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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나가는 선원이 되어라

취준생들이 자소서 쉽게 쓰는 법에 대하여

by 염띠

자기소개서에는 한 사람의 역사가 담겨 있고, 철학이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자소서를 잘 써줄 자신은 없다.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누군가의 역사와 철학을 흉내 낼 순 없기 때문이다.


다만, 쉽게 써줄 자신은 있다.

쉽게 쓰는 방법을 공개한다.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뜻하지 않게 언론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 동료, 후배 등으로부터 자소서를 한번 봐달라는 부탁을 심심치 않게 받았다.


아무리 해도 분량이 안 채워져요


분야도 다르고, 개개인의 능력과 개성도 모두 다르지만

의뢰인(?)들이 공통적으로 내놓는 고민이 있다.


바로, 분량이다.


보통 자소서에서는 기업들이 1000자 이내, 1500자 이내, 2000자 이내. 이런 분량 기준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지원자 입장에서는 분량 채우는 게 일일 수밖에 없다.


물론, 기업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많게는 수천 장, 수만 장을 읽어보려면 분량을 무제한으로 허용해서도 안 될 것이고, 그렇다고 너무 간략하게 쓰면 지원자의 특성을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원자들은 아무리 짜내도 안 나올 때 진땀이 난다.

특히, 지원동기 같은 건 길게 채우기도 힘들고 또 여러 기업에 동시에 넣다보면 여기서 한말 저기도 하고 뒤죽박죽 되는 경우도 있어서 더 그렇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 같아요


자소서의 빈 공간은 내가 살아온 이야기,

나의 글감으로 채워야 한다.


그래서 분량을 채운다는 것은 글감을 찾아낸다는 것과 같다. 자소서의 기둥이 글감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당연한 얘기다. 문제는 이 글감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개의 글감을 2000자 이내로 연결시켜 한 덩어리를 만든다는 것.


이것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는 경우가 많다.

이것저것 이어 붙이다 보면 누더기가 되기 쉽고, 또 어느 하나가 뚱뚱해지는 언밸런스가 종종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그래서 지원자들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바다에 나가는 선원의 마음으로 써봐



이른바 '뱃사람 자소서 비법'은 이 문장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다음의 3단계로 이뤄진다.


선원이 바다에 나가려면 우선 바다에 대해 알아야 한다.

내가 나갈 바다가 인도양인지, 대서양인지. 동해인지 서해인지. 이것이 바로 산업(Industry)이다.


내가 종사할 산업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통신업, 제조업, 방송업, 서비스업 다양한 산업 중에 내가 왜 이 산업을 택했는지 고르는 것이다.


이것이 초반 3분의 1이다.


그다음은 배를 고르는 것이다.

똑같은 태평양이라도 다양한 배들이 존재한다.


큰 배, 작은 배, 낚싯배, 유조선, 군함 등등 나는 어떤 배를 타고 싶은지, 내가 왜 이 배를 타려고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회사(Company)이다.

그리고, 이것이 중반 3분의 1이다.


끝으로, 직무(Function)이다.

나는 배에서 무엇을 기여할 것인가.


낚싯배에 기관사도 있지만, 요리사도 있다.

같은 배라도 하는 일은 천지 차이다.


내가 인사를 할지, 재무를 할지, 마케팅을 할지, 영업을 할지. 골라야 한다. 그리고 생각해야 한다. 무엇이 내가 원하는 것인지. 이것이 나머지 3분의 1이다.


기억하자. I-C-F. 산업 기업 직무.


보통 지원동기 등을 묻는 문항에 대해 답변을 할 때, 앞서 살펴본 3가지 기둥 중에 한 가지에만 꽂히면 그쪽으로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자동차 회사 지원서를 쓴다고 하자.

(예시 1)

저는 어릴 때부터 차를 좋아했습니다. 장난감도 차만 가지고 놀았고, 그래서 나중에 차를 만들면 얼마나 행복할까 고민을 했고, 어쩌고 저쩌고..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는 건 제 꿈이 되었고,

(예시 1)은 전형적으로 '바다' 즉, 산업에만 집중한

자기소개서이다.


