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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3

이 구역의 미친X은 나야 ver.2

by 성포동알감자

전날 라발레 빌리지에서 카드를 불태우고 나니 다가오지 않길 바랬던 마지막 날이 왔다. 돌아갈 집이 있는 건 행복하지만 현실로 돌아갈 마음에 답답함이 몰려온다.

빠듯하게 다니고 싶지 않았다. 더욱더 느긋하고 게으르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사실 체력이 너덜너덜했다. 오전에 간단히 간식을 들고 에펠탑 앞 공원으로 향했다. 잔디에 누워 노래를 부르며 현실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그저께에 이은 이 구역의 미친 음치는 나야나 나야나!

압생트 표정

에펠탑 앞 공원에서 노래하고 개선문에서 춤추고 샹들리제 거리를 걸었다. 콩고드 광장에선 젤라토를 먹고 낮잠도 잤다. 별로 한 일이 없는데 벌써 오후 5시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사촌에게서 연락이 왔다.

너 어디야?

- 콩고드 광장인데??

나 그 근처야 30분 안에 갈게.

이것은 15년 만에 오랜만에 만난 사촌과 짧은 대화이다. 그렇게 타국 파리에서 동갑 사촌과 조우했다. 우리는 사는데 치여 이런저런 핑계로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떠나기 전날 만나게 되다니. 사촌은 파리에서 워킹홀리데이 중이었고 아버지 덕에 연락하게 되었다. 먼저 연락해 주어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다.

워홀러에게 얻어먹는 저녁 익힝

긴 세월이 무색하게 자연스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너무 신이 났다. 서로 근황 및 미래까지 수다를 떨었다. 만날 사람은 만난다더니 이렇게도 만나지나 싶다.

파리는 사진도 많이 없고 안 좋은 기억도 몇 개 있지만 반가운 만남과 예술이 가득한 분위기로 곱씹어지는 동네다. 루브르 박물관과 마레지구는 가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파리에 다시 가야 한다.

같은 날 테러도 일어났다. 경찰만 노리는 테러로 내가 있던 곳 근처에서 사건이 터졌다. 범인은 금방 잡혔지만 귀가하는 길이 너무 무서웠다. 테러를 일으키고 사람들 틈에 끼어 다니는 IS를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편견이지만 지하철 옆자리에 이상한 옷을 입고 성경책을 읽는 아랍계열 사람마저 무서워 보였다. 그래도 다시 가..갈꺼야...

돌아오는 비행기에선 눈물이 났다. 현실로 돌아가는 슬픔과 아워홈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다는 기쁨이 교차했다. 혼돈을 간직한채 나는 그렇게 한국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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