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고통의 특수상대성이론

스트레스라고는 모르고 살았던 자만한 사람의 공황장애 극복기

by 염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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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2 : 동병상련


'외래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내가 정신과 환자가 되었다니. 이 사실을 납득하기 힘들었다.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런 말을 응급실에서 듣게 될 줄 몰랐다. 지금 나는 몸이 아파 죽겠는데, 난 데 없이 정신과 진료라니. 나는 한동안 제자리에 서 있었다. 병원은 찰리 채플린이 일하던 공장처럼 아무 일 없이 착착 잘 돌아가고 있었다. 시계가 고장 나도 시간은 가는 것처럼 그렇게 응급실은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저 나만 고장이 났다. 나 하나쯤은 있으나 마나 한 건가. 당연한 일에 괜히 서러웠다. 일순간 정적이 흐르며 눈 앞이 아득해졌다. 왕가위 감독이 내 눈의 셔터스피드를 느리게 조절하기라도 한 걸까. 멈춰 선 내 눈 앞으로 응급실 군상들이 흐느적거렸다. 확연히 다른 세상에 로그인한 기분이었다. 그래. 지금 이 순간, 내 시간은 분명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 빛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면 이런 기분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맞죠? 아인슈타인 할아버지, 보고 계신가요? 사람의 숨이 끊어지면 유체이탈을 경험하고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다는 데, 혹시 그때도 이런 기분일까. 혹시 지금 이 순간은 사후 세계인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나는 줄곧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응급실을 바라보고 있는 자는 나인가. 내가 아닌가. 편의점에서 초코우유 2개를 사서 그 자리에서 다 마셨던 남자는 나인가. 아닌가. 조금전 구급차에서 벌벌 떨고 있던 신고자는 나인가. 내가 아닌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는 나인가. 내가 아닌가.

'지금 나는 과연 나일까' 이 질문을 곱씹고 있던 순간, 다리춤이 움찔할 정도로 어디선가 다급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놀란 도둑고양이처럼 2시 방향을 노려봤다. 저 편에서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장면이, 물 조절에 실패한 수채화 물감처럼 번져 보였다. 천둥이 항상 번개보다 한발 늦게 오듯, 곧이어 '코드 블루'를 안내하는 방송이 응급실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지금. 여기서. 누군가 죽고 있었다. 방송을 듣고, 서둘러 뛰어가는 간호사와 눈이 잠시 마주쳤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멱살이라도 잡힌 사람처럼 내 눈을 꼬집어 보더니, 시간 낭비를 했다는 표정으로 바로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 달렸다. 그렇다. 간호사의 시간은 분명 흐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잠시 눈 마주치는 시간마저도 아까울 정도로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시방 나의 시간이 멈춘 동안, 같은 공간에서는 누군가 급히 죽어가고 있었고, 그래서 누군가의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기묘했다. 무언가 부조리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저 사람과 나는 같은 공간에 있는데, 우리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있다. 저만치서 머리통이 사라진 의사의 어깨가 들썩거리는 모습이 흐물텅하게 보였다. 고개를 수구린 채 생사를 오가는 환자의 갈비뼈를 찍어 눌러대는 그의 뒷모습은 인생 마지막 공연에 임하는 비장한 댄서처럼 보였다. 자유형 종목에 출전한 박태환 선수가 호흡을 하듯 그의 고개가 왼쪽으로 잠깐잠깐씩 돌아갔다. 그는 환자 상태를 표시한 화면과 시계를 번갈아 보면서 두 손을 모아 춤을 추듯 내리찍고 있었다. 환자의 심박을 표시하는 화면에는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일직선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듣지 못했지만 아마 삐 - 소리도 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음악없는 슬픈 춤을 추고 있었다


시간은 화장실의 두루마리 휴지 같은 것이다. 또, 시간은 세면대의 비누 같은 것이다. 새 걸 뜯었을 때는 아무리 써도 줄지 않지만, 수명이 끝나갈 무렵이 되면 순식간에 녹아 사라지고 만다. 아이의 시간은 아무리 써도 줄지 않지만 어른의 시간은 금세 사라지고, 노인의 시간은 더 빨리 사라진다. 남은 양이 줄어들수록 더 빠르게 사라진다. 심장이 멎은 환자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5분 남짓. 의사에게 주어진 1분은 환자 여생의 20%였다. 의사의 양손이 심장을 압박할 때마다 환자의 몸은 널을 뛰듯 털썩 털썩 튀어 올랐다. 그의 마지막 5분이 빠르게 녹아 사라지고 있었다. 그의 여생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의문이 들었다. 지금 녹아내리는 시간은 의사의 시간인가. 아니면 환자의 시간인가. 나는 누구의 시간을 보고 있는가.


