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촬영실은 꽤 밝았다. 곳곳에 설치된 형광등이 각종 검사장비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밤 시간이라 더 그렇게 느껴진 건가. 내 느낌이 정확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꽤 밝은 느낌이 들었다. 수많은 암 환자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이곳을 들락거렸을 텐데 이토록 밝은 검사실이라니. 어딘가 아이러니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저 수많은 형광등. 어쩌면 환자들 얼굴에 드리웠을 그림자를 걷어내려는 목적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치밀었다. 그림자는 사실 내 얼굴에도 드리워져 있었다. 막상 조영제의 부작용을 감내하겠다는 서명은 했지만 나는 사실 두려웠다. CT촬영을 하다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다니. 지금이라도 나갈까. 말까. 괜찮을까. 안 괜찮을까. 나의 이런 고민을 알기라도 한다는 듯 간호사는 내 눈을 마주치면서 다시 한번 조영제 부작용에 대해 설명했다. '눈 마주쳤으니 딴 소리하기 없기다.' '지금 네 손으로 사인하고 눈까지 마주친 거야.' 그 설명은 마치 지금이라도 나갈 테면 나가라는 태세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그 순간에도 몸이 아팠다. 그 말을 듣는 와중에도 아랫배가 뻐근했던 것이다. '나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래 죽나 저래 죽나 하는 생각 들었다. 만약에 큰 병인데 조영제 무서워 도망가다 병을 키우기라도 하면? 나는 간호사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약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없이 수액 라인이 잡혀있는 팔을 내밀었다.
조영제를 놨는지 안 놨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팔뚝을 타고 조영제가 흐르자, 뜨거운 기운이 천천히 뇌간(Brainstem)까지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다. 어깨 주변이 옥돌 찜질을 하는 것처럼 뜨끈해졌다가 팔에서 팔뚝, 어깨를 거쳐 목을 타고 뇌까지 훈훈해졌다. 조영제가 하나둘 퍼져나가는 느낌은 어찌보면 공복에 고량주를 먹는 느낌과 비슷했다. 대학 시절, 잔디밭에 드러누워 공복에 고량주를 먹으면 싸하게 속이 타들어가는 기분이 들면서 식도와 위의 모양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지 않았던가. 싸구려 고량주로 타들어 가는 뱃속은 기름기 흥건한 탕수육을 한점 집어 먹으면 잠잠해지기라도 하지만, 이 놈의 조영제는 그런 특효약도 없었다. 그저 무사하길 기도하는 것 외에는. CT 기계는 나를 빨아들일 준비를 마치고 일종의 예열 작업을 하는 듯했다. 낡은 도트 프린터처럼 우 -웅 하는 소리를 내며 입을 벌리고 티라노사우루스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흡사 재래식 핵무기 같기도 했다. 이제 저 괴물은 내 하복부에 수백 장의 방사선 공격을 퍼부을 것이다. 재래식 무기에 대한 공포를 조립하고 있던 무렵, 간호사가 적막을 깨주었다. 간호사는 조영제가 다 들어간 뒤 5분 동안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보통 호흡곤란이나 쇼크 같은 조영제 부작용은 1시간 안에 온다는데, 급성의 경우 5분 안에 오는 경우가 많아서 우선 이 5분을 잘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마디로 5분 동안 내가 조영제 맞고 죽나 안 죽나 살펴보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나는 사실 아까부터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잔뜩 돋쳐 있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5분이 5시간 같았다. 만약 내가 5분 뒤에 죽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장암을 피하려다 조영제를 맞고 5분 만에 요절한 스토리는 아마 언론사 주말 야근자의 사건 기사에서 소비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타사에 소개될 바에야, 기왕이면 MBC에서 우리 기자가 단독을 하는 게 낫겠다는 비장한 생각도 했다. 그리고는 천장에 붙어 있는 아까 그 환한 형광등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는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처럼 '저 형광등이 꺼지면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괜한 설정을 시도했다. '형광등아 제발 꺼지지 말고 잘 버텨줘' 나에겐 그 형광등이 지푸라기였다. 나는 미더운 지푸라기를 찾고 있었다. 사실 그 형광등은 꽤 튼튼해 보였던 것이다.
