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1차 부산전쟁 : 비극의 서막

팔레스타인은 왜 중동의 화약고가 되었나 (2)

by 염띠


“이렇게 두고만 볼 겁니까?”


침묵을 깬 건 경북도지사였다. 그의 말은 느리지만 또렷했다. 그는 마치 큰 배팅이 걸린 프로 갬블러처럼 양손을 탁자 위에 올린 채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치면서 말하고 있었다. 빔 프로젝터가 토해내는 푸른 빛이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의 성명을 지하실 한 쪽 벽면에 낭자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여기저기 빨간 동그라미가 쳐진 부산 지도도 함께 있었다. 일본인 집단 거주지를 표시해 놓은 것이었다. 성우처럼 굵은 음색을 가진 경북도지사가 그 빨간 동그라미를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목소리는 쩌렁 쩌렁 울렸고, 그가 한 마디 한 마디를 이어 갈 때마다 삐죽삐죽한 수염 그림자도 바닥에서 함께 움직였다.


“부산 문제를 방치한다면, 다음은 우리 차례일 겁니다.”


목소리는 냉소적이었지만 그 내용은 절박한 것이었다. 이건 냉소가 아니라 호소였다. 경북은 부산, 경남과 가장 인접한 곳이기도 했다.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한번 뚫리면 두번째는 더 쉽게 뚫린다.' 그런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그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들어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전남지사를 쳐다봤다. 아무도 말을 안하니 부산에서 가까운 곳부터 순서대로 발언을 이어 가자는 것처럼. 까칠한 수염만큼이나 까칠한 시선을 쏘아 붙이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전남 지사는 순간, 그런 그가 흡사 포커의 마지막 패를 뒤집고 상대의 결과를 기다리는 도박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바통을 건네 받은 전남 지사가 고개를 숙이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위스키 잔을 감싸 쥐자, 비서가 얼른 빈 잔을 채우러 잽싸게 달라붙었다. 전남 지사는 신경질적으로 비서가 든 술병을 빼앗아 스스로 자기 잔으로 손목을 꺾었다. 위스키 병이 잔에 부딪히는 쨍그렁 소리가, 비밀 회의가 열리고 있는 부산정부청사 지하실의 높은 천장을 타고 실로폰 처럼 울려 퍼졌다.


일본의 부산 국가설립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한반도연방 8개도의 지사들이 부산청사 지하실에서 비밀회의를 소집했다



“절대로 낙동강을 넘어오게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굳게 잠긴 지하 철문이 쨍그렁 소리를 더 크게 반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거기서 그의 문제 발언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참으로 묘한 말이었다. 생각하기에 따라 마치 낙동강만 안 넘어 온다면 눈감아 주겠다는 듯 들렸다. '일본이 부산 땅에 국가를 세우든 말든 낙동강만 넘지마라.'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말이었다. '러시아를 뒷배 삼은 일본을 막을 수 없을 바에야 전남이라도 지켜야 되는 게 아닌가' 그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말로 튀어나온 것이다. 그건 경북지사의 말에 선을 긋는 것이었다. 선은 말에만 긋는 것이 아니라 땅에도 긋는 것이었다. 사실, 전남 지사는 머릿속에 이미 낙동강 한계선을 긋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낙동강 라인'은 제2의 '에치슨 라인'과 다름 없었다. 그 말에 강원도지사와 전북도지사가 일제히 저격수의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그들은 철저한 반일(反日) 노선을 견지해 온 사람들이었다. 경북지사는 자신의 호소에 냉소로 답한 전남지사를 바라보며, 까칠한 수염을 쓰다듬고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순간, 말 실수 임을 깨달은 전남 지사는 일단,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손과 잔에서 철철 넘치고 있는 위스키가 그가 실제로는 다른 도지사들의 까칠한 시선을 의식하고 있음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만약 그가 부연 설명을 하지 않는다면 아니 여기서 즉각 변명을 하지 않는다면, 나머지 도지사들이 일본이 아니라 전남과 전쟁을 치를 것 같은 묘한 긴장이 감돌았다. 그는 자신이 한 말을 쏟아진 위스키처럼 주워 담을 수 없다고 순간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상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넘친 위스키 잔을 들며, 이렇게 말했다.

