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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종이 Jun 30. 2022

부모님께 남자친구 소개하기 2

나도 엄마 남자는 별로야

 남자친구는 우리 집에 인사 온 첫날부터 1박을 하게 되었다. 우선 나의 본가가 지방이고 아꽁이는 서울에서 살기 때문도 있고, 엄마가 꼭 술 한잔은 먹여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냥 불편한 듯 편하게 우리 집에서 자고 가게 된 것이다. 아꽁이도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응했다. 


 집에 인사를 가기 전날까지도 난 엄마와 그다지 좋지 않은 목소리로 통화를 했다. 아무래도 평생을 친구같이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큰딸이 본인이 반대했던 남자와 몰래, 그것도 6년씩이나 비밀 연애를 했다고 하니 화가 치솟을만하다. 그래도 남자친구 이런 직장에서 이렇게 일 잘하고 있고, 착하고, 순하고, 좋은 사람이라며 어필을 했고, 엄마는 그러한 나의 설득에 기분이 좋아졌다가도 혼자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면 다시 전화가 와서는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남자친구를 부모님께 소개하기 앞서 기대와 설렘도 있었지만 걱정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아꽁이는 참 착하고 순한 성격이지만 소극적이어서 답답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예의도 바르고 어른들께 어떻게 해야겠다는 매뉴얼들이 머릿속에는 있지만 선뜻 나서지를 못한다. 언뜻 보면 나서기 싫어한다고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행동이 좀 느리다. 키가 187cm라는 말을 듣고 엄마 왈, 키가 큰 사람들은 싱겁고 느리다던데.. 이 말을 듣는 순간 걱정이 됐다. 남자친구 행동을 보면 나도 어쩔 땐 속이 터질 만큼 행동이 느리고, 때로는 게으를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생활에 지장이 있을 만큼 심각하게 게으른 건 아니지만 365일 부지런을 떨어야 성에 차는 우리 엄마가 보면 답답해할 것 같아 겁이 났다. 마지막으로 걸렸던 건 말수가 적은 것이다. 아꽁이는 말이 적은 편이고, 긴장을 잘하고, 낯을 좀 가린다. 물론 상대방과 친해졌다 싶으며 개그맨처럼 행동하기도 하지만 그전까지는 정말 조용하고 어색한 웃음만 남발을 한다. 내 눈에야 이미 적응이 돼서 저러다가도 편해지면 괜찮겠지 하지만, 언제나 유쾌하고 시원시원한 사위를 바라왔던 엄마 입장에서는 마음에 안 들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꽁이가 다녀간 뒤 나의 불안한 예상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말수가 없으니 상냥하지 않다, 긴장해서 그렇다기엔 웃는 것도 어색하다, 그냥 착하기만 한 것 같다 등. 이러한 것들로만 얘기했으면 모르겠지만 또다시 엄마가 걸려했던 이유 플러스 말도 안 되는 것까지 걸고넘어졌다. 


 내 입장에서는 정말 고리타분하고 무례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라서 부모님께 연애를 비밀로 하고 남자친구를 여태 만나왔던 부모님의 반대 이유, 바로 학력이다. 아꽁이는 고졸이다. 나는 국공립 4년제를 졸업했고. 그러다 보니 엄마 눈에는 내가 아주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더구나 그때 당시 아꽁이가 직장이 괜찮았던 것도 아니었다. 내 생각에는 남들이 대학생으로 지내는 시간에 아꽁이는 일을 하며 친구들과 철이 없지만 어찌 보면 그 시기에 알맞은 방황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변변한 직장을 잡은 것도 아니고, 대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니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으로 비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난 고슴도치 엄마에게 엄청나게 예쁜 딸이었으니까. (엄마 의견만 신경쓰는 이유는, 아빠는 거의 내 편이기도 하면서 엄마만 좋으면 다 좋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침묵하지만 아꽁이를 앞으로 몇 차례 보면서 판단한다는 입장.)


 근데 자꾸 학력 얘기를 거듭하면서 '남자 보는 눈이 그렇게 없어서야.', '적어도 너보다는 나은 사람을 만나야지.', '학력이 너보다는 조금은 더 나았어야지!', 이런 말들을 듣다 보니까 내 눈에 엄마가 너무 답답하고 무식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의 생각은 여전했다. 그나마 지난날의 나와 지금의 내가 느끼는 게 다르기 때문에 엄마를 이해하되 수긍하지는 말자는 생각이었다. 더구나 인터넷에 '부모님이 남자친구를 반대할 때'라고 검색해 보니 절대 싸울 듯이 감정이 격해지면 안 된다고 쓰여 있었다. 우선 부모님 마음을 이해해 드리고 이후에 본인의 생각을 차분하게 얘기하면서 설득해보란다. 몇 번 무너질 듯한 고비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지금은 엄마와 기분 좋게 남자친구 얘기를 주고받고 있다. 


 "그래 이제는 학력 얘기는 안 할게. 대신 학위는 따라고 해."

 "내년에 안 그래도 아꽁이가 사이버대학교라도 간대~"

 "야간대학교는 안돼? 사이버대학교 학위가 똑같나."

 "똑같아~ 지금은 회사도 다니고 있고 해서 대학교를 직접 가기는 좀 그래"

.

.

 "근데 너는 진짜 외모는 안 보는 거야?"

 "왜? 난 외모 본 건데? 아꽁이 귀엽잖아."

 "ㅋㅋ진짜 제 눈에 안경이다~"

 "아니거든 귀엽거든~"

 "너도 참 별나다~"

 "엄마, 나도 엄마 남자 진짜 내 스타일 아니거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더구나 아빠는 엄마랑 7살 차이에 결혼 당시에 무직이었잖아!!"

 "그래도 아빠는 4년제 대졸이었어~ㅋㅋㅋ"

 "정말 엄마 남자 보는 눈 없다~"

 "... 에효 그러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안하지만, 진짜 나도 엄마 남자는 별로야^^


(내 아빠로는 최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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