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선생님이었다. 고등학교 국어선생님. 그래서 그런지 집에 책이 많았다. 작가가 꿈이라고 하셨지만 가세가 기울어 임용시험을 보고 학교에서 근무하셨다고 했다.
아버지의 책장에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집이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기도 했고, 검소하셨던 성품 탓에 대부분의 책장은 다른 집에서 공수해 오셨다. 이웃집이 이사 가면서 내놓거나 오래돼서 내놓은 것들 중 쓸만하다는 생각이 드시면 집으로 가져오곤 하셨다.
그래서 책장마다 키도 다르고 결도 달랐다. 낡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아버지의 꿈과 함께 책장에 꽂혀 있던 이런저런 책들의 제목들, 책들이 꽂혀 있던 위치, 특유의 오래된 책 냄새 이런 것들이 아직도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런 아버지가 방학이면 은행에서 빳빳한 만 원짜리 100장을 은행에서 인출해 오셨다. 당시 적지 않은 금액이었을 텐데. 아버지는 두둑한 돈뭉치를 허리춤 전대 깊숙이 넣으셨다. 그리고, 우리 네 식구는 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고로 구매하신 새하얀 소나타를 타고 전국을 유랑했다.
이곳저곳을 다니다 박물관이나 유적지가 보이면 구경해 보고, 배가 고프면 눈에 보이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마땅한 식당이 없으면 적당한 공터에서 직접 밥을 지어먹기도 했다. 밤이 되면 근처 여관을 찾아 잠을 청했고, 여관이 없으면 민박집, 민박집이 없으면 텐트를 쳤다.
새하얀 요트가 푸른 바다에서 해류에 몸을 맡기고 유유히 표류하듯, 새하얗고 광이 나는 자동차와 함께 우리 네 식구는 전국을 그렇게 그렇게 떠다니다 아버지 전대에 돈이 다 떨어질 무렵이면 집으로 돌아왔다.
확실히 아버지는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사셨다. 진정한 행복에 대한 고민의 시간들, 그 고민의 끝이 무엇이었는지 이제 알 것만 같다. 오늘처럼 과거에 아파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밤이 찾아오면 아버지의 삶을 생각한다.
내일은 딸과 함께 벚꽃을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