"사실 우리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해졌고, 잔을 타고 흘러 넘친 위스키만 탁자 위로 한방울씩 똑똑 떨어졌다. 위스키 방울은 그 정적이 얼마나 길어질 지 시간을 재는 초시계처럼 보였다. 그 말은 평서문이었지만 의문문처럼 들렸다. 모두 알고는 있지만 차마 열지 못했던 두려움의 문을 노크한 것이다. 그는 물음표가 없이 묻고 있었다. 전쟁. 그것은 일본과의 전쟁이었다. 일본 뒤에는 러시아가 있다. 그것은 어찌보면 러시아 와의 전쟁이기도 했다. 그는 그 문을 열 수 있는지 물은 것이다. 싸울 자신이 있는지 물은 것이다. 이길 자신이 있는지 물은 것이다. 전남지사는 '그렇게 자존심 세우던 분들이 내 말에 불만이 있다면 이거라도 받아야 되지 않겠나' 이런 눈빛으로 좌중을 다소 거만하게 훑어봤다. 그는 한명 한명 눈빛으로 일침을 놓으면서 위스키 잔을 입술에 갖다 댔다. 그것은 자존감 테스트였고, 용기테스트였다. 듣기에 따라서는 조롱처럼 들리기도 했다.

힘은 모든 걸 가능하게 했고, 모든걸 불가능하게도 했다. 사실, 부산 주변의 각 도는 러시아가 부산을 점령했을 때 침묵했었다. 또, 일본인이 슬금슬금 이주를 할 때도 침묵했었다. 이렇게 암묵적 침묵의 연대를 보여왔던 터였다. '3차 대전을 겪으면서 모두가 현실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들 이렇게 자위하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UN부산위원회의 결의안까지 나온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세르게이 선언'에 이어, 국제사회의 민주적 정당성까지 확보한 일본이었다. 이제 일본은 부산과 경남 땅에 국가 수립을 앞두고 있었다. 발목까지 차올랐던 물이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것이었다. 사실 전쟁말고는 답이 없었다. 그는 그 점에 정확히 봉침을 찔러넣었던 것이다. 잔에서 떨어진 위스키 방울은 이미 바닥에 엎질러진 위스키와 합쳐지며 한 몸이 되고 있었다.


“일본인들에게 센텀지구 같은 노른자 땅을 넘겨줄 수 없습니다.”


충북지사는 참전 명분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었다. 부산 상공업의 핵심 지역을 짚은 것이다. 세계3차대전을 거치면서 한반도는 통일 이후, 각 자치도는 연방국가 체제로 분할돼 별도의 헌법과 법률, 그리고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각 도별 산업 기반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산업 기반이 취약한 충북 입장에서는 그 점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강원도지사와 전북지사는 대일 전쟁불사론자였다. 자연스럽게 참석 인원의 과반수가 전쟁에 동의했다. 전남지사는 전남지사대로 '차라리 잘 되었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일본이 낙동강을 넘으면. 그 때 또 이런 회의를 매번 소집할 것인가. 이 참에 잘 되었다. 이것은 예방적 자위권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일본은 일본대로 국가 수립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UN의 분할안 채택 이후, 일본인들의 이주는 더욱 빨라졌고, 일본의 독립추진위원회는 국가 수립을 준비했다. 2051년 봄, UN의 결의안이 나온지 6개월 만에 드디어 일본은 자갈치 시장에서 새로운 국가 수립을 선포했다. 수십년 간 떠돌이 신세로 전락한 민족의 수난을 회복하고 수천전 빼앗긴 영토를 회복해 새로운 일본 정신을 이어나가겠다고 밝힌 것이다.


일본이 부산 땅에서 독립국을 선포한 바로 다음날, 부산 주변 6도 연합군은 즉각 부산 침공을 감행했다. 초기에 연합군은 수만 명의 병력을 통해 압도적인 전력 차이로 일본군을 해운대 끝자락까지 밀어붙였다. 1차 부산전쟁의 서막이었다. 승리가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그런데, 러시아와 일부 동구 유럽 국가들의 무기 원조를 받기 시작한 일본이 조금씩 전세를 역전시키기 시작했다. 조금씩 북진을 거듭해 다시 자갈치 시장을 접수하더니, 이번엔 센텀시티를 거쳐 부산시청까지 진격했다. 전남 지사가 눈독들이던 낙동강 서안 지역도 넘보기 시작했다. 전라남도와 경상북도가 자국 영토까지 침탈당할 위기에 놓이자, 양국은 일본에 휴전 협정을 제안했고, 협정 과정에서도 휴전과 개전이 반복됐다. 일본의 전력 우세가 이어지다 결국 2052년 1월, 1차 부산 전쟁은 일본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


