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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연 Mar 06. 2021

천국에는 요양원이 없다

병아리 요양보호사가 쓴 좌충우돌 요양원 24시 - 에필로그

에필로그      


         

요양원의 꽃은 요양보호사이다.


하지만 그런 요양보호사의 하루 일과는 상상 이상으로 고되다. 

팀별로 서너 명씩 보통 2교대나 3교대로 일을 하게 되는데, 최대 주 40시간 근무라는 규정은 있지만 실제 노동 시간은 그보다 좀더 많은 게 일반적이다. 


요양원에서는 노인 2.5명 당 한 명의 요양보호사가 배정되어야 하므로 얼핏 보기엔 수월할 것 같지만, 그 숫자가 다시 낮과 밤 근무로 나뉘고 또 매일 조별로 달라지므로 실제로는 요양보호사 한 명이 일고여덟 분 이상의 어르신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심지어 밤에는 수십 명의 어르신을 혼자 살펴야 하는 요양원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게다가 치매 환자가 대부분이어서 한꺼번에 일이 몰릴 때는 정말 근무 시간 내내 의자에 엉덩이 한 번 붙일 시간이 없을 정도로 쉴 틈이 없다.


주간 근무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야간 근무조와 교대를 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지난밤에 있었던 각종 사건 사고에 대해 브리핑을 듣고, 팀장으로부터 지시 사항을 숙지한 후, 방들을 돌며 어르신들의 상태를 확인한다. 그리고 이상이 없으면 바로 그날의 목욕 준비에 들어간다.

목욕은 어르신 별로 일주일에 한 번 꼴이지만, 요양보호사의 하루 일과 중 가장 힘든 일이기도 하다. 어르신들을 휠체어에 태우거나 와상일 경우 목욕 침상으로 옮겨서 목욕탕으로 이동시킨다. 목욕탕에서 몸을 씻기고 말리는 동안 같은 팀의 다른 요양보호사는 침대 시트를 갈고 기저귀 케어를 해야 한다. 기저귀 케어는 부상을 막기 위해 2인 1조로 하는 게 원칙이지만, 목욕 조의 고생을 잘 알기 때문에 때로는 혼자서 수십 명의 어르신을 감당하기도 한다.

목욕은 그 시간에 어르신들의 부상이나 욕창 등 신체적 이상 징후도 일일이 체크해야 하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땀으로 온몸을 적실만큼 힘든 일이다. 


운이 좋아서 목욕이 다소 일찍 끝나고 나면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바로 이어서 오전 간식을 방마다 드려야 하고 설거지를 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또 점심 준비를 할 시간.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어르신은 거실로 직접 모시고 나오거나 휠체어로 이동시킨다. 그런데 어르신을 휠체어로 이동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남자 어르신이나 무게가 많이 나가는 어르신을 일으켜 세우거나 들어서 의자에 앉히는 일은 숙련된 요양보호사들도 혀를 내두르는 일이다. 

남자 사회복지사들이 동원되어 도와줄 때도 있지만 대부분 힘없고 나이 많은 여자 요양보호사들이 전담해야 하므로 조심한다고 해도 이때 각종 관절에 무리가 오거나 허리를 다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관리자는 부상의 위험이 있으니 혼자서 하지 말라고 하지만 촉박한 시간에 적은 인원으로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만난 선임 요양보호사들 가운데 어깨며 손목 그리고 허리 등 일하면서 큰 수술 한두 번 이상 안 한 분은 보지 못했다. 

손목이나 허리에 보호대를 하더라도 움직이는 사람을 매일 반복적으로 끌고, 당기고, 들고, 옮겨야 하므로 근골격계 질환에 쉽게 노출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결과다.

나도 1년 반 정도 요양원 일을 하면서 결국엔 어깨에 석회질이 생겨서 고통스러운 충격파 치료를 받았고, 손목의 인대도 늘어났다. 하지만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하다. 잦은 부상에 시달리는 다른 선생님들에 비하면 그저 귀여운 수준이었을 뿐이다.


요양원에서의 식사 시간에는 유난히 할 일이 많다. 각 방으로 밥을 날라야 하고, 간호팀이나 관리자들까지 동원된 현장에서 손수 떠먹여 드리거나 수발을 들어야 하며, 약을 챙겨 먹이고, 양치를 시키고, 자리를 정돈해야 한다. 그리고 양치컵과 앞치마를 수거해 설거지하고 빨아 말린다. 일이 얼추 마무리되면 우리도 교대로 허겁지겁 점심 식사를 끝내고 잠깐씩 쉬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 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그나마 양치할 시간도 촉박해진다.