시간은 고통의 함수이다. 고통이 크면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그랬었다. 군 훈련소에선 시간이 독하게 안 갔다. 논산의 5주는 5년 같았다. 창문 없는 감옥에선 5일이 5년 같을 것이고, 달궈진 쇠판에 맨발로 올라가면 5초가 5년 같을 것이다. 의사에게 몸을 맡긴 저 환자의 고통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면 환자의 5분은 조선왕조 600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건 퍽이나 낯선 장면이었다. 한 명은 시간을 보내려 하고, 한 명은 붙잡으려 한다. 가는 시간을 붙잡는 사람, 시간을 제발 좀 보내려는 사람이 한데 뒤엉켜 널을 뛰고 있다. 갈등(葛藤)이라는 단어는 칡 갈자(葛字)와 등나무 등자(藤字)를 쓴다. 칡 줄기와 등나무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똬리를 틀어, 서로 만나면 항상 엉켜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등은 스칼라가 아니라 벡터다. 서로 가는 방향이 다른 자들이 붙어 있는 갈등은 말 그대로 갈등이다. 그래서 심폐소생술도 필연적으로 갈등이다. 의사가 생명을 연장시키면 시킬수록, 환자의 고통이 커질 수도 있다. 의사의 시간이 빨라질수록, 환자의 시간은 느려질 수도 있다. 그래서, 차라리 놓아드리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나는, 환자의 보호자라도 된 것처럼 머릿속에서 연명치료 거부에 굳게 서명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남 걱정해줄 때가 아니다. 지금 내 시간도 여태껏 멈춰있지 않나. 그래, 나도 지금 고통받고 있다. 나의 시간을 어떻게 흐르게 할 것인가. 저분도 나도 같이 시간이 멈추었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처지가 비슷했다. 그래, 이제 알겠다. 나는 그에게서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었다.




장면 13 : 무혈 혁명


뒤늦게 나의 시선을 의식한 듯 심폐소생술을 돕던 간호사는 커튼을 재빠르게 잡아챘다. 촤르륵 소리가 나면서 그와 내가 함께 있던 공간이 두부처럼 잘려나갔다. 더 이상 눈 둘 곳이 사라졌다.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돌리려는 바로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내 뒤에는 한 여성이 나를 보며,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추장스러운 머리는 한 묶음으로 질끈 묶은 상태였고, 지갑을 넣은 작은 가죽 가방은 불룩 튀어나온 배 위에 태양광 패널처럼 비스듬히 얹혀 있었다. 둘째를 품고 있는 만삭의 아내가, 차를 몰고 나를 데리러 응급실에 온 것이었다. 아내는 나를 찾아 한참을 헤맨 듯했다. 가방에 달린 작은 열쇠고리가 관성에 못 이겨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다. 그 열쇠고리의 율동이 아내가 나를 찾아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하긴, 많이 아프다고 전화를 끊은 사람이 누워있을 줄만 알았지. 멀뚱히 서서 다른 환자의 침대를 엿보고 있을 줄은 몰랐을 테니. 나는 이산가족을 만난 것처럼 손을 부여잡았다. 미안했지만, 미안한 마음보다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실은 눈물이 나게 반가웠다. 그 손을 잡고서야 내가 외로웠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실 나는 오늘 내내, 지독하게 고독했다. 내가 회사에서 얼마나 아팠고. 길에서 왜 주저앉았으며. 내가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실려왔고. 그간 내가 어떤 마음고생을 했고. 내가 어떻게 목숨을 걸고 조영제를 맞았는지. 그리고 내가 지금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지난 서너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래서 울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내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시간은 고독의 함수이기도 하다. 고독은 고통이기도 하니까. 재미있는 영화나 만화책을 볼 때는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지지만, 동영상 강의나 전공 서적을 읽을 때는 시간이 진절머리 나게 안 가고는 한다. 똑같은 동영상과 활자인데, 시간은 분명 다르게 흐른다. 후자에는 고독이 깃들어 있다. 고독은 남이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다. 스스로 풀어야 하고, 스스로 견뎌야 한다. 누구도 나를 대신해 줄 수 없을 때, 고독이 찾아오고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나의 신병(身病)을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었고, 나는 신병을 비관하고 있었다. 나는 고독했고,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아내를 본 순간.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거대한 비눗방울처럼 나를 감싸고 있던 고독의 주머니가, 점점 부풀어 올라 주변을 자꾸만 밀어내고 있었는데, 아내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기어이 그걸 찢고 들어와 나를 구해주었다. 마치 강한 중력 앞에 시공간이 휘어지듯, 아내는 강단 있게 그 존재의 힘만으로 나의 고통에 맞서 함께 버텨주고 있었다. 나의 고독이, 나의 고통이 힘차게 굴절하고 있었다.

