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는 봤나? 기장 로컬이라고...
경박한 제목은 훅일 뿐, 서핑 실력과 필력 모두 매우 겸손한 단계이니... 어그로에 이끌려 클릭하신 서퍼분들은 맘 편하게 봐주셔도 될 것 같다. ㅡㅡ;
서핑을 시작한 지는 3년 정도 됐지만, 가평에서 기사문까지 3시간을 달려 겨우 입수하던 처지였기에, 입수한 횟수로만 따지면 100일도 안될 듯하다. 연애를 해도 100일이면 애인 얼굴이 방 천장에 아른거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지 3년이나 지났는데... 눈 감으면 스웰(파도 너울)이 넘실거린다.
차트를 보고 양양으로 출발할 날짜를 정하고, 1주일 내내 차트가 변하지 않기를 물 떠놓고 기도를 올린다. 출발 하루 전부터 바리바리 짐가방을 챙기고 경건한 마음으로 출발한다.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서핑을 다니던 때 소박한 소원이 하나 있었다.
'해가 떴는지 창문틀을 비집고 햇살이 강하게 눈두덩이를 두드린다. 떡진 머리와 눈꼽을 장착하고 아주 시니컬하고 무심한 동작으로 슈트를 챙겨입는다. 차 트렁크를 열고 서프보드를 싣는다. 보드 케이스는 어디 갔냐고? 그 따위 것은 마당에 보드 깔개로 쓰는 거지... 훗...'
어느 장거리 서퍼의 소박한 소원 되시겠다.
결국 난 소원을 성취했다.
오늘 아침에도 떡진 머리로 라인업에 앉아 있었다. 그렇다! 나도 로컬 서퍼다.
양양 동호 해수욕장에서 '서프클럽젯시티'라는 샵을 운영하시는 필력 좋으신 서퍼분께서 블로그에 올린 '로컬리즘/로컬 리스펙트' 라는 칼럼을 예전에 읽은 적이 있다. 서핑이라는 문화에 로컬리즘이 표방하는 가치, 그 문화에 대한 존중, 더불어 로컬 서퍼로서의 권리보다는 의무를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포스팅이다.
아직 서핑 실력이 초밥3끼라서 로컬 서퍼로서 의무(구조, 가이드, 규제 등)를 충실히 이행하며 서핑 샵 하나 없는 바다 -필자가 자주 다니는 임랑, 일광 같은 기장 해변들- 를 좋은 스팟으로 가꿔갈 능력은 없다.
이른 아침 막 떠오른 태양의 볕이 파도 너울 경사면을 따라 미끄러지는 바다 한가운데 동생과 나란히 앉아 있자면 만사 걱정이 없어진다. 다른 서퍼에게 폐 끼칠 일 없이 마음껏 연습할 수 있는 연습장을 제공해 주기도 하고, 가끔 자연이 만들어 주는 거대한 힘을 발 밑으로 느끼며 전율할 수 있는 덤도 있다.
어찌 애정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 같은 초보 로컬 서퍼의 가장 큰 의무는 바다, 혹은 해변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왕 남쪽으로 내려와 로컬 서퍼라는 타이틀을 단 이상 그토록 애정 하는 마음 가득 담아 파이팅 넘치게 인사하고 해변을 아껴볼까 한다. 선물과도 같은 동네 해변들을 아끼며 즐겁게 서핑하다 보면 언젠가는 리스펙을 받을 수 있는 로컬 서퍼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내일도 난 떡진 머리를 유지하며 눈꼽 따위는 전혀 제거하지 않은 체,
바다로 향할 것이다!
'장욱아, 쓰레기봉투 챙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