형광등을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에도 등 뒤가 뻐근했다. 후회는 없었다. 신장암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사느니 조영제 부작용에 배팅하는 게 훨씬 나았던 것이다. 나는 형광등에게 도움을 청해 나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그 순간, CT 기계 원통 안으로 몸이 조용히 빨려 들어갔다. 다행히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형광등은 꺼지지 않았다.
장면 10 : 장원 급제
복부 CT는 마지막 검사였다. 이제 결과만 기다리면 된다. 검사가 모두 끝나니 비로소 아내가 생각났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2시간 여 남짓.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갑자기 몸이 좀 안 좋아서 응급실에 왔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약간은 거짓을 보태긴 한 것이었다. 나는 몸이 조금 안 좋은 게 아니라 많이 안 좋았으니까. 평일이었다면 저녁 약속이 있다고 착한 거짓말로 둘러댔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시간은 금요일 밤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별 수 없이 오늘 밤을 응급실에서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변 얘기, 아니 점액질 이야기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 만약에 검사 결과, 중병이 나오면 점액질 따위는 금세 묻힐 것이기에. 하지만, 중병이 나와도 문제였다. 아내는 만삭이었다. '어떻게 말하지' 내가 잘못되면 뱃속의 아이는 어떻게 하지? 전화를 끊고도 1시간 넘게 잡생각은 끊이지 않았다.
검사 결과를 손에 쟁취한 나의 '위생병'이 커튼을 헤치고 들어온 건 바로 그때였다. 예상보다 결과가 빨리 나온 것 같았다. 그는 플라스틱으로 된 파일 받침에 종이 2장을 끼운 채 들어와서는 앞 뒤로 종이를 넘겼다 말았다 넘겼다 말았다 하며, 'Now loading...........'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곧 결과가 나올 참이었다. 따끈 따끈한 발표지를 뽑아 그 자리에서 멘트를 가다듬는 오디션 프로그램 사회자처럼.
갑자기 내 심장이 오케스트라의 팀파니처럼 뛰기 시작했다. 심장소리를 닮아 팀파니를 사랑한다던 한 타악기 연주자의 인터뷰 기사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이건 보통일이 아니었다. 이제 지난 한 달여 험난했던 투병의 원인이 밝혀지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것은 행정고시 2차 합격자 발표자 명단을 클릭하는 것 같은 강도의 긴장감이었다.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비슷한 강도의 심박수를 전해준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됐다. 'MBC 연기대상, 영예의 대상은...두구 두구' 하고 뜸을 들이는 사회자처럼 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내 눈을 슬며시 쳐다봤다. 그리고 안경 팔을 만지작거렸다. 자, 이제 입을 떼겠다는 신호였다. 전현무처럼 결과를 알려주겠다는 신호였다. 이번 작전은 엑스레이, 피검사, 소변검사, 동맥혈 검사, 폐 CT, 복부 CT까지 동원 가능한 화력을 집중 투입한 대규모 수색작전이었다. 정체를 모르는 적을 반드시 생포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팀파니의 템포가 급격히 빨라지더니 일순간 잠시 멈췄다. 의사의 메인 멜로디 독주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로 그때!
"정상입니다."