이 전쟁을 통해 일본은 부산과 경남 지역내 영토가 오히려 넓어졌다. 러시아가 위임 통치하던 지역의 약 80%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당초 UN의 분할안 보다 영토가 50% 늘어나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인 꼴이 됐다. 다만, 전라남도는 전후 협상과정에서 낙동간 서안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전쟁의 목적이 '서안 사수'였다면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충청북도는 센텀지구의 일부를 차지했다. 주위의 해안 평야도 일부 손에 넣어 국경선을 넓혔다.


하지만, 부산 사람들의 삶은 이미 철저하게 찢어진 상태였다. 1차 부산전쟁을 통해 쫓겨난 부산 사람은 100만 명에 이르렀고, 이들은 난민으로 전락해 주변 각 도로 흩어졌다. 부산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증오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부산 사람들은 살 곳을 찾아 경북으로, 전남으로, 충북으로, 강원으로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이상했다. 이 전쟁. 분명, 일본으로부터 부산 민중들을 지키겠다고 나선 싸움이었는데, 각 도에서는 정작 부산 난민을 받기는 꺼려했다. 이들은 한반도를 떠돌아 다녀야 했다.


더 얄미운 건 UN이었다. 부산 난민들을 돕겠다고 팔을 걷어부친 것이다. UN은 유엔부산난민구호사업기구(UNRWAB: the United Nations Relief and Works Agency in Busan)를 설립하고, 5억 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 이 돈은 러시아가 가장 많이 낸 것으로 알려졌다.



'벨푸어 선언'에 이은 국제연합의 팔레스타인 영토 분할안 발표는 유태인에게 매우 유리한 것이었다. 원래 10% 가량에 불과했던 유태인의 영토가 전체의 절반 이상, 55% 가량으로 늘어난 것이다. 당연히, 유태인들은 이 결정에 환호하고 즉시 결정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결정을 납득할 수 없었다.


유태인의 국가 수립 움직임에 반발한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팔레스타인 주변 국가인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이집트, 요르단 등이 결의안에 즉각 반발했고, 아랍권 내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동정 여론이 일었다.


이후 팔레스타인 내에서는 내전이 확산됐고, 방화와 테러 등 유태인과 아랍인 사이에 갈등이 반복되면서 점령국가였던 영국은 예정보다 2개월이나 앞당겨 철수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국제연합이 결의안을 발표한지 6개월 정도 지난 1948년 5월 14일, 유대 국가 수립을 위한 지도자 역할을 한 ‘다비드 벤구리온’은 텔아비브에서 전격적으로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고, 초대 이스라엘 수상에 올랐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선언,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이스라엘 수상이 발표하고 있다.


지속되던 내전은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가들 사이의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이스라엘 독립선언 다음날인 1948년 5월 15일,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가 연합군을 결성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침공했다. '팔레스타인 전쟁', 이른바 1차 중동 전쟁이었다. 주변 아랍국가 연맹은 유태인 정착지와 이스라엘군 주둔 지역에 대해 공격을 감행했다.


전쟁 초반에는 2만 명 가까운 병력을 투입한 아랍 국가들이 전세를 주도했다. 그런데, 체코로부터 무기를 공급받기 시작한 이스라엘이 전세를 뒤집기 시작했고, 급기야 1949년 1월 7일 1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다.

제1차 중동전쟁 전개과정 : 주변 아랍국이 동시에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이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은 이집트가 점령하던 가자 지구(Gaza strip) 일부와 예루살렘 북서부 지역 등 원래 분할안 보다 50%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은 100만 명에 이르렀다.


피난길에 나서는 팔레스타인 난민들, 바퀴 달린 수레에 가재도구를 싣고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1차 중동전쟁으로 100만 명 가까운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했지만 이들을 받아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한편, 참전한 요르단은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West bank)을 차지했고, 이집트는 가자 지구를 정복하고 주위의 해안 평야를 차지했다.


하지만, 아랍 제국들은 1차 중동 전쟁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난민을 받기를 꺼려했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돕기 위해 UN은 1949년 12월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사업기구(UNRWA: the United Nations Relief and Works Agency)를 설립하고 5천만 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UNRWA (1950년대)


-tti-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부산땅이 쪼개진다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