이제 나에게도, 병원의 횡포에 대항할 동반자가 생겼다. 뒤늦게 말문을 열었다. 나는 동네에서 얻어 맞고 온 꼬마가 엄마한테 미주알고주알 떠들어 대듯 내가 겪은 일들을 아내에게 일러바치고 있었다. 당장, 앞뒤를 자르고 조금 전 당한 오진 의혹부터 털어놓았다. 침을 튀겨가며, 나의 아픔이 부정당한 흑역사를 미화하고 있었다. 말하다 보니 다시 화가 났다. 나는 아픈데. 멀쩡하다니. 잊고 있었던 임무가 다시 떠올랐다.


그래, 다시 의사를 찾아야 한다.


나의 아픔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줄 의사가 필요했다. 나는 지금 이순간에도 아팠다. 정신과 외래 진료는 외래 진료고, 지금 나에게 찾아온 이 자각 증상을 해결할 의사를 찾아야 했다. 이대로 퇴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래, 내 머리가 비정상이라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현재 내 몸도 정상이 아님은 증명해야 했다. 지금 내 몸에 도드라진 이 뻔뻔한 자각증상들이 어떻게 모조리 허위라는 말인가.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뛸 때마다 뒷목이 노크를 하듯 쿡쿡 울렸다. 드라마를 보면 중년의 아저씨들이 화를 내다가 뒷목을 잡고 쓰러지던데, 바로 이런 것이었나. 나는 어느 외로운 수학자처럼 아픔을 증명해야 했다. 아내가 보는 앞에서 이걸 꼭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의사 처방을 받아 검사를 하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조금 전 모든 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혁명을 꿈꾸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검사 결과를 뒤집어야 한다. 그래서 아내가 챙겨 온 빵도 먹을 수 없었다. 모든 질병 체크의 시작은 피에서 시작하는데, 피검사를 하려면 계속 공복 상태를 유지해야 할 것만 같았다. 혹시 응급수술이라도 들어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수술 전에는 금식이니까. 혼자 수술까지 진도를 나가다가 피 생각까지 떠오른 것이다. 피. 피를 떠올리다 번쩍 생각이 났다. 유레카, 혈압. 혈압이 있었다. 지금 내 뒷목이 쿡쿡 쑤시는 건 순전히 혈압 때문이니까. 혈압은 의사 처방 없이도 바로 잴 수 있다. 응급실 입구에는 문진을 위한 혈압계가 상시 비치되어 있지 않은가. 그럼, 피를 뽑지 않고도 뭔가 해볼 수 있다. 일단, 혈압을 먼저 재고 그걸 가지고 뭔가 밀어붙여 보기로 했다. 의사에게 기습 공격을 할 수 있는 좋은 계획 같아 보였다. 아내와 상의도 없이 나는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포데로사를 탄 '체 게바라'처럼 응급실 로비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혈압계를 찾아 응급실을 빠르게 휘젓고 다녔다. 드디어 저 건너 입구에 혈압계가 보였다.혈압계를 정조준 했다. 혈압계 앞에는 세 명 정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차, 늦었구나. 그 뒤로 누군가 혈압을 재러 오는 게 보였다. 지금이라도 최대한 빨리 가야 했다. 저 사람보다 내가 빨리 가야 했다. 오토바이로 역주행을 하듯 환자를 눕힌 침대, 구조대원, 의사, 간호사를 요리조리 피하며 속도를 올렸다.

나는 과속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빼곡한 지하철에서 자리 쟁탈전을 벌이듯 엉덩이를 들이밀며 대기 4번을 쟁취하고야 말았다. 4번도 퍽이나 답답했다. 빨리 혈압을 재고, 의사에게 따지러 가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 이걸 기다리나. 나는 다급함에 화까지 나기 시작했다

뒤늦게 저 건너에서 오고 있는 아내가 눈에 들어왔다. 아내 가방에 매달린 열쇠고리가 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배가 잔뜩 불러 뒷짐을 진 채 아내는 종종걸음으로 달리듯 걸어오고 있었다. 아내는 그렇게 아무 말없이 나의 '무혈 혁명'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 순간, 다시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고통받고 있었다.


-tti-



* 공황장애 환우 분들이 희망을 갖기를, 예비 환우 분들은 설령 이런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놀라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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