간혹 이렇게 산업에 꽂힌 소개서들이 많다.

여기에 몰입하다 보면 그래서 왜 우리 회사에 지원했지?

우리 회사에서 이 사람이 뭘 할 수 있지? 에 대한 고민이

빠지거나 비중이 크게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다음 예시를 또 보자.

(예시 2)
저희 집은 어릴 때부터 <ㅇㅇ자동차>만 이용했습니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큰아버지도.. 야구팀도 어딜 좋아했고, 그래서 나중에 <ㅇㅇ자동차>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ㅇㅇ차>의 조직문화는 어떻다고 들었으며,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하고 있으며..


(예시 2)는 이번엔 '배' 즉, 기업에만 집중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기업만 파는 의뢰인들도 많다.


여기에만 집중하면 산업에 대한 고민,

직종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질 수 있다.


끝으로, (예시 3)은 보직 즉, 기능에만 집중한 예시이다.

(예시 3)
저는 고등학교 때 붕어빵을 팔아서 얼마를 벌었고, 그래서 상품 기획에 재미를 붙였고, 능력도 검증됐고, 대학에서는 창업 동아리 하면서 사업 기획에 대해 알게 됐고 어디에서 인턴 하면서도 마케팅과 기획 분야에 이렇고 저렇고 했습니다.

이 문장 역시 마케팅 직종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읽을 수 있지만 왜 근데 자동차 산업이지? 왜 근데 하필 우리 회사지? 이 문제엔 답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식으로 한 가지 기둥만 가지고 승부를 보려고 하면 분량 채우는 게 큰 부담이 된다. 중언부언된다.

늘어진다. 그렇다면, 양을 어떨게 채울 수 있을까?


앞서 살펴본 예시 1,2,3은 각각 따로 놓고 보면

매우 식상하고 재미없는 자소서이지만

이걸 일단 합쳐놓으면 분량이 3배로 확 늘어난다.


당연하다 3개를 합친 거니까.

그럼 합쳐 보자.



(예시 1)
저는 어릴 때부터 차를 좋아했습니다. 장난감도 차만 가지고 놀았고, 그래서 나중에 차를 만들면 얼마나 행복할까 고민을 했고, 어쩌고 저쩌고..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는 건 제 꿈이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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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 2)
저희 집은 어릴 때부터 <ㅇㅇ자동차>만 이용했습니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큰아버지도.. 야구팀도 어딜 좋아했고, 그래서 나중에 <ㅇㅇ자동차>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ㅇㅇ차>의 조직문화는 어떻다고 들었으며,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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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 3)
저는 고등학교 때 붕어빵을 팔아서 얼마를 벌었고, 그래서 상품 기획에 재미를 붙였고, 능력도 검증됐고, 대학에서는 창업 동아리 하면서 사업 기획에 대해 알게 됐고 어디에서 인턴 하면서도 마케팅과 기획 분야에 이렇고 저렇고 했습니다.


자, 3개를 합친 것만으로 얼추 400자가 되었다.

그냥 붙여 놓으면 어색하니까

이제 여기에다가 이음새 문장만 붙여보자.


이음새는 산업-기업-기능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로 적당히 넘겨주면 된다. 1초 만에 써서 이어보겠다.

(예시 1)
저는 어릴 때부터 차를 좋아했습니다. 장난감도 차만 가지고 놀았고, 그래서 나중에 차를 만들면 얼마나 행복할까 고민을 했고, 어쩌고 저쩌고..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는 건 제 꿈이 되었고,


< 이음새 1>
이렇게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대를 자동차 산업으로 정하고 나니, 선택은 자연스럽게 <ㅇㅇ자동차>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저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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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 2)
저희 집은 어릴 때부터 <ㅇㅇ자동차>만 이용했습니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큰아버지도.. 야구팀도 어딜 좋아했고, 그래서 나중에 <ㅇㅇ자동차>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ㅇㅇ차>의 조직문화는 어떻다고 들었으며,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하고 있으며..

