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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종이 Jul 01. 2022

딸 가진 부모님은 다 똑같다고?

내가 결혼할 수 있을까

 남자친구(아꽁)와 오랜 비밀 연애의 마침표를 찍고 가족들에게 오픈한 지 벌써 한 달 반 정도가 흘렀다. 벌써인지 아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겐 6년간의 아꽁이와의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부모님의 충격과 엄마의 반대, 그 과정에서 있었던 충돌은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턱관절이 아프고 임파선이 부었을 만큼 정말 크게 신경을 썼다. 엄마도 역시 몇 날 며칠을 잠 못 잤을 정도였다고 한다. 


 난 사실 아꽁이를 커밍아웃하면서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아내야지 하는 마음은 없었다. 오롯이 내가 살아갈 인생의 파트너를 찾는 결혼이란 걸 할 때는 무조건 내 뜻대로 하리라 마음먹은 후였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 반대를 하면 설득을 시키고, 끝까지 마음에 안 들어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친구같이 지냈던 엄마와의 트러블은 나를 꽤 괴롭혔다. 


 엄마가 반대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꽁이가 고졸이라는 거였고, 두 번째는 실제로 보니 말이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아주 똑똑하고 시원시원하며 집안을 이끌어갈 수 있는 맏사위를 바라왔던 엄마이기 때문에 실망감이 컸다는 건데, 난 이러한 대화 주제로 통화를 몇 시간씩 하면서 지쳐갔다. 어차피 내 뜻대로 결혼할꺼라면 설득을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최대한 최선을 다해 내 남자를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평생 '사위 사랑은 장모님'이라는 걸 아꽁이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내 눈에도 완벽한 남자는 아니지만 내가 결혼까지 생각해볼 만한 괜찮은 남자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받아 온 나를 향한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껴보게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과 남자가 잘 어울리는 모습을 항상 꿈꿔왔다. 하지만 엄마에게 공개하고 나서 있었던 반대하는 며칠 동안은 그 꿈이 와장창 깨지는 듯했다.


 "어차피 엄마가 반대한다고 한들 네가 헤어질 것도 아니잖아. 엄마는 이젠 니 인생에서 빠져줄 테니까 네가 알아서 살아."

 "왜 말을 그렇게 해?"

 "너는 이제 와서 6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를 폭로해 놓고선, 그것도 엄마가 반대했던 사람인데 얼씨구나 좋다 우리 딸 결혼하겠구나 할 줄 알았어?"

 "아니 그건 아니지. 근데 나도 얘기할 타이밍을 살폈던 것뿐이야."

 "그니까. 엄마 말 안 듣고 반대했던 사람 몰래 그렇게 만나왔으니까 네가 알아서 해. 결혼하겠다고 하면 결혼식은 시켜줄 테니까."

 "그게 뭐야.. 그래도 앞으로 몇 번 보면서 사람이 진짜 괜찮은지를 봐야지 중요하지도 않은 조건 갖고 자꾸 그래?"

 "원래 딸 부모들은 다 똑같아. 내 딸보다 나은 남자를 데려왔으면 하지 엄마만 그러는 줄 알아?"

 "나보다 나은 사람이다. 엄마랑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 달라서 그렇지."

 "그러니까~알아서 하라고!"

 "이젠 앞으로 아꽁이랑 헤어진다 해도 엄마 마음에 쏙 드는 사람 골라오기가 너무 힘들어서 난 결혼 못할 것 같아."

.

.

.

 이러한 대화가 언제 오갔냐는 듯 지금은 아꽁이가 몇 차례 전화도 드리면서 엄마 기분을 풀어준 탓에 완전히 180도 생각이 달라져 참 착한 남자애를 만났다고 칭찬한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우리 딸은 아꽁이네 가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여자지, 요즘 너 같은 여자애가 어디 있어 아꽁이네 부모님이 복 받은 거지 등등 아주 고슴도치 엄마 같은 말들을 한다. 그 말을 들으면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다가도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고 한편으로는 아꽁이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딸 부모들은 다 똑같다고 하지만 주변에 들어보면 엄마와 같은 기준으로 고집을 부리는 건 아니다. 엄마가 나를 엄청나게 사랑하나보다 하고 넘기지만 때로는 나한테까지도 상처가 될 때가 있고, 어쩔 때는 민망하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진짜 엄마 말대로 아꽁이네 부모님이 나를 보자마자 이쁘다 이쁘다 해줬으면 좋겠는 마음이기도 하며, 나를 너무나 완벽한 딸로 보는 엄마가 귀엽기도 하다. 




 "어떻게 엄마한테 아꽁이랑 헤어지고 나서도 엄마 마음에 드는 다른 남자를 못 데려갈 것 같아서 결혼 안 할 거란 말을 할 수 있어? 너도 참 못됐어."

 "미안해........ 절대 그런 말 안 할게."


 아꽁이에 대한 마음을 풀고 난 후에 엄마랑 대화하던 중에 나에게 서운함을 털어놓았다. 더 이상의 트러블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이런 말들이 나오면 그저 미안하다고 하고 넘기지만, 여긴 내 공간이니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엄마도 상처되는 말 무지하게 했다고. 그러고 다시 풀고 '사랑해'라는 말로 마무리하면 난 거기서 끝인데 엄마만 억울하고 상처받은 것처럼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아무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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