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무더웠던 작년 여름, 멀리 전라도 순천이 고향이라는 한강순(가명) 어르신이 요양원에 입소했다. 허리가 조금 굽고, 고관절 부상 때문에 보행이 약간 불편하지만 스스로 이동 가능했고, 치매가 살짝 진행되고는 있어도 인지 능력은 비교적 멀쩡한 분이었다.
그녀는 깊고 푸른 바다가 바라보이는 너른 마당이 있는, 낡았지만 오랜 세월 몸담아 온 당신의 집에서 농사지으며 혼자 생활해 왔다고 한다. 그런데 낙상의 위험 때문에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판단한 자식들이 자신들의 생활 근거지와 가까운 이곳으로 모셔온 것이다.
자식들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정든 고향을 떠나왔을 그녀.
게다가 요양원이라는 낯선 공간에 처음 온 그녀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다. 금방 말아놓은 듯 꼬불대며 윤기가 흐르는 파마머리에, 햇볕에 타서 유난히 새까만 피부 그리고 깡마른 체구를 한 그녀에게 요양원은 영 익숙해질 것 같지 않은 두려운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족들이 떠나고 홀로 남겨진 그녀는 이곳에서의 첫날밤을 맞아 다른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새벽까지 뒤척이며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그녀가 좀 더 마음을 열고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번갈아가며 옆에 앉아 살갑게 대화를 시도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편해지실 거라고, 여기서는 시간 되면 맛있는 밥도 드리고, 건강 체크도 해드리고, 다른 어르신과도 금세 친해지실 거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이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시크한 표정을 지으며 끄덕였지만, 며칠이 지나자 밤만 되면 자식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어 큰 목소리로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를 왜 여그에 버렸냐잉, 나는 여그서는 답답히서 몬살겄다이. 핀한 우리 집으로 당장 가야쓰긋다.”
“이 천하에 못된 년놈들아... 나를 데리고 가라고오. 나는 간당께 나는 간다고오”
그녀는 늦은 밤 내내 아들과 딸들에게 전화를 하고 또 해대며 악다구니를 썼다. 고집스러운 그녀를 달래기도 하고, 시끄러워서 경찰이 온다며 으름장도 놓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일주일 후 결국 그녀는 ‘고향으로 내려가면 이제 아무도 엄마를 돌볼 수 없다’고 협박까지 하며 말리는 자식들을 앞세우고 순천으로 돌아갔다.
광활한 푸른 바다를 늘 곁에 두고 무엇에도 구속됨 없이 자유롭게 살아온 그녀에게 요양원은 몸은 조금 편할지언정 창살 없는 감옥처럼 숨이 막혔을 것이다.
사실관계는 알 수 없으나 무엇보다 집을 팔아치우려는 자식들의 꾐에 빠져 자신이 속은 것이라며 몹시 분해했고 또 서러워했다. 자식들 다 소용없다는 얘길 우리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하고 또 했다.
그렇게 그녀가 뒤도 안 돌아보고 훌쩍 떠난 보름 후, 잠시 자식들에게 다시 설득을 당했는지 뜬금없이 그녀가 돌아와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요양원을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고관절이 더 상해서 스스로 거의 움직일 수 없을 정도가 되고, 설사 기저귀를 차게 되더라도 그녀에게 요양원이란 곳은 쉽게 정 붙일 수 없는 곳이었던 모양이다. 자식들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위해 고향집 근처에 있거나 한적한 바닷가 어디쯤 비슷한 환경을 가진 요양원이었다면 적응하기에 조금은 나았을까.
요양원에 있는 어르신들 중에는 별 탈 없이 잘 지내다가도 뜬금없이
“나를 왜 여기에 버렸어? 내가 왜 여기에 있어? 나 집에 가야 해. 우리 집에 갈 거야. 우리 아들딸 좀 불러 줘. 나 좀 데려가라고 해. 나 좀 데려가라고...”
라고 화를 내거나 한숨을 쉬며 하소연할 때가 있다.
한없이 슬픈 눈을 하고 바라보거나 때로는 간절하게 소매를 부여잡고 호소할 때면 그 순간만은 진심인 것을 알기에 대답하기가 참으로 난감하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모시러 온대요. 그러니까 편히 주무세요”
라고 어쩔 수 없이 뻔한 거짓말을 하면
“그으래? 내일 온대? 확실하지? 그럼, 기다려야지 뭐”
하며 안심하고 잠이 드는 그들의 얼굴은 잠시나마 아무 걱정 없는 아기처럼 밝아진다.
물론 달콤한 거짓말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며 비상벨을 누르거나 지칠 때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어르신도 있다. 그럴 때 노련한 요양보호사들은 스스럼없이 어르신 침대에 같이 누워 등을 토닥이며 아기를 재우듯 잠들 때까지 다정하게 안아주기도 한다.
친정 엄마에게 하듯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선임 요양보호사들의 그런 정감 있는 태도는 성격 까칠한 나로서는 도저히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잠시 해 봤지만, 솔직히 빠른 시간 내에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천성이 그다지 살갑지 못하니 어찌하랴. 지금은 그저 선의의 거짓말로 어르신들을 달래며 임시방편 삼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