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 - 26일
내 동생 혼자여행에 꼽싸리 끼어 간 타이베이 여행
대만이 아무리 가깝다 하지만 공항이 우리 집에서 가깝다 하지만 이동은 역시 피곤하다. 새벽 6시 집 앞 터미널에서 7000번 버스를 타고 안산행 공항버스가 왜 남의 지역인 시흥을 돌고 돌아 한 시간 반이나 걸려 공항에 가야 하냐고 통하지도 않는 짜증을 내고, 두 시간 반을 날라 타이베이에 예약한 호텔에 입실하니 반나절이 후딱 지나갔다. 호텔은 타이베이 시먼딩의 쇼테츠 호텔. 동생이 혼자 여행 간다며 특가로 저렴하게 예약한 호텔이었다. 타이베이가 호텔 값이 비싼 편인데 동생 덕분에 숙박비를 아꼈고 심지어 공짜로 얻어 잤다. 케케케케.
- 도착하자마자 한 일: 밀크티 사 먹기
호텔 앞 가게에 밀크티를 사 먹으러 갔다. 요즘사람의 밀크티 가게인지 내부는 작고 깔끔했고 브랜딩 된 제품과 간이의자 몇개만 있었다. 점원도 없었다. 큐알로 베스트 메뉴인 홍옥 밀크티를 주문했다. 찐한 차향에 묽지만 적당히 부드럽게 어울리는 우유와 은은한 단맛이 어울리는 짱맛도리 밀크티였다. 또 사먹어야지!
시먼딩의 밤은 한국과 달리 가로등이 많지 않아 어두컴컴해서 스산했지만 간판이 많고 붉고 밝았다. 어디선가 퇴근한 사람들이 몰려나와 저녁거리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야시장도 돌고 팝마트도 가고 까르푸도 구경하고 그렇게 첫날을 보냈다.
동생이 언니는 준비한 게 뭐가 있냐며 내가 알려준 일정은 기억하냐며 오늘은 고궁박물관 투어를 예약했다고 가야 한다고 새벽부터 깨우며 나를 잡도리했다. 근데 사실이다. 모른 척이 아니다. 정말 난 아무것도 준비 안 해서 모른다. 숙소, 현금, 유심, 길, 맛집 등 아무것도 모른다. 내 동생(내부하)이 할 거니까 괜찮다.
무상무념으로 온 고궁박물엔 한국인이 바글바글했고 투어가 한창이었다. 민폐를 끼치며 사진 이천장 찍는 한국인, 서로를 힐난하며 투어를 견제하는 한국인 가이드, 회사사람끼리 워크숍 왔다며 술 얘기만 하는 아저씨 등 고궁박물관 안에서 한국인의 단면이 너무 보여 지긋지긋했는데 투어 자체는 재밌었다. 관심 없던 대만의 보물 동파육, 배추, 개돼지, 대추씨앗이 새롭게 보일 정도. 몇 시간을 돌아다닌 투어와 특별전시로 진행된 반클리프전도 화려하고 눈이 부셨다. 그런데 왜 개돼지만 기억나냐.....
반나절 투어를 열심히 다녔더니 체력이 훅 떨어졌다. 그래도 숙소 가는 길에 핫플레이스 중산역 카페거리가 있어 밥이라도 먹고 가기로 했다. 주말이라 사람이 정말 많았다. 지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많았다. 밥이나 얼른 먹자며 시킨 음식은 둘 다 대만 특유 향신료를 이기지 못해 반이상 남겼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해 간 한산한 거리의 커피숍도 자리가 없어 앉지 못했다. 결국 시먼딩의 아무 커피숍에 들러 커피와 디저트를 포장해 지친 몸으로 숙소에 돌아왔다.
오늘은 동생과 따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난 디화제에서 차가 마시고 싶었고 동생은 융캉제 거리에서 느긋하게 쇼핑이 하고 싶었기 때문. 날씨가 좋았고 옛 거리 분위기에 취해 이곳저곳을 걸어 다녀 차는 마시지도 못하고 우롱차 쇼핑하며 시간을 보냈다. 구글 후기에선 디화제 거리 찻집이 도매만 취급한다더니 자체 브랜딩 한 찻집들이 있어(기념품 가게 아님) 소포장으로 파는 우롱차를 살 수 있었다. 내 취향이었던 우롱차 한문을 보여주면 직원이 추천을 잘해주신다. 디화제에선 그렇게 동정우룡50g 득템.
