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엉클테디 Dec 18. 2020

해외에서 살아본다는 건 뭘까요

1월 셋째 주 일요일 날씨 맑음


벌써 여기 온 지 3주가 지났다. 시간이 참 빠르다. 보통의 여행이었으면 3주 정도 지났을 때 '오래도 있었구나' 하면서 슬슬 귀소본능이 생길만한데 이번엔 좀 다르다.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크다. 확실히 '살기'에 초점을 맞춰서인지 '여행'보다 마음이 더 편안하다. 한 달을 살려고 하니까 한 달 더 살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고 두 달을 살려고 하니까 세 달이 살고 싶은 게 사람의 욕심인가 보다. 


그동안 내가 했던 보통의 여행은 때가 되면 새로운 도시를 가기 위해 풀었던 짐을 다시 챙김과 동시에 낯섦과 막연함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늘 그 도시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긴장감은 배가 되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리면서 서서히 그 도시가 익숙해질 때쯤 다시 또 이동하기에 바빴던 나날들. 뚜벅이의 여행은 언제나 늘 비슷한 패턴이었다.


하지만 한 도시에 진득하게 살아보는'듯'한 이 여행은 긴장은 잠깐일 뿐 시간이 점차 지나면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구글 지도에 의지하지 않은 채 마치 현지인처럼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된다. 산책을 가는 것도 슈퍼를 가는 것도 트램을 타고 어디론가 가는 것도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다. 마치 가벼운 마음으로 장바구니 하나 들고 마실 나가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좋다. 매일 긴장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여행 내내 봇짐을 지고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 진득하게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건 '오늘 뭐해먹지' '오늘은 마트 가서 뭘 좀 살까 ' 소박하게 삼시세끼 뭐 먹을지 고민하는 게 재밌다. 끼니를 해결하면 본격적인 한량이 라이프를 시작하게 되는데 아점을 먹은 후 동네 한 바퀴, 짧은 책 한 권 들고 카페에서 독서, 다시 집에 와서 드로잉 연습, 맛있는 안주와 캔맥주 그리고 넷플릭스. 날씨가 좋은 날엔 빨래를 돌리거나 가끔 폴란드 친구들 만나거나 집밥이 귀찮을 땐 가끔 외식하러 나가던지. 한국에 있을 때처럼 최대한 일상적인 것들을 해보면서 살아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종종 브로츠와프 중앙역 코스타 커피를 갔는데 사람이 거의 없어서 여유로웠다.
가끔씩 바깥음식이 그리워질때 생활비를 아껴서 통크게 쓰기도 했다.
에피타이저부터 메인요리까지 다 먹으니 9만원이 넘었다.

하지만 한 달을 살아봤다고 해서 해외에서 살아 봤다고 말하기가 참 부끄럽기도 하다. 잠시 발만 담갔을 뿐 그 나라의 전부를 알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해외에서 정말 산다는 건 그 사회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기에. 


비록 나는 잠시 왔다가는 이방인일지라도 이렇게 간접적으로 연습해보는 게 언젠가 도움이 되진 않을까 조심스레 이야기하고 싶다. 어떤 경험이든 의미가 있는 거니까.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지만 남은 시간도 알차게 소중하게 감사하게 보내려고 한다.




지금 이 일상마저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분명히 그리워질 테니




1월 12일 드로잉










1월 12일  여행도 정답이 없는데 한 달 살기라고 정답이 있으랴

매거진의 이전글 네덜란드, 넌 감동이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