로 김가루를 부셔 적셔먹는 것이 일품이다. 어젯밤 직전회사 동료들과 오랜만에 뭉쳐서 저녁을 먹었는데, 먹었던 술이 해장이 절로 되었달까. 3개월 동안 태국에서 살면서도 한국음식이 그립진 않았다. 콩나물국밥을 먹으니 그제야 한국에 돌아온 것이 실감이 났다.
식사를 마치고 면내 농협에 가서 씨앗 잘 자라나라고 상토를 샀다. 인근 방앗간에 들러 깻묵도 사고. 전라도의 정겨운 사투리가 내 귀에 들어온 순간, 시골에 돌아왔구나 깨달았다.
둘러둘러 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다. 짐을 싸는 것도, 짐을 이고 비행기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동생네 계단을 올랐다가 내렸다가 기차를 타고 차를 타고 집까지 돌아오는 게 너무 힘든 여정이었다. 여행은 전혀 힘들지 않은데, 한국에서 짐을 끄는 게 힘들었다. 처음으로 캐리어를 끌고, 위탁수화물 15kg를 부쳤던 탓일까. 속으로 이젠 정말 미니멀리스트가 될 거라고 단단히 다짐한 순간이 많았다.
집 앞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저씨들께 인사드리고 커피를 타 드렸다. 핑계 삼아서 동네 호두과자도 사 먹었다.
그리곤 엄마랑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중간에 동네 이웃분을 만났는데 내 어릴 적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 잠깐 시골에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어르신 집의 모습이 익숙했다. 아니나 다를까 애기들이랑 또래라서 자주 놀았단다.
근데 내가 맨날 친구들을 깨물었단다. 깨무는 내가 무서워서 우리 집에 안 놀러 오고 싶어 했다고. 깨문 사람은 기억에 없지만, 깨물린 사람에겐 기억에 남은 이야기라며 민망해서 웃었다.
심지어 동생도 같이 깨물었다는 걸 보면 우린 깨물면서 소통했는가 보다 싶었다. 말로는 안되니까 깨물고 봤는 일이 많았었나. 지금은 서로를 깨물지 않아서 다행이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집에 와서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는 조경공부를 시작하셨단다. 귀갓길에 삼겹살을 무겁게 사 오셨더라. 역시 고기뽄내미인 나를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맛있게 삼겹살을 구워 먹고 깨문 과거를 고백하며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오늘은 미처 끝내지 못한 짐정리를 조금 했다. 유튜브 보다가 보도시가 전라도 사투리인 걸 알게 됐다. 겨우겨우 힘들게란 뜻. 보도시를 많이 쓰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어제 이웃분께 할머니가 이야기를 재밌게 하셔서 기억에 많이 남는단 얘길 들었는데. 시골에 오면 할머니를 떠올릴 추억보따리가 많아서 좋다.
인근마을인 진안에 바람 쐬러 다녀왔다. 엄마가 최근에 괜찮게 먹었던 카페에서 피자를 먹으려고 했는데 손님이 몰려서 바로 후퇴했다. 아빠의 맛집인 근처 식당에 가서 벌떼처럼 젓가락질을 하며 맛있게 백반을 먹었다.
진안은 어딜 가도 풍경이 멋지다. 죽도를 구경 가자고 무작정 내비게이션에 죽도유원지를 찍었다. 죽도유원지는 없어진 지 오래고 길도 사납고 양봉하는 곳만 남아서 당황했다.
오늘은 날이 아닌갑다하고 귀가하다가, 천반산 산책길을 우연히 발견했다. 조금 올라가보니 드디어 우리가 원하던 경치를 만났다. 멋진 경치에 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마다 날파리가 렌즈로 날아와서 사진을 방해하더라. 경치에 반한 엄마는 다음에 꼭 셋이서 죽도길을 걸어보자고 소망을 피력하셨다.
집에 돌아와서 그동안의 피곤함이 쌓였는지 이틀 내리 꿀잠을 잤다. 짐정리를 마무리하고 6월에 나만의 과제를 수행해야지. 한없이 늘어지면 내가 나를 깨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