융캉제에서 점심을 함께 먹기 위해 동생을 만났다. 한식당에서 든든하게 밥을 챙겨 먹은 기력으로 융캉제 거리를 돌아다녔다. 디화제보다 많은 사람과 가게가 있었다. 차가게는 골목마다 하나씩 있는 정도로 많았다. 모든 가게에 들어가 시음도 하며 우롱차 2차 쇼핑을 했다.
모든 가게에 식물 있는 융캉제는 아주 훌륭한 동네다. 식덕이라 눈이 즐거웠다. 그중 유난히 식물이 많고 예쁜 가게가 있었다. 들어가 보니 누가크래커를 직접 만드는 가게였다. 나는 얼른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여기서 만드는 누가크래커를 사달라 했다. 나에게 누가크래커를 사주러 온 동생이 이 가게 유명한 집(가게 이름: 라쁘띠펄)인데 알고 들어온 거냐며 물었다. 내가 알고 들어왔을 리가? 바로 만든 누가크래커는 부드럽고 따뜻했고 머리카락이 바짝 서게 달고 맛있었다. 그렇게 당으로 기력을 다시 채워 화산1914가서 소품을 구경하고 타이베이101에서 야경을 보며 돌아다녔다.
동생은 단수이를 간다더니 나를 따라 근처 타이베이 식물원을 같이 갔다. 가는 길에 로컬 과일가게가 있어 석과도 하나 구매했다. 석과는 가을 늦게 먹을 수 있는 대만의 과일인데 다른 동남아 지역에서 본 적 없는 과일이었다. 까르푸나 야시장에선 만원 넘게 팔아 딱히 사 먹지 않다가 로컬가게에서 딱 반값이길래 사봤다. 고요한 식물원 산책 후 간식으로 석과를 챙겨 먹었다. 맛은 입안 가득 사과향이 나면서 강력한 커스터드 질감의 단맛이었다. 질감은 끈적하고 부드러워 두리안과 비슷했다. 오? 이런 과일은 처음이다. 신기하지만 너무 달아서 다음엔 안 먹는 걸로 결심했다.
오후도 일정이 딱히 없고 투어도 없고 관광지도 관심 없어 융캉제 거리에서 쇼핑하고 까르푸에서 과자사고 위스키도 사는 돈 많이 쓰는 오후를 보냈다. 타이베이에서 내 기준 꼭 사야 하는 게 1번이 우롱차였다면 2번은 위스키였다. 타이베이엔 여러 위스키 성지가 있지만 난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매장에 갔다. 리얼58이란 위스키 가게엔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직원이 있었다. 한국인처럼 말해서 한국인이냐고 물었는데 찐 대만인이란다. 나의 원하는 가격때와 취향을 정확하게 알려주면 한국말잘알 직원이 위스키를 추천해 준다. 나는 그중에 하나를 골라서 샀다. 웰러라는 버번위스키인데 두병 안 사 온 걸 후회할 정도로 풍미 좋은 위스키였다. 한국말잘알 직원의 최고!!!! 저녁엔 용산사의 야경을 보며 산책을 한 뒤 타이베이의 모든 일정을 끝냈다. 이제 한국에 가자.
마지막 날은 한국에 오는 일정뿐이라 까르푸에서 산 과자와 술을 정리했다. 술을 2병(버번위스키, 금문고량주)에 과자까지 가득 사서 캐리어가 15kg 넘어버렸다. 나는 저가항공이라 수화물 무게가 15kg 넘으면 안 되는데~~~ 결국 욕 처먹고 동생에게 빌어 동생 캐리어에 술 한 병을 싣었다.
타이베이에선 풍등을 날리고 지우펀 센과 치히로 찻집을 가고 예스지 투어를 가곤 하는데 난 시내를 걷고 차를 사고 디저트를 먹는 쪽을 택했다.
일본처럼 거리가 정갈하고 깨끗해서 좋았다.
어딜 가던 식물이 많아서 좋았다.
간판이 한문이고 오래된 거리들이 있어 홍콩 느낌도 나서 좋았다.
우린 인간인지라 언어가 달라도 상대방이 최선을 다해 내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걸 느낄 수 있다. 그걸 다시 느끼게 해 준 대만 사람들도 좋았다.
대만 음식은 안 맞았지만 디저트, 밀크티, 커피가 다 맛있어서 좋았다.
여행지에서 먹는 맛있는 음식이 중요한데도 그것을 넘어설 만큼 나머지들이 좋았던 타이베이 여행이었다. 모든 감사와 행복을 내 따까리에게 받친다. 술 날라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