띄어쓰기를 한 것만큼 정적이 흘렀다. 정상. 낙제가 없다고 했다. 검사한 항목 모조리 정상이었다. 이게 단순히 '결과가 나쁘지 않다'가 아니라. 아예 결과가 좋았다. 좋은 항목이 더 많았다. 그러니까 행정고시로 치면 과락이 없는 걸 넘어 급제라는 소리였다. 당연히 좋은 뉴스냐 나쁜 뉴스냐 하면 이건 좋은 뉴스였다. 그런데, 말이 안 됐다. 내가 아픈 곳이 이렇게나 많은데 정상이라고? 일단, 폐랑 신장은 자각증상이 너무나도 명확했다. 찌르는 듯한 흉통과 뻐근한 등의 통증, 그리고 눈은? 셔츠가 찢어질 정도로 많이 부딪혔는데. 팔뚝에 새겨진 상처가 증거이다. 그리고 내가 증거이다. 난 아프다. 이렇게 아픈데도? 이건 분명히 뇌에 이상이 있는 게 분명했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니. 간혹 운에 좌우되기도 하는 고시 합격이었다면 불합격을 의심하지 않았을 텐데, 조금 전 정상 판정에 대해서는 비정상을 강하게 의심하고 있었다.
장면 11 : 제갈공명과 귀신
팀파니의 연주가 다시 시작됐다. 매섭게 몰아치는 휘모리 장단이었다. 긴장과 두려움의 선율이 분노와 부정의 클라이맥스로 치달으며, 성난 파도처럼 변주했다. 몸은 정상이라는 데 마음은 비정상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가슴속의 팀파니 연주에 맞춰, 예리한 칼로 폐부를 찌르듯 의사를 매섭게 노려봤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통증이란 것은 너무나도 명확한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 말은 어떤 망할 외국 철학자가 한 얘긴데, '나는 아프다. 고로 비정상이다' 이게 더 실존적인 명제라고 생각했다. CT를 촬영하던 순간처럼. 심지어, 저 의사의 입에서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고 있는 그 순간에도 아팠던 것이다. 그런데 정상이라고? 도대체 이과생 출신을 뭘로 보는 거야? 내가 정상이라고 하면 그냥 수긍할 줄 알았던 건가.
'너무너무 아픈데 ( )때문에 정상 판정을 받았다.'
나는 이 명제의 괄호 안을 어떻게든 채워야만 했다. 망해가는 컨설팅 회사의 컨설턴트처럼 무언가 짜 맞춰야 했던 것이다. 그때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 맞다 금요일 야간 당직은 레지던트지.'
의사 친구로부터 언젠가 주워들은 기억이 있었다. 교수들은 밤에 없다. 그래, 당신은 전문의가 아니잖아. 당신은 잔바리야. 잔바리는 돌팔이야. 돌팔이는 오진을 밥 먹듯이 한다. 이 괴랄한 삼단논법은 자기 확신을 키워주고 있었다. 사실 의사의 오진 외에는 이 실존적 모순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기에. 망한 컨설턴트는 확신에 차기 시작했고, 확신의 회오리는 언어 중추에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그냥 말해도 되겠다는 생각까지 미쳤다.
" 교수님은요? "
한 뼘 건너뛴 질문을 했다. 당신의 검사 결과를 알려준 의사에게 난데없이 교수님의 위치를 물은 것이다. 사실 이건 무시 발언이었다. 나는 당신 같은 초년병 의사 말고 보다 숙련된 의사를 데려오라는 말을 최대한 완곡하게 하고 있었다. 이 정도 말하면 내 뜻을 알아 들었겠지? 나는 속으로 통쾌한 기분마저 느끼고 있었다. "하핫, 어떠냐? 이 고슴도치의 가시 맛이!"
그런데 이 말에 의사가 웃었다. 어라? 웃어? 근데 이 웃음. 한쪽 입꼬리가 비틀린 비웃음이 아니었다. 환한 웃음이었다. 30년 내공의 만렙을 찍은 듯한. 무언가 서비스 노동자의 경지에 이른 듯한 묘한 웃음이었다. 너의 어떤 말에도 나는 화를 내지 않아. 이런 말을 한 두 번 들어본 게 아니다. 이런 표정을 지어 보인 것이다. 나를 다 이해한다는 듯한 거만함까지 느껴졌다. 내가 말로 생채기를 냈는데 웃어? 아무리 서비스 내공의 고수라 한들 오진을 인정하다면 웃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웃음은 곧 오진 불복이었다. 나는 불같이 화가 치밀었다. 팀파니 연주는 포르티시모(ff)로 치닫고 있었다.
