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9년 차, 드디어 교단일기를 쓰다.

by 뜻지

10살들과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는 3년째, 3학년 담임교사다.


초등학교에서 소위 황금 학년으로 추앙받는 중학년(3, 4학년) 담임교사를 3년째 맡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힘든 업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왜 이국종 교수가 [골든아워]에서도 말하지 않았나. '나쁜 보직을 감수할 자세만 되어 있으면 굳이 타협할 필요가 없다.'라고. '학폭 업무를 감수할 자세만 되어 있으면 굳이 비선호 학년으로 타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뜻깊은 문장을 이 상황에 빗대는 것이 적절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지만 한 번쯤은 저 문장을 꼭 써먹고 싶었다.)


나 역시 처음부터 '힘든 업무-황금 학년'의 조합을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초임교사 시절, 학교에서 가장 막내였던 나의 선택지는 언제나 하나, ‘힘든 업무-힘든 학년’뿐이었으니까. 평일 저녁도 없고, 주말도 없던 나날들이 있었는데. 우리 반이 싫다면서 자기 책상을 끌고 다른 반 교실로 가 버린 제자도 있었고.


시간이 언제 이렇게 지나버렸을까. 지금의 나는 업무와 학년을 두고 밀당을 해서 원하는 바를 얻어내고, 평소에는 천사처럼 친절하지만 화낼 때는 포켓몬스터 파이리처럼 불을 내뿜는, 영악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9년 차 교사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첫 제자들은 출석번호부터, 얼굴, 이름, 심지어 부모님 얼굴까지 기억난다. 그 아이들과 있었던 재미나고 기막힌 일들까지 세세하게. 오히려 최근에 만난 작년, 재작년 제자들의 얼굴과 이름은 흐릿하다. 그 아이들과도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는데, 정확히 떠오르지가 않는다.


내가 만난 귀한 아이들.

우리가 함께 나눈 마음과 시간을 간직하기 위해 드디어 나는 글쓰기를 '시작'한다.


귀 기울이는 사람, 당신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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