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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연 Mar 06. 2021

신림동에 어떻게 가요?

  


“저기, 선생님... 지금 신림동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해요?”

고은아 어르신(가명)이 눈만 마주치면 반복적으로 하는 질문이다. 

“예, 어르신. 지금은 밤이니까 어두워서 안 되고요, 내일 날 밝으면 가세요, 그러니까 그만 주무세요”

“네, 알았어요... 아, 그런데 지금 신림동 가야 되는데...”


그녀는 언제나 신림동에 가고 싶어 한다. 젊은 날의 그녀가 아름답고 치열했던 삶을 살았던 동네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보지만 사실관계는 알 수 없다. 그녀는 중증 치매를 앓고 있으므로 묻는다 한들 정확한 대답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는 젊은 시절 상당한 미인이었을 것이다. 이름 때문인지 영화배우 못지않은 미모의 흔적을 지금도 얼굴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어르신들에 비해 곱고 하얀 피부와 교양 있고 기품 있는 자세도 유독 돋보인다. 


내가 처음 요양원에 왔을 때 그녀는 부축을 받긴 했지만 손수 워커를 끌고 이동할 수 있었다. 심지어 딸들이 방문하면 그녀들의 손을 잡고 ‘하나 둘, 하나 둘’하고 구령에 맞춰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산책하기도 했다. 

그녀는 식사 시간이나 프로그램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거실로 나와서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앉아 있는 동안에 거의 말은 없었지만, 이따금 예상외의 대답을 재치 있게 한두 마디 할 때가 있어서 모두를 미소 짓게 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그녀에게 시선이 집중될 때면, 같은 방을 쓰는 친구라고 늘 맞은편에 앉는 귀염둥이 연순임(가명) 어르신이 여지없이 질투의 화신이 되어 심술을 부리는 통에 웃음바다가 되곤 했지만.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던 그녀에게 변화가 온 것은 지난 겨울부터였다.

 

겨울은 어르신들을 여러모로 힘들게 하는 계절이다. 유난히 추위를 싫어하는 어르신들의 특성 탓이기도 하지만, 특히 겨울의 끝자락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어르신들이 요양원에서는 적지 않기 때문이다. 


늘 함께 생활하다 보면 어르신들이 고령이라는 걸 잊을 때가 많다. 그래서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작은 변화에도 화들짝 놀라게 된다. 

그녀는 잇몸이 상해서 더 이상 틀니를 낄 수 없게 되자 그동안 혼자서 씩씩하게 해냈던 밥 먹는 것을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숟가락질이 어눌해지고, 걸어서 이동하기를 거부했으며, 거실에 나와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했다. 

‘신림동에 어떻게 가느냐’고 ‘오늘 중에 집에 가야 한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질문을 하고 또 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잠에 취해 식사 시간에 일어나지 못할 때가 많아졌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꼬대를 심하게 하거나 허공에 계속 손짓을 하면서 무언가를 큰소리로 중얼거리는 날이 계속되었다.

혹독한 계절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르신들이 몇 분 계신 탓에 덜컥 겁이 났다. 생각해 보니 그녀는 이미 구십을 넘긴 초고령의 나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변화였지만 나는 유독 그녀만큼은 인정하기가 싫었다. 


지난 여름, 워커에 걸려 넘어지는 그녀를 붙잡지 못하고 함께 안고 넘어지며 온몸으로 낙상을 막았던 아찔했던 기억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뭉뚝한 손톱에 물든 봉숭아 물이 유난히 예쁘고 따뜻하게 느껴졌던 탓일까. 

밤에는 일시적으로 숨을 멈추고 있다가 한 번에 몰아쉬는 그녀의 코밑에 괜히 손가락을 대어 보기도 하고, 식은땀을 흘리는 그녀의 이마에 열감이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 보기도 한다. 

요즘 유난히 컨디션이 널뛰듯 하는 그녀의 가녀린 불꽃이 어느 날 갑자기 망연히 꺼질 것만 같아 불안하다. 


그녀가 남은 겨울의 끝자락을 잘 버티고 견뎌내기를 바라며 ‘신림동에는 내일 가시라’고 오늘도 나는 여지없이 똑같은 대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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