< 이음새 2>
다만, <ㅇㅇ차>에서도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 봤습니다. 저는 특히, 마케팅과 기획 쪽은 자신도 있고, 경험도 꽤 갖췄다고 자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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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 3)
저는 고등학교 때 붕어빵을 팔아서 얼마를 벌었고, 그래서 상품 기획에 재미를 붙였고, 능력도 검증됐고, 대학에서는 창업 동아리 하면서 사업 기획에 대해 알게 됐고 어디에서 인턴 하면서도 마케팅과 기획 분야에 이렇고 저렇고 했습니다.


역시 분량이 확 늘어났다. 사실 여기까지는 3개의 뼈대만 세운 건데, 이미 600자를 넘어갔다. 순항 중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분량이 부족하고 내용도 부족하다.

그럼 나머지는 어떻게 채워야 할까.


이제부터는 비로소 스터디를 해야 한다.

취업 스터디는 바로 여기부터 시작이다.

스터디는 크게 내면적 스터디와 외면적 스터디로 나뉘는데, 일단 외면적 스터디부터 해보겠다. 이것도 아주 간단하다.


외면적 스터디


이 역시 바다에 나간 선원의 마음으로

산업, 기업, 기능 순으로 하면 된다.


먼저 현재 산업적 특성부터 살펴보자.
흔히, 경영학에서 산업분석을 할 때는 마이클 포터라는

학자가 만든 5 forces 모델이란 걸 내놓기도 하는데,


이건 나중에 자세히 찾아보시도록 하고

일단 쉽게 산업의 경쟁 상황을 파악하면 좋다.


현재 산업군의 위상이 어떤지,

해외 산업과의 연관성은 어떻게 되는지..


두 번째로 회사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이것은 재무제표를 보면 가장 좋고, 그것도 어렵다면

최근에 이익이 났는지 손실이 났는지. 최근에 신제품이 나왔는지, 최근 구조조정이 있었는지.

최근 동향을 업데이트하는 것이다.


세 번째 직무 스터디는 두번째 스터디 결과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기업의 매출이

하락했다면 원인을 조사해 거슬러 갈 수 있고 그러다보면

직무와 만나게 된다. 잠시 후 예를 들어 보이겠다.


자 그럼, 3개의 기둥에 스터디 포인트를 3개 추가해 보자.

(예시 1)
저는 어릴 때부터 차를 좋아했습니다. 장난감도 차만 가지고 놀았고, 그래서 나중에 차를 만들면 얼마나 행복할까 고민을 했고, 어쩌고 저쩌고..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는 건 제 꿈이 되었고,

[스터디 1 - 산업]
특히, 최근 세계 각국의 ( ) 개 업체가 탈 내연기관을 선언하며, 전기차로 변모하고 있고, 우리 정부는
( ) 부처에서 ( )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수소경제에도 투자 이뤄지는 상황. 역사적으로 ( )년도에 ( )로 인해서 마차가 자동차로 바뀌었듯. 지금 자동차 산업은 혁명적 변화가 이뤄지는 중.. 그 한복판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 이음새 1>
이렇게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대를 자동차 산업으로 정하고 나니, 선택은 자연스럽게 <ㅇㅇ자동차>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저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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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 2)
저희 집은 어릴 때부터 <ㅇㅇ자동차>만 이용했습니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큰아버지도.. 야구팀도 어딜 좋아했고, 그래서 나중에 <ㅇㅇ자동차>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ㅇㅇ차>의 조직문화는 어떻다고 들었으며,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하고 있으며..

