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어렵고 궁금한.
아꽁(남자친구)이와 24살 크리스마스에 처음 알게 되어 25살 1월에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벌써 6년이 지났고, 우리는 30대를 함께 시작했다. ‘오늘부터 1일’ 이라고 정한 날, 서로의 핸드폰에는 기념일 어플이 깔렸고 그렇게 하루 하루를 세어가며 만났다. 그때는 어찌나 100일 되는 게 어렵던지. 우리가 만나고 맞이하는 첫 기념일에는 이걸 해야지 저걸 해야지 머릿속에 계획은 가득한데 시간은 너무 더디게 가는 것 같았다. 근데 이제는 몇일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할 뿐더러 6주년이 이미 지났다는 게 신기하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연애는 남들과 다르게 흘러간 것 같다. 1년 정도는 콩깍지 씌여서 불만이 뭔지 그저 서로 좋아하기 바쁘다는 다른 커플들과는 달리 우리는 아주 초반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성향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심지어 식성도, 취미도, 외향적인 특징(키나 얼굴형 등?)까지 뭐 하나 맞는 게 없었다. 아, 이것이 로또인가? 하는 생각이 매일 들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좋을 때도, 싸울 때도, 별로 특별하지 않은 날들 모두 꼭 붙어있었다. 마치 그래야만 하는 사람들처럼. 그래서 하루를 넘기는 싸움은 없었고, 풀리면 언제 다퉜냐는 듯 맛있는 걸 먹고 웃고 떠들었다. 이런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다고 느껴졌다.
솔직히 다투는 시간이 많았어도, 헤어지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살 때가 있었어도, 아꽁이는 언제나 내 옆에 있는 사람, 우리는 절대로 헤어지지 않을꺼야 라는 이유 모를 확신이 있었다. 다시 붙어 있을 때는 그저 좋았고, 얼른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지 했었던 것 같다. 20대 중반이라 하면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니었는데도 희한하게 단순하고 쉽기만 했다. 지금에서야 제 3자가 보듯이 우리의 과거를 회상해서 착각하는 건지는 몰라도 그땐 싸움이 복잡하지 않았다.
6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와 사뭇 다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서로가 싸울 땐 어떻게 하자는 약속도 몇 번 했었기에 화해도 잘하는 편인데 나는 언젠가부터 자타공인 ‘장수 커플’이 된 현재의 우리가 더 어렵다. 늘 옆에 있던 아꽁이는 그대로인데 괜히 그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가끔 장수 커플 특징 해서 올라오는 글들과 영상들을 보는데 웃기면서도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20대의 절반을 함께하고 30대의 시작점에도 같이 있는 우리인데, 마치 20대에 만났던 남자친구, 그리고 30대에 만나는 남자친구 이렇게 따로 있는 것 같다. 여느 장수 커플들처럼 너무 느슨해져서 권태기가 온걸까? 하지만 권태기는 아니다. 그게 아니라 그동안 봐왔던 아꽁이나 지금의 아꽁이나 별다를 것 없는데 나 혼자 다르게 느끼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이 아주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있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여행갔을 때 아침(2년 전)
나: (일어남)
아꽁: (폰보는중)
나: …
아꽁: (폰보는중)
나: 하아아아암 (일어났다는 인기척을 아주 큰 하품으로 알리기)
아꽁: (폰보면서) 일어났어?
나: 어.
아꽁: (폰보는중)
나: 아니 내가 일어났는데 얼굴도 안쳐다보고 굿모닝도 안하고 뽀뽀도 안하냐?! 변했어!!
아꽁: (;;;당황;;;) 아니야~서운할만 했네, 미안미안
나는 애정표현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아꽁이는 그런 나의 애정표현이 좋다고만 생각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한 번도 그렇게 밝게도, 표현하면서도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실제로 우리집은 부모님이 기념일도 잘 챙기고, 웃음도 많고, 서로 다투기도 많이 하지만 애정도 많은 편이다. 50대가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아빠는 엄마가 김태희보다 이쁘다는 말을 할 정도로. 하지만 아꽁이의 부모님께서는 대화나 웃음은 별로 없다고 한다. 매일같이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 우리집과는 달리 똑같이 떨어져 살아도 한달에 한 번씩 연락하는 아꽁이 가족 분위기를 보면 확실히 우리 둘이 다를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아꽁이가 엄청나게 무뚝뚝하고 어두운 편은 아니다. 반대로 남자친구 입장에서는 내가 너무 과해보일 수 있겠지 싶다.
아무튼 2년 전까지만 해도 저런 상황에서 든 나의 생각은 그저 감정적인 서운함이었다. 전에는 눈뜨면 나를 쳐다보고 있는 아꽁이가 신기할 정도였는데 이젠 일어났다는 인기척을 보내도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일어났냐고 하는 아꽁이한테 서운하고 ‘날 좋아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요즘에는 이런 일이 생기면 ‘내가 진짜 이렇게 아침마다 굿모닝도 제대로 할줄 모르는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평생을 애정있게 살고싶다는 바램이 있는 나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피곤하다 할 수 있지만 나에겐 중요한 일이다. 특히 아침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러하듯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인데 서로 기분좋게 굿모닝을 하며 에너지를 억지로라도 충전하려 하면 좋지 않은가 싶다. 이런 나와는 달리 아꽁이는 아침에 잠이 덜깨서 힘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미 우리가 만난지 6년째이기 때문에 이러한 아꽁이의 특징은 알고 있지만 이해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고, 오히려 더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다. 지극히 감정적인 사람인 나에게는 결혼생활의 현실적인 조건이 물질적인 것보다는 애정과 에너지 부분이 더 큰 것 같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건데 평생을 함께 살면서 애정 표현에 건조하면 그건 숨막힐 것 같다는 나의 판단이다.
이렇게 아꽁이의 똑같은 실수나 성격, 습관에도 전과 요즘 나의 반응이 현저히 다르다는 걸 느낀다. 전에는 감정적으로 상처만 받았다면 지금은 골똘히 고민하게 된다. ‘진짜 내가 이런 사람이랑 평생 함께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 절대로 아꽁이가 나쁜 사람이 아니다. 표현이 서툴고 둔하기도 하며, 나에 비해서 귀찮음을 더 잘 느끼는 것뿐. 내가 원한다면 뭐든 해주려고 노력하고, 나에게 예쁘게 말하려 하고, 나란 여자에 적응하려 다분히 최선을 다한다. 근데 항상 ‘내가 원하는 부분 안에서’ 라는 게 서운할 뿐이다.
알아서 척척 해주면 좋지만 그게 안되도 내가 원한다고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 하면서도 표현이 좀 더 진하고 깊고 나에 대한 생각을 알아서 많이 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여느 장수 커플들과 비슷할까? 31살이 되어 서로 결혼 얘기도 자주 하지만 진짜 결혼을 해도 되는 사람들일까? 우리가 정말 평생 함께해도 괜찮을까? 점점 더 어렵고,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