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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종이 Mar 02. 2022

네 뒷모습이 왜 이리 짠할까

한참을 바라 보고서.

 찰칼-


뭐해?

그냥 사진 좀 찍었어ㅎㅎ

풍경?

아니, 오빠 뒷모습.



 요즘 우리는 이제야 연애하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무려 6년의 장수 커플인데 말이다. 사실 이제는 우리가 연애를 하는건지, 부부가 된건지, 친구인건지 가끔 헷갈릴 때도 있다. 우리 사이가 모호하다기 보다는 나에게 그의 존재를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든 여러 감정이 생겼다. 어쩔땐 너무 밉기도 하다가도, 어쩔땐 이만큼 고마운 사람이 있나 싶기도 하다. 나를 있는 힘껏 안아줄 때는 말도 못하는 설렘이 찾아오는데도 이렇게까지 편해져도 되나 걱정이 되기도 하는, 그런 이상한 관계가 되었다. 물론 이런 변덕스러운 마음은 언제나 평온한 남자친구에게는 일어나지 않지만.

내가 찍은 너의 뒷모습

 남자친구와 아주 간만의 여행을 갔던 날, 카페 화장실을 갔다가 나오면서 홀로 앉아있는 아꽁이의 뒷모습을 보고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발걸음이 멈춰졌고, 마음이 몽글몽글 이상해지더라. 한참이래봐야 1분 남짓이겠지? 날 기다리고 있는 남자친구때문에 나름 일찍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사진 한 잔 찰칵.


 왜 남기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뒷모습을 보면서 괜히 코끝이 찡했다. 그러다가도 나 진짜 주책이다 했는데 저녁에 돌아오는 기차에서 자고있는 아꽁이를 보면서 또 다시 그 마음이 몰려왔다. 왜일까? 무슨 우리가 10년 넘은 부부도 아닌 것을. 그동안 서운하다를 몇 천번 넘게 말하며 투정부렸던 6년간의 시간에 사실 고마웠던 게 더 많았던 것 같다. 철없던 20대를 보내고 서른살이 된 우리는 여전히 똑같으며, 또는 다르다. 나의 못난 모습부터 정말 여자친구의 환상을 깨는 모습까지 모두 보면서도 내 옆에 있던 것 또한 고마웠겠지만 그보다 훨씬 깊은 마음이 스쳐 지나간 것 같다. 그 짧은 1분 남짓의 시간동안 나 혼자 드라마를 찍은 듯 주변 모든 것이 멈추고 오로지 내 남자친구밖에 보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늦게 정신을 차렸더라면 눈물까지 또르르 흘리지 않았을까? 생각만 해도 이불킥 감이다.

네가 찍어준 나의 뒷모습. 왜 이렇게 쭈글이..?

 


 네가 앞으로도 쭉 내 옆에 있을거란 확신도, 내 옆에 네가 앞으로 쭉 있어도 될까 라는 확신도 없는 요즘, 점점 더 너에게 고마움만 커져가네. 그동안 바쁘다는 등의 이유들로 누리지 못했던 우리의 연애 이제 좀 누리자고 했잖아. 그렇게 서로 약속한 뒤로 좀 더 너의 눈을 바라보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전에 없던 새로운 설렘이 찾아와. 아직도 나는 너에게 서운하단 말을 이틀에 한 번씩은 하는 것 같지만.. 어쩌겠어 이게 나인걸 ㅎㅎ 우리 끝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서로 옆에 있는 때까지는 사랑하고 고마운 마음 잊지 말자. 가끔 서운함은 놓치고 지나가도, 고마움은 다시 돌아와서라도 표현할게. 매 순간 고맙고, 어제보다 진하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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