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날의 의미를 찾아서
어린이 날을 맞이하여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다.
바로, 어린이 날 맞이 로또-보물찾기!
시간표 뒤
청소도구함 안
내 의자 밑바닥
칠판지우개 안
뒷 게시판 작품 뒤
안 쓰는 책상 서랍 안
인기 없는 보드게임 안
나는 노란색 로또 종이를 교실 곳곳에 숨기며 희열에 빠졌다. 퇴근 시각을 한참 넘긴 후에도 신박한 장소를 찾아 헤매며 보물 숨기기에 열중했다.
다음날 아이들에게 이벤트에 대해 설명을 했다.
"오늘은 어린이 날 기념으로 보물 찾기를 할 거야. 우리 교실 곳곳에 이렇게 생긴 로또 종이를 선생님이 미리 숨겨 놓았어. 모든 친구들이 보물을 다 찾으면 로또 종이에 적힌 번호를 랜덤으로 추첨할 거야. 번호별로 여러분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지!"
이 말을 했을 때 아이들의 기대에 찬 표정이란.
온 교실을 헤집고 다니며 노란 종이를 찾는 그 몸짓이란.
로또 종이를 발견하면 몸통이 다 울리도록 웃어대는 그 웃음이란.
어린이 날을 이틀 앞둔 2019년 5월 3일의 금요일, 교실 한 가득 생기가 가득 찼다.
교사인 친구에게서 이 보물찾기 이벤트가 실로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다는 간증을 여러 번 전해 들었으나, 나는 계속 미루고 있었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1. 굳이 이런 거 안 해도 나는 이미 충분히 참 교사다.
2. 꼬마들 입으로 들어가는 하리보와 초콜릿만으로도 등골이 휜다.
3. 이 시기에 학폭이 터져서 사안 처리하거나 다른 업무로 분명히 정신없이 바쁠 것이다.
4. 이런 건 밀당이 필요한 고학년들한테나 해 주는 거다. (나는 첫 해를 제외하고 중학년 담임을 줄곧 맡았다.)
이유라 쓰고 핑계라 읽을 수 있겠다. 구구절절 긴 변명을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도 있다.
1. 오만함
2. 쪼잔함
3. 비겁함
4. 영악함
초임 때는 가내수공업자처럼 일일이 과자 포장도 하고, 손 편지도 써가며 어린이 날을 기념했었다. 오히려 내가 애들보다 더 들떠서 어린이 날을 기념했던 때가 분명 있었는데. 언제부터였을까, 어린이 날을 축하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옅어진 것이. 연차가 쌓이는 것과 비례하여 나는 점점 어린이 날을 신경 쓰지 않았다. 바빴고, 귀찮았고, 급기야 무뎌졌다.
그런 내가 이벤트까지 하며 올해 어린이 날을 기념하게 된 계기는 아이들이 쓴 주제 글쓰기 숙제 검사를 하면서부터였다. '1년 중 내가 가장 기다리는 날'을 주제로 글쓰기 숙제를 내줬는데, 아이들 글쓰기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날이 바로 생일, 크리스마스, 그리고 어린이 날이었다.
'아, 초등학생 3대 기념일은 생일, 크리스마스, 어.린.이.날이구나.'
'아니, 당연하지. 너 이걸 진짜 몰랐어? 모른 척한 거 아니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이미 지나가버린 5월 초의 풍경들이 두둥실 떠올랐다.
어딘가 기대에 찬 아이의 눈빛, 5를 유독 강조하던 그 목소리, 혹시 내일 뭔가를 하지 않냐던 무수한 물음. 그때마다 나는 뭐라고 대답했던가. 들은 척도 안 했나, 부모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했나. 혹은 '올해는 어린이 날이 주말이라 애들이 조용하겠군.'하고 생각했었나. 굳이 소파 방정환 선생님을 끌어 오지 않더라도, 어린이 날이 어린이에게 얼마나 기념비적인 날인지를 어쩜 그렇게 모른 척 외면했을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어린이 날을 그저 아이들이 흥분하는 날,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날, 학부모가 알아서 챙기면 되는 날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마치 내게 넘어오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업무에 손사래를 치며 난색을 표하는 그런 태도로 말이다.
'6살 어린이' 혹은 '10살 어린이'를 기념하는 날은 아이의 인생에서 단 하루뿐이다. 내가 무력한 마음으로 지나 보낸 작년 제자의 '10살 어린이 날'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심지어 어린이 날은 생일, 크리스마스와는 다르게 그 기한도 정해져 있다. 그래서 6학년 아이들은 마지막 어린이 날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오늘 이벤트를 설명하며 랜덤 선물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아이들은 곧장 드론, 브롤스타즈, 슬라임 등을 연호하며 본인들의 꿈과 희망을 드러냈다. 그들의 이상은 드높았고 현실은 문구류와 소소한 간식이 전부였다. 하지만 한바탕 보물 찾기를 마친 후에 내가 작은 선물들을 건넸을 때, 아이들은 그야말로 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아이들은 내게 어마 무시한 선물을 바란 것이 아니라, 다만 이 날을 함께 기념해주기를 바랐던 거였다.
'어린이들을 축하하고 응원해. 그 어떤 거창한 이유를 댈 것도 없이 네가 어린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어린이라서 참 행복하다!'
무릇 어린이 날이라면 이런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아야 하지 않을까.
+덧붙여
우리가 동심을 간직하고 있다면, 우리 모두 어린이 날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은 충분하지 않을까. 정신연령 어린이들도 어린이 날을 다 함께 누려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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