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설명 다른 결과물.
보통의 초등학교는 학급 수는 많고 체육관은 달랑 하나이기 때문에 1주일에 단 하루, 딱 한 시간만 체육관을 사용할 수 있다. 우리 반이 체육관을 쓸 수 없는 요일인데 체육 수업이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 날이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오늘 미세먼지가 나쁘지 않기를, 부디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수업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특정 시기가 지나면 운동장 체육을 포효하는 외침이 잦아든다. 내가 운동장으로 나가자고 되려 아이들을 부추겨보아도 요지부동이다.
에어컨이 나오는 교실 vs 볕이 내리쬐는 운동장.
천하의 운동장이라도 에어컨 나오는 교실을 이길쏘냐.
'운동장 체육 보이콧.'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하는 또 하나의 순간이다.
나는 이 시기가 되면 여름맞이 고래 수채화 그리기 수업을 한다. 아이들이 수채 물감을 어느 정도 다루어 보기도 했고, 일단 이 작품은 보기에 시원하기 때문이다.
먼저, 고래를 그린 일러스트 작품들을 함께 감상한다. 작품을 감상할 때는 스케치보다는 채색에 방점을 둔다. 특히 '파랑'에 대해서 우리는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이 색은 과연 어떻게 만들었을까?'에 대한 이야기 나누며, 물의 양을 어떻게 조절하면 좋을지도 생각해 본다. 나의 설명은 보통 여기까지다. (물론 이후에 준비물 분배, 돌아다니는 꼬마 제자리 앉히기, 싸우는 꼬마 말리기, 나중에 뒷정리할 때 세면대는 정말 깨끗하게 써야 된다, 이 큰 학교에 청소하시는 분들이 두 분뿐이다, 참 아직도 변기 물을 제대로 안 내리는 꼬마가 있다고 들었다, 제발 개념을 가지자 등등 잔소리는 멈출 수 없지)
분명히 나는 같은 설명과 같은 잔소리를 했지만 아이들이 내놓는 결과물은 참으로 각양각색이다.
색감 충만한 10살
느낌 충만한 10살
상상의 고래를 그린 10살
다른 친구의 작품을 보고 감탄하는 10살
다른 친구의 작품을 보고 시샘하는 10살
흡사 피카소의 재림을 보여주는 추상화가 10살
예시로 보여줬던 일러스트 작품을 뛰어넘는 10살
자기 작품에 실망한 나머지 종이 찢고 절규하는 10살
암만 봐도 고등어 같은데 자기 작품이 제일 멋지다고 생각하는 자존감 대왕 10살
작품을 칠판에 한데 모은 다음, 미묘하게 다른 파란색, 하늘색, 물색을 살펴본다. 가끔씩 아이들이 마법사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아이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지금 이 순간이 딱 그렇다. 마치 아이들처럼,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제각기 모두 개성 있는 작품이다. 뭉클하면서도 시큰한 마음이 든다.
모두 특별한 꼬마들.
너희들 모두가 이렇게 다르고 특별하다는 것을 내가 애써 무시하지는 않았나, 아이들을 똑같은 모양으로 다듬으려고 하지는 않았나, 획일화가 나의 편의를 위한 것인가 진정 아이를 위한 것인가.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1학기의 후반부. 여름방학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기에는 나도 아이들도 타성에 젖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충분히 익숙해졌다고, 서로를 거의 다 파악했다고 착각한다. 내가 짐작한 대로 아이와 그가 한 행동을 섣불리 판단해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래서 운동장 체육 수업을 보이콧하는 순간이 오면, 나는 고래 수채화 수업을 한다.
서른 개의 파랑을 마주하며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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