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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고 TTGO May 27. 2019

태국 왕실 권위에 대한 고찰

방콕 여행시 필수 코스가 되어 버린 에메랄드 사원과 왕궁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게 되는 태국사람들의 왕과 왕실에 대한 존경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곳곳에 국왕의 사진이 걸려 있으며 TV에서 본 태국 총리나 실세 정치인들조차 국왕의 앞에서 서있지 조차 못하고 엎드려 알현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대체 그 권위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명명되어진 대항해시대가 지나고 19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의 성공은 전세계를 제국주의의 광풍의 절정으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과잉 생산된 면직물을 팔아야 할 시장이 필요했고, 평화적 무역보다는 강제적으로 다른 세계를 침략하기 시작했다. 그 타겟이 된 곳은 그 어느 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19세기 강대국에 의해 멋대로 그어진 국경선과 그리고 적은 수의 군대로 식민지배를 하다 보니, 각 민족 간의 이간질을 통하여 지배체제를 구축하였다. 그러다 보니 갈등이 필연적으로 생겨났는데 이때 생겨난 갈등, 서로 간의 불신과 배척은 오늘날의 국경분쟁과 민족갈등 그리고 종교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위에서 그 어느 곳도 예외가 아니라 언급했지만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식민 지배를 겪지 않은 나라가 있다. 그 나라는 바로 태국이다.



동남아의 여러 나라가 긴 식민 재배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반해 태국은 그 광풍을 피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손에 꼽을 수 있는 이유는 당시 라마 4,5세의 훌륭한 통치와 외교력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몽꿋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라마 4세는 근대화를 가속화하고 서양 선교사를 왕자들의 가정교사로 삼아 근대 문화의 습득을 촉진시켰다. 이 모습이 유명 할리우드 영화 '왕과 나'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태국도 독립을 지켜 내기 위해 많은 영토를 할양할 수밖에 없었다. 지정학적 가치를 고려해 영국과 프랑스가 우발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한 완충지역으로서 태국을 선택했다. 한국도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여러 방식의 독립운동 중 대표적인 것이 외교를 통한 독립론이었다. 하지만 실체가 없어진 나라가 더군다나 일본과의 밀약을 통해 각자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보장을 해주던 미국을 통한 외교적 독립론이 얼마나 허망한 부르짖음 이었나 반성하게 된다.



독립을 지켜낸 태국인의 자부심은 그대로 태국왕실에 투영되어 오늘날에도 가장 존경 받는 왕가 중에 하나가 되었다. 또한 1932년 왕가 입헌군주제 전환을 통해 실제 정치에서 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군부 쿠데타속에서도 국왕은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있으며 군부에게도 경외심을 바탕으로 굳건하게 정치적 영향력으로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 영향력이 선한 영향력으로 지속되기를 바란다.


태양이 필사적으로 내리쬐던 왕궁의 열기를 달래 줄 시원한 땡모반을 마시며 다음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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