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외로운
직장생활을 하면서 서울에 올라와 독립한 나는 거의 매일같이 엄마와 통화를 한다. 적어도 20분에서 많으면 2시간까지도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무슨 할 말이 매일 그렇게 많냐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이러한 누군가를 보면 의아해할 수 있지만 사실 우리의 대화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보통을 밥 먹었냐, 점심 메뉴가 뭐였냐는 일상 대화로 시작해서 시시콜콜하고 앞, 뒤 문장만 바꾼 같은 말들을 반복하는 듯하다. 그러한 일상들의 하루였던 어제, 그리고 오늘.
"엄마, 점심 먹었어?"
"아니~ 병원에서 방금 나와서 이제 집에 가려고"
"아~ 뭐 먹으려고?"
"글쎄, 가는 길에 김밥이나 사갈까? 아침에 먹다 남은 미역국 있으니까.."
"왜 맨날 김밥 같은 거 먹어~ 오늘은 내가 도시락 배달시켜줄까?"
"아니야 됐어~ 미역국이랑 먹으면 돼."
"됐슈~ 병원도 다녀왔는데 좀 영양가 있게 먹어~"
"그럴까 그럼? 주변에 김밥집도 없네 보니까 ㅎㅎ"
"그래~ 주문했어~"
"고마워~"
30분 채 되지 않아 엄마의 점심 인증샷이 도착했다. 나름 영양을 채워주고 싶어 반찬 다양한 도시락으로 골라 보내드렸다. 평소에 김이나 양배추찜 하나에 국 떠놓고 단출하게 드신다는 엄마의 점심보다는 훨씬 알차 보여서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는데, 왠지 그래도 모자란 느낌이 들고 괜히 마음이 짠해졌다. 이후에 다시 전화를 했고, 내일은 좀 더 맛있는 걸로, 보다 건강한 걸로 드시라고 신신당부하다가 구이용 소고기 두 팩을 주문해 보내드렸다.
요즘엔 세상이 참 좋아져서 신선한 식재료가 새벽 배송으로 도착한다. 그래서 다행히도 다음날 엄마의 점심을 책임질 수 있었다. 역시나 고맙다며 인증샷을 보내왔다. 소고기 한상 차림인데도 왜 이리 허전해 보이는지. 샐러드와 기름장, 미역국까지 알차게 드시는데도 괜한 짠함이 몰려오면서 나도 모르게 '외롭다.'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엄마는 참 밝은 사람이다. 표현도 많고, 웃음도 많고, 투정도 많다. 사람도 너무 좋아하고, 특히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항상 바라는 분이다. 그런 엄마의 성격을 알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엄마의 점심시간이 굉장히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TV를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데, 따로 취미도 없는 분인지라 그 큰집에서 혼자 식사를 할 때 얼마나 고요하게 느껴질까?
코로나가 터지기 반년 전에 자궁 수술을 하시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속 끓는 일들에 치여 지내다가 생활에 안정을 찾아가던 중 엄마에게는 코로나 블루가 찾아왔다. 거의 전원주 님 급이라는 말을 많이 들을 정도로 쾌활했던 내 엄마의 웃음소리의 볼륨이 줄어든 지는 오래되었고, 매일같이 머리가 지끈거린다며 두통을 호소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러다 한 번쯤은 의욕을 갖고 '뭐라도 해야지!' 하면서 생기를 되찾는 듯했지만 다시금 짜증이 늘고 과거 회상을 하며 억울해하고, 눈물을 흘리시곤 했다. 아빠를 비롯해 가족들이 관심을 최대한 보이려 노력하지만 마음이 잘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다.
어쩔 땐 그런 엄마를 귀찮아하기도, 피곤하다 생각하기도 하다가 미안하기도 하다. 일이 바쁜 날에는 엄마에게 전화하기 전부터 심호흡을 해야 할 정도로 또 무슨 투정을 부릴까 걱정을 하지만 결국엔 하고, 하다 보면 옆에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마음에 짠하다. 연애도 상대방이 떠나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하는데 하물며 엄마는 우리를 키울 때 이렇게 외로워질 줄 몰랐겠지. 홀로 낮을 보내고,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얼른 외롭고 고요한 엄마의 점심이 한산하고 여유로운 그녀만의 힐링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