"레지던트 말고 교수님 진단을 받고 싶습니다."
좀 더 직접적인 모멸 공격을 보냈다. 레지던트 나부랭이 말고, 특진을 보는 교수에게 진단을 받게 해달라고 세치 혓바닥으로 뺨을 갈겼다. 홧김에 말해놓고도 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진을 의심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숙련된 서비스 노동자가 고개를 숙이더니 오히려 나에게 사과를 했다. 고개를 푹 수구리며 이렇게 말한 것이다.
"미덥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것은 일본 식당 어딘가에서 받아봤음직한 극진한 응대였다. 이 자의 혼네와 다테마에가 무엇인가. 혼란스러웠다. 기분이 나빠야 정상인데 이건 뭐지? 그는 고개를 숙여 나에게 예를 표하더니, 내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교수님 진단받아보고 싶으시죠. 그래서 제가 월요일 외래를 가장 빠른 시간으로 잡아드렸습니다. 일단, 오늘 검사를 다하셨으니까 월요일에 결과랑 같이 얘기 들어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수속 밟아드릴게요."
그는 제갈공명처럼 웃고 있었다. 나는 적의를 보였는데, 이 자는 예의로 받으니 머쓱해졌다. 두 번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나도 맹획이 제갈량에게 항복한 것처럼 결국 두 손을 들었다. 두 번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도 이렇게 민망한데, 이 짓을 일곱 번이나 한 맹획은 오죽했을까. 사실 나는 엄밀히 말하면 맹획과는 달랐다. 따지고 보면 항복은 아니었다. 민망함과 별개로 나는 나대로 얻을 걸 얻은 것이다. 교수의 외래 진료를 따냈고, 그것도 월요일 가장 빠른 시간에 예약을 잡았다. 나는 이 선에서 이 자와 평화협정을 맺기로 했다. 교전은 중단됐다.
잠시 후 의사가 사라지고 나서야, 외래 예약된 교수가 누군지 이름을 안 물어봤다는 게 생각났다. 나는 아픈데도 많아서 과도 여러 군데를 돌아야 하는데.. 나는 일단 기왕이면 신경과 명의한테 우선적으로 검증을 받고 싶었다. 눈이 안 보이고, 자율신경에 이상이 와 대로변에서 실례를 저지른 문제부터 상담하고 싶었던 것이다. 2순위가 신장암 문제였다. 바로 절뚝거리며 간호사에게 가서 외래 교수의 이름을 물어봤다.
"저 혹시 제가 예약된 외래 교수님 성함이.."
잠시후 간호사가 알려준 이름은 신경과 교수 목록에는 없는 이름들이었다. 혹시 신장내과인가? 내분비내과인가? 나는 이번에는 어느 과인지 재차 물었다.
"저, 이 교수님은 신경과에 안 계신 것 같은데
새로 오신 분인가요? 혹시 어느 과에.."
"신경과가 아니고요.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예약되어 있으신데요?"
그리고, 그때 나는 자신이 귀신임을 알게 된
식스센스의 주인공처럼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나는 단순한 환자가 아니었다는 것.
지금까지 나는 응급실에서 난동을 피운
정신병자였다는 사실을.
아까 전 제갈공명의 웃음은 서비스 노동자의 내공이 아니라어느 측은한 정신질환자에게 보낸 너털웃음이었다.
그의 웃음을 다시 곱씹는 순간, 귀신의 가슴 속에서
울려대던 팀파니 연주도 완전히 멈추었다.
-tti-
* 공황장애 환우 분들이 희망을 갖기를, 예비 환우 분들은 설령 이런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놀라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