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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고 TTGO Jun 19. 2019

도심 한 복판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아모이 호텔 싱가포르 (Amoy Hotel Singapore)

싱가포르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영어보다 더 자주 듣게 되는 언어가 있다. 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계 싱가포르인이 사용하는, 표준 중국어다. 하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싱가포르는 초고층 빌딩과 세련된 도심이 지배적인, 지극히 서구적인 풍경을 가진 대도시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빌딩이 들어서는 싱가포르의 도심 한 복판에, 1800년대 지어진 중국 이민자의 문화유산을 테마로 만든 소형 호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연 싱가포르의 현대적인 도심 한 복판에서, 자신들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중국문화를 어떻게 호텔로 재해석했을까? 궁금한 마음에 여행의 첫 숙소로 예약을 해두고, 싱가포르로 향했다.



호텔로 들어가는 입구와 통로에서 무심코 시선이 멈춘다. 모든 벽에는 아름다운 중국 풍의 일러스트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CBD 지역인 텔록 아이어의 오래된 건축물을 그대로 살려 오픈한 아모이 호텔은, 19세기 중국인 이민자의 삶을 벽화와 한자 레터링으로 아름답게 스토리텔링했다. 한자 문양이 곳곳에 박혀있는 디자인은 같은 한자 문화권인 내 눈에도 이렇게 새로운데, 서양인 투숙객에게는 더욱 이국적이고 동양적인 싱가포르로 다가올 것이다. 비슷한 비용이라면 고층 빌딩의 대형 호텔에서 묵는 하룻밤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 아닐까?


아모이 호텔에서 만나는 싱가포르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도시로 다가온다. 대부분의 관광객이 주로 가는 오차드로드 같은 쇼핑 거리, 마리나 베이나 센토사 등 인공적인 휴양지에서 접해온 모던하고 새것같은 싱가포르의 풍경에는, 아시아적인 색채가 거의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문화와 역사가 뒤섞인 싱가포르의 여러 모습 중에서도, 건축물이 가진 역사를 기반으로 중국문화의 정체성에 집중한 아모이 호텔의 철학이 참 멋있다.



내가 예약한 1인실, 코지 싱글 룸은 방 구조가 세로로 길쭉하게 트여 있는 모습이 상당히 독특하다. 오래된 건물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객실은 좁은 공간을 잘 활용해 답답한 느낌이 없는 것이 신기하다. 빈티지한 소재와 세련된 디자인이 만나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특히 벽쪽으로 길게 붙여놓은 아늑한 침대는, 동양적인 문양의 침대틀로 포인트를 주었다. 침대 머리맡에는 페레로 로쉐 초콜릿, 그리고 직원이 손수 정성들여 써놓인 카드가 살포시 놓여 있다. 내가 사랑하는 부티크 호텔만의 개성과 정성이 모두 갖춰진 호텔임을, 처음부터 알 수 있었다.



아모이 호텔이 중국문화에 오롯이 집중하여 멋진 호텔을 만든 데는, 호텔 건물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푹탁치 사원의 역할이 가장 크다. 1819년, 싱가포르로 이주해 온 하카 인과 광둥 인들이 5년에 걸쳐 세운 최초의 중국 사원이 바로 푹탁치 사원(Fuk Tak Chi Temple)이다. 이 사원은 현재 작은 박물관으로 꾸며져, 투숙객과 외부 관광객에게 개방되어 있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공사 중이어서 아쉽게도 구경하지 못했지만, 2019년 현재에는 리뉴얼을 마치고 다시 오픈했다.



이른 아침, 조식을 먹으러 1층으로 향하니, 돔 천장에서 은은하게 내리쬐는 자연광이 아침의 풍경을 더욱 환하게 만들어 준다. 식당은 호텔 로비와 이어져 있고, 개방적인 호텔의 입구는 식당과 바가 밀집해 있는 활기찬 파이스트 스퀘어(Far east square)로 이어진다. 호텔이 가진 동양적인 매력 덕분인지, 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손님들이 서양인인 것도 눈에 띈다. 간단한 뷔페, 그리고 주문 즉시 만들어 주는 계란 오믈렛을 곁들여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가벼운 걸음으로 호텔을 나선다. 이곳 텔록 아이어에서 10분만 걸으면, 차이나타운이다. 오늘만큼은 아모이 호텔이라는 타임머신을 탄 김에, 싱가포르에 남아있는 중국의 흔적을 따라가는 도보 여행을 떠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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