[스터디 2-기업]
특히, <ㅇㅇ차>는 국내 업계 1위의 기업, 하지만 지난해 매출은 하향세 접어들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는 상황이고.. 비행 모빌리티 투자 등
산적한 문제가 많다. 어차피 자동차 업계에서 일할 것이라면 <ㅇㅇ차>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이음새 2>
다만, <ㅇㅇ차>에서도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 봤습니다. 저는 특히, 마케팅과 기획 쪽은 자신도 있고, 경험도 꽤 갖췄다고 자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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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 3)
저는 고등학교 때 붕어빵을 팔아서 얼마를 벌었고, 그래서 상품 기획에 재미를 붙였고, 능력도 검증됐고, 대학에서는 창업 동아리 하면서 사업 기획에 대해 알게 됐고 어디에서 인턴 하면서도 마케팅과 기획 분야에 이렇고 저렇고 했습니다.

[스터디 3-보직]
지난해 ㅇㅇ차의 매출 감소 요인을 살펴보면 해외 수출 부진이 두드러집니다. 특히, 동유럽에서 ( ) 유로 정도의 매출 감소가 있었고, 이는 경쟁사에서
( ) 제품을 출시하면서 벌어진 일로 보이는데, 이 때문에 현재는 동유럽권의 적극적인 마케팅과
영업 전략이 필요한 상황으로 보인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예시 1,2,3에 이음새를 2개 넣었고,

그 그다음에 스터디 포인트 1,2,3을 추가했다.


다시 말해, 스터디는 위의 괄호를 채우는 과정이 되겠다.

이제 1400자 정도 완성이 되었다.
여기에 살을 붙이고 클로징 한 문장 정도 추가하면, 1500자가 얼추 나오게 된다.

만약, 글자 수가 2000자 라면 예시 1,2,3의 에피소드를 좀 더 뚱뚱하게 가든지. 스터디를 좀 더 보강하든지 아니면 이음새 문장을 한 두문장 추가하면 될 것이다.


내면적 스터디


그다음이 내면적 스터디인데, 이것은 예시 1,2,3 문장에 관한 것이다. 앞서 내가 예시로 적은 문장은 그냥 막 생각나는 대로 어디서 본 듯한 아주 식상한 에피소드를 적어 넣었다.


이제는 예시 1,2,3을 나만의 경험과 철학이 녹아든 문장으로 탈바꿈하면 된다. 나의 성장과정을 돌아보고, 내가 읽었던 책의 목록을 꼽아보고 내가 소속한 동아리나 학회,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을 생각하고 실제로 내가 진로를 정할 때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 진솔한 자기와의 대화가 필요한 시간이다.


보통 나는 이 부분은 내가 직접 인터뷰하면서 끌어내는 경우도 있고, 본인에게 직접 해보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무래도 좋다.

단, 한 가지 조건은 거짓말은 안된다는 것.


예를 들어 기업에 지원한 이유가 사람을 많이 뽑아서라든지, 정말 한번 넣어본 게 이유라면. 솔직하게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경우 스터디를 통해 그럼에도 이 기업을 알아보면서 느낀 점이나 일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적어도 충분히 자신을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충 쓴 예시 문장을 자기만의 문장으로

다듬어 쓰는 건 본인의 몫이다.


본인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사람의 몫이다.

자기소개서에 답은 없다.

다만, Why this industy? Why this company? Why this Fucntion? 이 세 가지 질문은 서류와 면접 전형 과정에서 언젠가는 부딪힐 과정인 만큼 꾸준히 고민하면

실제로 현업에서 일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


지원동기는 곧 업무 동기부여가 되고

이는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취업은 기업이 인재를 추리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취준생이 내 일터를 추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산업과 기업을 알아보다가 그냥 지원하지 않기로

결정한 적도 있다. 알아볼수록 재미없을 것 같아서.


나의 일터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는 것이 자소서의

시작과 끝이다. 또, 내 사회생활의 시작과 끝이다.


모두가 자소서를 잘 쓰시길 바란다.


그리고 기왕이면, 쉽게 쓰시길 바란다.

바다에 나간 선원의 마음으로.


-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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