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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종이 Jun 29. 2022

부모님께 남자친구 소개하기

6년 비밀연애의 끝.

 "엄마, 나 남자친구 있어."

 "내 너 그럴 줄 알았어, 얼마나 됐는데?"

 "6년!"

 "...너 일루 와!!!"


 올해 만 서른 살이 된 나의 가장 큰 숙제는 6년 간 숨겨왔던 남자친구를 가족들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난 엄마와 상당한 유대감을 이어오고 있는 딸로서 그동안 말하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딸의 연애에 관해서는 굉장히 까다로운 분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매번 입 꾹 다물게 됐다. 사실 6년 전 지금 남자친구와 처음 관계를 시작할 때 부모님께 알렸다가 너는 남자 보는 눈이 없다는 둥 별 얘기를 다 들으면서 시달렸기 때문에 헤어졌다는 거짓말과 함께 비밀이 되었다. 그렇기에 더욱 다시 오픈할 수 없었고, 부모님의 간섭 없이 하는 연애란 위험하기도, 달콤하기도 한 그 어느 즈음이었기 때문에 스릴은 넘쳤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나이 서른이 다 되도록 너는 남자가 없냐는 말을 엄마 입으로 직접 듣게 되니 찔려서라도 이젠 말해야겠다 싶었다. 어찌 보면 내 나이가 얼른 30대로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럼 그만큼 부모님도 내 결혼을 위해서라도 조심스러울 테고, 한편으로는 엄마, 아빠가 조금은 약해질 거라는 나쁜 생각도 한 것 같다. 그렇게라도 하고 싶을 만큼 부모님의 남자친구 반대 이유는 나에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성격이나 인성이 모든 건 아니지만 내 나이 25살, 남자친구와 동갑이었고, 이제야 뭔가 시작해볼 때에 부모님은 마치 결혼 상대의 모든 조건을 갖춰야 하는 것처럼 생각을 했다. 학력, 돈벌이, 집안 등등. (말하자면 대하소설을 쓸 만큼 긴 사연이지만 앞으로 조금씩 풀어가는 걸로^^)


 아무튼 부모님은 몰랐겠지, 결국엔 당신들이 반대했던 딸의 남자친구를 예비 사위로 다시 인사하게 될지. 당장 결혼하는 건 아니지만 내 나이가 있기 때문에 부모님도 절대 가볍게 대하지 못했고, 난 어쩌면 타이밍 좋게 말 잘했다는 생각도 했다. 


 "어쨌든 데려와 봐."

 "언제?"

 "최대한 빨리!!!"


 정말 급하게 잡힌 첫인사 날이었다. 뭘 준비할 새도 없었는데 남자친구의 긴장감은 날이 갈수록 더했나 보다. 디데이가 되었을 때는 진짜 심장이 곧 밖으로 나올 사람처럼 숨까지 차올라했다. 



꽤 아저씨스러웠던 아꽁이의 첫인사 코디. 그리고 양손이 부족했던 선물들.

 내 남자친구 아꽁이는 아주 소극적이면서도 순진하고, 아이 같은 사람이다. 외향적인 척하고 싶어 하는 내향인이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하이텐션인 나를 버거워하면서도 좋아한다. 그런 아꽁이의 여자친구 부모님과 첫인사는 엄청나게 떨렸을 것이다. 더구나 본인을 반대했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긴장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정장을 챙겨 입고 왔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에게 줄 갖가지 선물들을 챙겨 왔다. 손이 두 개인 게 아쉬울 만큼. (우리 집 여자들의 꽃들과 조카의 장난감, 한우 세트, 엄마에게 드릴 영양 크림ㅎㅎ)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들을 준비한 게 아닌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나처럼 텐션이 높은 사람은 아니지만 어른들을 챙길 줄 알고,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 가족들을 아무 이유 없이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 아꽁이가 난 항상 고마웠다. 그래서 반대했던 부모님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 마음을 보듬어준 것도 남자친구였다. 6년 간 비밀 연애를 하면서 마음 한쪽이 나는 허전하고 긴장됐지만 아꽁이의 마음은 씁쓸하고 자존심도 상했을 텐데. 단 한 번도 그러한 티를 내본 적이 없었다. 그 장기간의 비밀 연애를 마치고 우리 집에 인사를 가겠다며 바리바리 싸 들고, 집 앞 버스 정류장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는 아꽁이를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한,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다.

예비 사위가 오는 날이니 잡은 씨암탉? ㅎㅎ

 사람은 봐야 아는 거지, 너의 남자 보는 눈은 못 믿는다면서도 딸내미 체면 구겨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이틀 동안 요리만 하셨다는 울 엄마. 큰 상 두 개에 꽉 차게 차려진 음식들을 보니 마음이 무겁기도 했고, 제발 내 남자친구가 예쁘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안 그래도 몸이 그다지 좋지만은 않은 우리 엄마가 힘들면 쉬어가면서 요리를 또 하고 또 했을 생각을 하면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을 데리고 왔으니 괜찮아, 하며 아꽁이에게는 필사적으로 표현하라는 텔레파시를 보냈다.




 어색한 시간들이 지나고, 늦은 밤까지 술을 한 잔, 두 잔씩 들이키며 가볍지만 날카로운 이야기들이 오갔다. 엄마는 아꽁이 눈 흰자에 있는 점까지 스캔할 만큼 세심한 관찰을 했고, 아꽁이는 온종일 굳어있었던 것 같다. 점점 피곤함을 느끼는 듯도 했지만 텐션이 조금씩 떨어지면 내가 쿡쿡 찌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리 집 텐션에 남자친구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니 긴장감이 끊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부모님께 소개했던 터라 계속 신경이 쓰였고, 어색하고 불편했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집에 애인 소개할 때 어떻게 분위기를 푸는지, 나는 어떻게 하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나 역시 계속해서 경직되어 있었다. 원래 집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와 아꽁이가 잘 지내는,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여줘야지 했었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내가 제일 날카롭게 굴었고, 남자친구는 가족들 눈치도, 내 눈치도 봤어야 했다. 그 점이 이제 와서는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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