점심 식사가 끝나면 요양원에서 하는 어르신들의 여가 활동 시간이 이어진다. 지금은 코로나 19 때문에 

매번 외부 강사를 초빙해서 하기가 힘들지만, 자체적으로라도 매일 진행한다. 이 시간에는 요양보호사들도 동참해서 계속 어르신들을 돕거나 이동시켜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차라리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물론 하루 종일 지루하게 지내다가 그나마 이 시간을 기다리며 좋아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여가 시간이 끝나면 오후 간식을 드려야 하고, 다시 기저귀 케어 시간이다. 기저귀 케어는 인지능력이 있는 경우 따로 요구하는 어르신들이 있으므로 수시로 하기도 하지만 보통 두세 시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한다. 배변을 치우고, 상태를 확인하고, 와상일 경우엔 체위 변동까지 해야 하므로 꼼꼼하게 하려면 온몸이 땀에 젖을 만큼 힘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일이 끝나면 다시 저녁 식사 준비와 식사 수발 그리고 설거지. 

야간 근무조와 교대하기 전까지 하루의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 와중에 어르신들은 이것저것 해 달라며 사방에서 불러 대고... 이런 일이 날마다 반복되는 게 주간 근무다.


야간 근무 때는 휴식 시간이 있지만, 겨우 두세 시간 정도고 그나마 깊은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수면 리듬이 여지없이 깨져서 대부분의 요양보호사들은 평소에도 집에서 숙면을 취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불면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9시쯤 되면 어르신들에게 취침 약을 드리고, 각자 방으로 모신 후 TV 시청을 하게 하다가 소등을 한다. 그때부터 조금은 평화로워지는 시간이다. 휴게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좁고 열악한 시설의 공간에서 (편안히 잠자는 곳이라기보다는 거의 창고라 해도 무방하다. 심지어 복도나 소파에서 잠깐 눈을 붙일 때도 있다) 교대로 선잠을 자고 일어나 밤새 주무시는 어르신들의 상태를 확인한다.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고 체온이 상승하거나 심하면 심정지까지 오는 위급한 상황은 보통 밤에 일어나기 때문에 잠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요양병원이 아니므로 경과를 잠시 지켜보거나 응급조치를 하고 기다리다가 한밤중에 사설 엠브란스를 부르는 일은 드물지 않다. 이럴 때는 역시 노련한 요양보호사가 침착하게 일을 처리한다. 새내기인 나로서는 처음엔 너무 놀라서 그저 허둥대기만 했었다.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생기면서 조금씩 익숙해질 수 있었지만,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퇴원해 돌아오는 어르신들을 보며 가슴을 졸인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야간 근무조가 가장 바쁜 시간은 새벽 5시 전후부터다. 어르신들을 깨우고, 세수를 시키고, 속옷을 갈아입힌다. 그리고 아침 식사 준비. 주간 근무조보다 요양보호사 인원이 적고 도와줄 관리팀도 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어떻게 시간이 지나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미친 듯이 일을 몰아서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겨우 숨을 돌리면 교대하러 오는 근무자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요양보호사 일을 버텨내려면 무엇보다 체력이 관건이다. 

어느 정도 강인한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일을 계속할 수가 없다. 내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겨우 한 달 만에 손을 든 것도 일이 싫어서가 아니라 도저히 몸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온종일 일에 시달리다가 퇴근해서 다시 집안일을 하느라 녹초가 되었다는 선임 요양보호사들의 얘기를 들으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가족들은 알고 있는 것일까. 엄마가 또는 아내가 이토록 힘든 일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온몸이 아파 끙끙대면서도 티 내지 않으려 묵묵히 또 다른 일들을 해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거나 미처 생각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그녀의 고된 얼굴을 한 번 돌아봐 주길 바란다. 그리고 ‘고맙다’라는 말이 쑥스럽다면, 그저 말없이 안고 등이라도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기를 바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언젠가 요양원에 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어떤 요양원이 좋은 곳일까. 시설이 잘되어 있는,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보이는 요양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요양원이 내세우는 내외적인 화려한 조건 또는 관리자의 학벌이나 건물의 규모 등 무엇보다 겉모양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란다. 

가장 우선돼야 할 것은 ‘그곳에 어떤 마음과 자질을 가진 요양보호사들이 근무하고 있는가’이다. 

무엇보다 요양보호사들의 근무 환경이 좋은 요양원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항상 웃으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관리자가 있고, 언제 어디서든 어르신들을 먼저 생각하는 ‘인간 중심’의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잘 갖춰진 곳이어야 한다.

24시간 밀착해서 어르신을 직접 돌보는 것은 요양보호사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행복해야 어르신들도 질 좋은 서비스를 받으며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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